확장성 보여주려 대본 네편 후다닥 써
이 작가는 10년 전 방송(전교 1등과 꼴찌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이라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언제든 다시 인기를 끌 수 있는 ‘역주행’ 현상을 소재로 삼는 등 바로 지금 우리 시대의 미디어·문화 감수성을 드라마 곳곳에 섬세하게 반영했다. 사랑에 냉소하기 쉬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사랑할 용기’의 가치를 감성적으로 보여줬다. ‘웅연수’ (최웅과 국연수) 커플 이야기에 과몰입한 시청자는 드라마 영상 댓글로 “작가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라는 호기심 어린 감탄사를 남겼다. 2월2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1993년생인 이나은 작가는 자신이 쓴 드라마 주인공 ‘웅연수’와 29살 동갑이다. 그는 드라마 작가를 꿈꾼 적이 없다. 다만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일에 관심이 갔다. 2011년 대학에 입학하며 국제관계학을 택했지만, 수업을 듣다보니 전공과 맞지 않았다. 3학년 때 휴학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섰다.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 인턴을 하다가 TV 예능 외주제작사 웹콘텐츠팀 인턴으로 자리를 옮겼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뉴미디어 전성시대였다. “TV용이 아닌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독립에 나선 팀장을 따라 이 작가도 모바일 방송사 ‘와이낫미디어’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이 작가는 <그 해 우리는>으로 지상파 미니시리즈 부문에 데뷔했을 뿐, 2016년부터 청춘 로맨스 드라마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왔다. 그가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을 맡아 PD 역할까지 겸했던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이하 <전짝시>) 시리즈가 첫 작품. “<전짝시> 기획안은 첫 회의에서 보류됐어요. 선배가 ‘(소재가) 제한적이지 않냐’고 말했는데, 저는 기획안에 애착이 갔고 짝사랑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기획안이 보류된 바로 그날 네편의 대본을 후다닥 써서 올리고 퇴근했죠.” 대본을 본 상사는 <전짝시> 네편 제작에 총 150만원 비용을 할당했다.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며 시즌 1~3.5까지, 브랜디드 콘텐츠를 포함해 75편가량 이어졌다.
이 작가는 웹드라마를 만든 시기를 ‘처음 글쓰기에 매료된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전까지 글쓰기라고 하면 논술이나 리포트를 떠올렸어요. 그래서 작가쪽을 생각하지 못했고요. 그런데 일상을 쓰는 게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이야기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글쓰기가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전짝시>의 등장인물은 주로 대학생이다. 주인공들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시청자는 등장인물 모두의 속마음을 내레이션으로 전달받는 ‘전지적’ 시점에서 함께 애태운다. “제가 대학생일 때 대학생들 이야기를 쓴 거니까, 지금의 제가 절대 다시 쓰지 못할 글도 있어요. (웃음)”
1분, 3분, 7분, 30분, 60분…. 지난 7년여 동안 이 작가가 쓴 대본의 한회 분량은 꾸준히 늘었다. <전짝시> 마지막 시즌을 끝내고, 2019년 와이낫미디어와 MBC가 공동제작한 크로스 드라마 <연애미수>(웹 10부작, TV 5부작)부터는 연출자가 생기면서 대본에만 집중했다.
이나은 작가가 작업할 때 사용하는 MP3 플레이어. 팝 80곡이 채워져 있다. 사진 김진수 <한겨레21> 선임기자
드라마 작법을 따로 배운 적 없는 이 작가는 독학을 시작했다.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 대본집을 ‘교과서’로 삼았다. “<전짝시>는 연출을 제가 직접 하기 때문에 저 보기 편하게 대본을 썼는데(웃음), 분량이 길어지니 기존 드라마 문법을 봐야 했어요. 이론적으로 공부하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대본집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시절 우리의 감정에 정답은 없었어요. 누군가는 확신했고, 누군가는 부정했으니까요.” (<연애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