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를 배경으로 권력의 암투와 닌자의 활약상을 그린 <올빼미의 성>을 연출한 시노다 마사히로(篠田正浩·70) 감독. 60년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을 절묘하게 담아낸 <사랑의 편도차표>로 데뷔한 그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 함께 60년대 쇼치쿠 누벨바그를 이끈 인물이다. 정치적 주제를
주로 다뤄왔던 오시마 감독과 달리 그는 현대 일본의 병폐를 모더니즘적인 방법론을 통해 풀어왔다. 와세다대학에서 에도시대의 일본 연극사와
고대사를 전공하기도 한 그는 시대극에도 정통해 64년에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단편집 <막말>(幕末)의 1편을 <암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역시 시바 료타료의 나오키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올빼미의 성>은 닌자들의 액션영화이기도 하지만 닌자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 나아가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의 정체성에 대한 시노다 감독의 깊은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새로운 스타일의 닌자영화에 대해 시노다
감독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어떤 시대였다고 할 수 있나.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천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무사 집단이 일본 각지에 집결하여 천하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던 시대다. 이 쟁란은 1500∼1600년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 시기 유럽의 대항해시대에 맞물려 일본은 처음으로 서구문화를 체험하게 되었고, 기독교와 총포류의 전래로 문화 쇼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쟁란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출현으로 천하 통일의 조짐을 보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권력이 확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권력기반이 붕괴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시대는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된다. 그뒤 도쿠가와 막부에 의한 300년간의 쇄국정치가 이어지게 된다.
세트의 규모가 엄청나다. 어디에 어떻게 만들었으며 촬영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나. 또 CG는 어떻게 활용했나.
히데요시의 거대한 성과 저택을 비롯해서 마을 전체를 오픈 세트로 재현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CG 및 디지털
합성을 전제로 해서 기획을 했기 때문에 전혀 손을 댈 수 없는 장면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첨부해 넣었다. 세트 스케일은 디지털
합성 및 CG, 배경그림 등의 종합적 기술이 가져온 결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군림하던 교토에는 그가 직접 지휘하여 지은 건축 구조물이
남아 있으며, 마쓰다케(松竹) 교토 촬영장소에 그 내부를 조립하여 디지털 합성의 쾌거를 이뤄냈다. 예를 들어, 환한 달빛을 받으며 히데요시
성의 큰 지붕 위를 달리는 닌자의 모습은 CG로 처리했고, 배경은 로케이션으로 촬영해 넣은 실제 사진을 디지털로 합성했기 때문에 감독인
나와 닌자 역의 나카이 기이치(中井貴一)는 촬영 현장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닌자들의 동작이 현대적이며 서구의 첩보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닌자라고 해도 인간의 한계는 있다. 나는 결코 육상경기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하는 것과 같은 대담하고 기발한 트릭을 시도하지 않았다.
격투기신도 사극의 고유성을 배제한 채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실제로 전쟁 체험을 해본 적이 있는 M에게 의뢰했다.
당신은 닌자라는 존재에 대해 “현대의 CIA 같은 것”이라고 어디선가 얘기했다. 또 스탈린시대의 소련이 일본에 스파이를 보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스파이 또는 닌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은 패전 결과, 무장을 포기한 채 미국의 핵우산 아래 안주해왔다. 모든 정보는 미국에 의해 관리되었고 일본은 본질적으로 독립국이 아니었다.
정보를 지배할 힘이 없는 국가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없다. 그래서 나는 국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민주적인 국가의 존재를
꿈꾸며, 자유를 갈구하는 국민의 영웅을 닌자나 스파이로 묘사하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남자 쓰즈라 주조와 고헤이의 갈등의 본질은 무엇인가. 또 두명의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조의 이야기는 이 영화를
러브스토리로 읽을 수도 있게 한다.
주조(重藏)는 인간의 도덕성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고헤이(五平)는 청년의 야심과 좌절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연애 장면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자유롭지 못하고 쾌락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나는 히데요시인가…. 진정한 내가 누군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히데요시의 이야기 등에서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얼핏 역사극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서 이같은 주제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이같은 닌자의 정체성 혼란이 현대적으로는 어떤 상황과
비유될 수 있겠나.
