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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다음 소희’, 이 세상의 모든 소희들에게 영화가 전하는 위로
이자연 2023-02-09

2017년, 전주의 한 고등학생이 차가운 저수지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으로 차출되어 한 통신사의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 정황을 통해 짐작한 이유는 이러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다음 소희>는 자신을 무력한 주변인으로 정체화한 아이들의 면면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업무 수행은 성인만큼 책임을 다할 것을, 보상은 학생이라는 신분만큼 받을 것을 요구받으며 이들은 어른과 아이 사이의 망망대해를 헤맨다. 마음속에 조막만 한 꿈을 품은 소희(김시은)와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형사 유진(배두나) 사이에서 정주리 감독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보다, 관객이 스스로 모범답안을 사유하고 선택하도록 여지를 남긴다. 이젠 영화가 남긴 질문을 순차적으로 답해나갈 차례다. ‘다음 소희는 누구인가?’ 이전에 우리는 ‘다음을 또 만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음 소희>는 두 가지 키워드를 주축으로 둔다. 노동 현장과 청소년. 영화가 두 항목을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이유는 둘이 공존하여 뒤섞일 때, 각자 떨어져 있을 때와 다른 특정한 맥락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성인만큼 상황 판단이 빠르지도 대처 능력을 쌓을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은 아이들은 노동 현장에서 타의적으로 수동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소희의 사정을 좇아나가던 유진이 심드렁한 콜센터 임직원에게 “이건 사건이 명백히 다릅니다. 얘는 고등학생이에요”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특히나 이들이 일터를 찾은 배경 또한 교육적 명목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따른다. 단순히 노동과 임금을 거래로 치환하는 일반적인 시장 공식과 다른 특수성을 지닌다. 특성화고 아이들은 현장에 나가 일을 통해 배워야만 한다.

행정이 아이들을 몰아세웠다

고졸 취업이 박차를 가한 건 2010년부터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특성화고의 취업률 목표를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로 세웠다. 취업률에 따라 학교지원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고 이 목표치에 달하지 못할 경우 학교를 통폐합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나서며 복잡다단한 과정이나 속사정은 설명하지 않는 절댓값으로만 학교를 평가했다. 교육청을 찾아간 유진에게 취업률만이 객관적인 지표 역할을 하며 달성 여부에 따라 교육부 지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장학사의 염려는 지난한 현실을 딛고 있는 사투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학교는 학생의 전공과 관련 없는 업체에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특성화고 아이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직군이 패스트푸드점과 직업 군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개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행정형 교육 방식이 아이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학교가 모르쇠한 아이들이 일터에서 보호받을 리 만무했다. 현장 실습 과정에서 안전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채 작업에 들어간 학생들은 매년 노동 현장에서 다치거나 죽었다. 이에 따라 근무 환경 개선과 안전 교육에 공을 들이겠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021년 여수, 요트업체로 현장 실습을 나간 한 학생은 잠수 자격증이 없음에도 잠수 작업을 지시받고 업무를 수행하다 사고로 숨졌다. 여전히 또 다른 소희들이 희생되고 있다.

조용히 쌓여가는 무언가

소희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태준(강현오)이다. 둘은 특히 가까웠다. 유진을 만난 태준이 말한다. “몇달 전에 공장에 사고치는 바람에 여기(택배사)에 있는데 조금 있으면 복귀해요. (중략) 그때 좀 참았어야 했는데 욱하는 바람에….” 왜 일하는 아이들에게 자꾸 참지 못할 일이 벌어질까. 전화 상담을 하는 소희에게 성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던 고객, 학교에서 이탈한 후 먹방을 하는 준희에게 악플을 남기는 시청자들, 태준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직원들, 죽음을 애도하지도 못하게 막는 기업 임원들…. 한창 감정적 통제가 어려운 시기에 이들은 고달프게 참는다. 마음을 억누르며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미루고 외면한다. 선생님과 팀장, 부모님의 말마따나 “세상이 원래 다 그렇고”, “이 모든 게 교과 과정의 일부”이며 마음을 삭이고 인내하는 “이런 상황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음 소희>는 문제의 뿌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모두의 책임을 정리하여 나열한다. 영화 제작만을 위해 실제 사건을 소재 삼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주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묵시적 책임은 영화 바깥에 있는, 학교나 현장 실습 업체, 교육청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일반 관객에게도 가닿는다. 일말의 고민 없이 ‘존버가 승리한다’는 말을 대중적 기조로 내세우는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아이들은 혼자 견디고 감내하는 태도를 자연스레 지니게 된다. 10대의 본능인 저항심과 표출 의지를 은연중 거세당한 아이들은 자신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줄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함구한다. 유난히 고된 어느 날, 댄스 교습소에서 말없이 나온 소희는 건물 밖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로 내리는 눈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아래층에서 올려다본 한정된 시야 안에서, 계단을 더 오르지 않은 채 그대로 한참을 서 있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던 눈으로 눈발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끌벅적한 교습소 안에선 인지하지 못했던, 그러나 조용히 쌓여가는 무언가를 응시한 그의 시선이 밟힌다.

*이어지는 기사에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김시은 배우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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