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가 60년대 이후 프랑스영화에 양분을 제공해온 무형의 학교였다면, 페미스는 무려 반세기 동안 프랑스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키워온 유형의 학교다. 1945년 마르셀 라비에가 설립한 영화학교 이덱의 후신,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꿈의
문을 열어준다는 페미스(FEMIS; Institut de Formation et D’Enseignment pour Les Metiers
de L'Image et de Son). 실기 위주의 교육으로 많은 인재를 키워낸 프랑스의 국립영화학교 페미스의 원장 알랭 오클레르가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영화교육기관을 둘러보고 프랑스의 영화교육제도를 소개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서울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중앙대
등 국내 교육시설을 돌아보고 영화진흥위에서 주선한 강연으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갔다.
방문 첫날, 막 서울에 도착한 피곤함을 지우며 나타난 오클레르 원장은 점잖고 자상해 뵈는 인상의 은발 신사였다. “한국에서는
새롭고 젊은 인력들의 영화 제작을 어떻게 지원하는가에 관심이 많다”고 입을 연 그는, 페미스의 수장답게 영화교육에 대해 조근조근 들려줄
말이 많았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젊은 인력들이 감독이 되고, 작가가 되고, 사운드 엔지니어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목표”라는 그의 말대로,
페미스는 직접 영화제작에 나설 수 있도록 실기의 전문적인 교육을 지향한다. 연출, 시나리오, 촬영, 음향, 무대연출 등 7개 분야로 구성된
페미스의 교육과정은 “3년반 동안 실기 경험을 쌓으면서 계속 영화를 제작해보는” 것이다. 단편영화부터 시작해 다큐멘터리, 장편 극영화,
종종 주류 영화계의 작품들까지 10편 이상의 제작에 참여해 경험을 쌓게 돼 있다. 매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1천여명의 응시자 가운데
선발되는 인원은 35명 전후. 국가 차원에서 영화인력 양성을 적극 지원하고자 사립인 이덱을 국영화하면서 페미스로 바뀐 85년 이후 현재까지
12기, 약 400여명의 인력을 배출해냈다.
“아직 대단한 유명인사는 없지만 활동은 활발하다”는 오클레르 원장의 말대로, 페미스 인력들의 활약은 눈에 띈다. 올해 세자르상만
해도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로랑 캉테는 이덱 출신이고, <당신의 영원한 친구 해리>로 후보에 오른 감독 도미니크 몰은 이덱에 입학해 페미스를
졸업했으며, <크림슨 리버>로 음향상 후보에 올랐던 사운드 엔지니어 시릴 올츠도 페미스 출신이다. 뿐 아니라 레티시아 마송, 노에미 르보브스키
등 주목받는 여성감독들과 프랑수아 오종 등도 페미스 출신들이다. 오클레르 원장은 “페미스는 어느 정도의 교육과 경험을 줄 뿐, 그 이후는
자신이 계발할 몫”이라지만, “학생들은 배움의 과정에 있고, 아직 어리다 해도 진지하게 감독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젊은 잠재력을 귀히
여기는 이 학교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원장을 맡은 지는 2년반에 불과하지만, 페미스의 전사와 출신 학생들의 궤적은 물론 프랑스 영화산업의
변천사를 꿰고 있는 오클레르 원장은 20여년간 영화 및 시청각 관련 공공기관에 몸담아왔다. 프랑스의 영화진흥위원회랄 수 있는 국립영화센터(CNC)에서
일했으며, 국영방송인 SFP와 TV5 등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연륜과 직함이 두툼해진 그의 영화 이력 밑바탕에는, 사실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과 고다르, 트뤼포 등 누벨바그에 넋을 잃었던 영화광의 소년기가 숨어있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돈과 창작,
사람 문제, 기술적인 데이터들의 혼합이란 것”이라는 그는, 창작이나 기술보다는 다양한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제학 쪽이 자신의
분야라고 말하지만. 자기 표현적인 예술과 대중적인 성공의 혼합물, 그러나 “창조적인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제작의 기회를 늘려가고, 또한
그 기회가 젊은 재원들에게도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의 현재진행형 계획이다.
글 황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정진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