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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의 아저씨’ 박해영 작가, “배우가 꽃을 피우기에 그 꽃의 자양분을 대자는 마음으로”
김수영 사진 오계옥 2023-03-12

- 극 속에서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드는 여러 에피소드는 어떻게 정리해나가나요.

= 한 작가님과 대화하면서 생각하게 됐는데, 그 작가님은 매화를 중요한 사건으로 끊는다고 하더라고요. 1부 엔딩, 주인공 빠져나간다. 2부 엔딩, 교도소에 간다. 이런 식으로요. 반면에 저는 매화를 감정으로 끊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간다. 요동친다. 참는다. 그다음에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만져보는 식이죠. ‘추앙해요’의 경우 대사가 먼저였는지 관계가 먼저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아마도 이 지점에서 우리가 출렁여야 한다. 2부 엔딩은 감정적으로 모두 흔들려야 한다, 라고 잡아놨으면 ‘추앙’이 떠올랐을 때 ‘이건 2부다’ 이렇게 가는 식으로요.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도 사건보다는 어떤 감정이 일어나야 할까, 이런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해영 작가는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회차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을 손으로 그려 보였다. 감정의 궤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의 아저씨> 김원석 감독이 그의 대본을 보고 ‘악보같다’고 표현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사진제공 스튜디오드래곤

- 감정을 건드려서일까요. 드라마가 끝나도 캐릭터가 남아요. ‘이만하면 됐다’며 늘 안전제일주의로 살아온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은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좋은 인간으로 기억에 남아요. 박동훈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됐나요.

=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잠시 생각) 박동훈은 ‘요란하지 않아야겠다. 그런데 근원에 닿아 있다… 쓸쓸하겠다’ 정도에서 시작했어요.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대사로 사건이 전개되잖아요. 박동훈은 말이 별로 없어서 사건을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런데 주인공이고 매력적이어야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웃음) 박동훈은 어떤 상황에서 마크하는 사람이지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조용히 티 안 나게 무너질 만한 것을 틀어막고 있는 사람. 마크맨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만들어나갔어요. 처음부터 분명한 의도나 목표를 정하고 가면 극이 억지가 돼요. 인물에 집중해서 남쪽으로 가자, 정도의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 보면 ‘아, 이런 인물이 되겠구나. 이런 인간을 그리고 싶었구나.’ 정확해지고 그걸 끝까지 견지해나가는 거죠.

- 서사 없이 나아가는 이야기, 말없는 주인공. 작가님은 왜 어려운 길을 택하는 건가요. (웃음)

= 제가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도 어떤 서사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보는 게 아니라 그 배우가 좋아서, 인물이 좋아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적인 인간, ‘저거 진짜다’ 싶은 표정과 말투를 보여주는 인물을 그리고 싶어요. 가끔 기계적인 캐릭터를 보게 될 때, 아마 대본이 기계적으로 흘렀기 때문에 연기도 대사도 기계적으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왜 그렇게 됐을까? 서사를 먼저 잡고 시작해서, 정해진 서사에 인간을 돌려버렸기 때문에 기계적인 얘기가 나온 게 아닐까. 인간을 먼저 잡고 쓰면 그 인간이 갈 수 있는 만큼만 나아가기 때문에 기계적인 이야기로는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최근 <더 웨일>을 보고도 느꼈는데 영화나 드라마는 배우의 예술이더라고요. 결국 배우가 상황에 얼마나 몰입하는지, 어떤 인간을 제대로 보여주는지가 중요한데 작가는 그 베이스가 되어줘야 하잖아요. 배우가 꽃을 피운다. 그 꽃의 자양분을 대자. 저에게는 이 생각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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