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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번 칸’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 “기차는 매우 영화적인 장소”
조현나 2023-03-09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황량한 여행길에서 맺은 인연만큼 낭만적인 게 또 있을까. 사랑하는 이리나(디나라 드루카로바)와 암각화를 보러 가려던 라우라(세이디 하를라)는 이리나의 사정으로 혼자 기차에 오르고, 료하(유리 보리소프)와 같은 칸을 쓰게 된다. 그의 거친 언행에 불쾌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며 료하의 따뜻한 면모를 발견한다. 소설가 로사 릭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6번 칸>은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첫 장편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로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한 그는 <6번 칸>으로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기차 여행, 풍경, 그리고 외로운 두 영혼의 만남.” 라우라의 캠코더에 기록된 파편적인 시간들처럼, <6번 칸>은 바랜 일기장을 넘기듯 료하와 라우라의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처럼 느껴지게 하는 영화”다.

- 료하가 라우라에게 “오래된 걸 좋아하지 않냐”고 묻는데 당신 역시 그런 창작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설정하고 캠코더, 워크맨 등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가 있다면.

=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가 추억처럼 느껴지길 바라서 신경 쓴 부분이다.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아날로그적인 소품을 활용하는 건 필수였다. 캠코더, 워크맨 등의 소품은 과거에 실재했으며 현재까지 회자되는, 씁쓸한 기억을 지닌 것들이다. 그러나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 매개체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고 영화의 주요 요소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

- 기차라는 장소는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 주요 배경지로 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

= 기차가 여행을 가능케 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매우 영화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영혼’이 없는 비행기에선 이런 만남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한편 기차 칸이 협소해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실제로 그랬다. 힘들었지만 그만한 성취와 가치가 있었다. 재밌었고 때로 웃기기까지 했으니까. 단순히 기차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기차 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촬영 방식 또한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실제 기차에서 촬영하는 모험을 택한 건 <6번 칸>의 내용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삶의 본질을 수용하는 내용의 작품을 스튜디오와 같이 통제된 환경 속에서 촬영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 라우라 역에 세이디 하를라를, 료하 역에 유리 보리소프를 캐스팅했다. 두 배우의 어떤 매력이 눈에 띄었나.

= 세이디를 먼저 섭외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과거에 화물선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영화를 만들 때나 라우라 캐릭터를 구축할 때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강인함과 유약함을 동시에 지닌 매우 흥미롭고 지적인 배우다. 유리 보리소프는 그의 전작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그 자체로도 좋은 재능을 가졌지만 세이디와 있을 때의 케미스트리를 보고 캐스팅해야겠다고 직감했다. 둘이 함께한 그 순간이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 주로 라우라의 시점숏으로 창밖의 풍경을 촬영했다. 하지만 라우라가 캠코더를 도둑맞은 후, 멀어져가는 기차역을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바라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 그 신은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기차를 타고 25000km를 넘게 돌아다닐 때, 내가 hi8 비디오카메라로 여러 차례 찍었던 신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역 근처인데 그 구간을 여러 번 이동하며 따로 표기해뒀었다. 원래 멀어지는 기차역이 보이는 평범한 롱숏 두개를 촬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눈도 쌓이지 않았고 배우도 현장에 없어서 계획을 바꿨는데 결과적으로 더 좋은 숏을 건졌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장면이다. 모든 것을 뒤에 남겨뒀으나 되돌릴 방법이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장면이다.

- 암각화를 보러 간 라우라와 료하가 눈밭을 뒹굴며 노는 신은 일면 라우라의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장면 역시 촬영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 그 장면 역시 원래 다른 걸 하려다가 날씨 때문에 바뀐 신이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너무나 장관이라 즉석에서 대본을 바꿨다. 또 하나의 ‘운 좋은 사고’였다고 할 수 있겠다. 정말 미친 날씨였는데 제작진과 배우들은 즐기는 것 같더라. 헌신의 중요성이란!

- 그처럼 눈보라가 몰아치는 데에도 라우라가 암각화를 보길 강력하게 원한 까닭은 무엇일까.

= 라우라는 암각화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애초에 암각화에 관심을 보인 것도 이리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암각화를 보겠다는 라우라의 동기는 실상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던 셈이다. 암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라우라는 그 반대의 유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마지막에도 부끄러움에 료하에게 보고 싶단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라우라는 료하에게 연락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각화를 활용한다.

- 암각화를 본 후 료하가 “그게 다예요?”라고 묻자 라우라는 “그게 다예요”라고 답한다. 어떤 심경으로 라우라는 이런 답을 내놓았을까.

= 암각화를 보면서 라우라는 다른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혹은 진정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종의 계몽이다. 정확히 말로 옮기기 힘들지만,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찍은 이유다.

- 라우라는 료하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 료하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둘 다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 현실에서도 우리의 행동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 않나. 가끔은 쥐고 있는 것보다 뒤에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에 이어 다시 한번 사랑에 관한 작품을 만들었다. 사랑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피워내는 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나.

= 주요 테마는 사랑과 죽음 두 가지뿐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이 죽음으로 가득 차 보이기에 픽션에선 다른 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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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싸이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