언제부터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을까? 나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접하게
되면서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러한 사고와 이미지 저편에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요토미의 ‘인생은 꿈속의 꿈이다’라는 이야기 등에서는 일종의 허무주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또 결정적인 순간, 쓰즈라 주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하지 않은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히데요시는 임종 전에 “덧없는 이슬처럼 사라지는 나는 누구인가? 난파(難波)는 무상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난파’란 히데요시가 천하를지배한 성이 있던 오사카를 말한다. 권세를 자랑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일본인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무상감에서 달아날 수는 없었다.
나는 한반도에서 전래된 불교가 일본에서 심각하고 철학적인 허무사상으로 전화돼 정치 집행에서도 무책임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대륙침공 및 진주만, 가미카제 특공대, 천황 신앙에도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무상함과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격렬히 저항하다가도
최후에는 죽음으로써 구제받기를 원하는 신앙, 혹은 미학이 일본 역사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연간 자살자 수가 3만명에
달하고 있는 현실은 일본인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심각한 광경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나 이야기나 모두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다. 또 이 영화는 시노다 감독의 영화로는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되는 작품이다.
어떻게 읽으라고 권해주겠나.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서기>를 보면 고대부터 일본과 한국은 왕조가 교체할 때마다 분쟁을 일으켰고,
양국은 정치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인 운명은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일본 전통문화의 상징인 교토를 수도로 정한
간무(桓武) 천황의 모친은 백제의 망명 귀족이었다. 일본 천황가에는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백제의 왕조에도 역시 일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올빼미의 성>을 촬영한 교토의 우주마사(太秦)는 한반도에서 도래한 민족인 진씨(하타)가 정착해서 일본에 양잠 기술을 보급한
유서 깊은 곳이다. 닌자 중에 핫토리(服部)라는 유명한 일족이 있는데, 이 성씨는 옷을 만드는 부족, 즉 조선에서 건너온 직조 기술자들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품게 한다. 닌자의 시초는 혹시 중국 대륙에서 탄생한 곡예집단의 기량이 한반도를 경유해서 일본에 정착한 것은
아닐까?
시대극을 여러 번 연출해왔다. 당신은 과거의 이야기에서 향수를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것인가.
나는 중학생이었던 14살 때 일본의 패전을 체험했다. 그리고 일본의 권위, 신화, 전통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됐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 그리고 신화에 그려진 일본의 실상을 파헤치고 싶어졌다.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자문자답에 대한
해결을 찾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일본의 고전문학과 고고학, 역사학을 공부하는 데서 출발점을 찾았다. 그리고 일본 민중이 고대부터 만들어온
전통문화, 가령 가부키, 노, 인형극 등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그 표현과 양식에 진한 감동을 받으면서 영화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최근 일본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흔히 젊은 세대를 두고 섬세하고 개인적인 세계를 고집하며 타인에게는 아주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이들의 성향이 새로운
종류의 예술운동의 본질을 형성해 간다고 할 수 있다. 권위와 오래된 틀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불합리한 등장에 의해 파괴되어지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아시아영화에 대한 반응이 굉장하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또 최근의 한국영화를 본 적 있나. 만약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나.
일찍이 세계의 문명을 이끌어온 서구문화의 출구가 막히게 되자,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원시미술에서 갱생의 힌트를 얻었고, 고흐로 대표되는 인상파
화가들은 호쿠사이(北齋)나 우타마로 등의 풍속화(浮世繪 에도시대에 성행하던 유녀나 연극을 다룸)에 자극을 받아 피할 수 없는 전통의 폐쇄감에서
탈출해왔다.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일찍이 식민지 민족으로서의 지위에 만족해 왔지만, 그들의 민족성이 사멸된 적은 없었다. 세상에 다양한 언어와
식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각 민족에도 독자적인 문화와 철학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매력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써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라쇼몽>이 보여준, 아시아에도 서구적 사상이 존재했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이 현재 신세대의 아시아영화의 경우에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한국영화는 <서편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이다. 이중에서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나의 졸작 <소년시대>와 매우 흡사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리고 <서편제>의 위엄과 기개넘치는 연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다음에도 대형 시대극을 만들 것인지 궁금하다. 차기작의 계획을 설명해달라.
다음 작품으로는 독일과 합작으로 <조르게>를 준비중이다. 1933∼44년에 걸쳐 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대하여 진주만을 습격하기까지의 일본의
정계와 군대, 민중의 생활을 그리는 <아사히신문> 기자 오자키 히데미(尾崎秀實)와 스탈린이 보낸 밀사 조르게의 이야기이다. 일본의 쇼와(昭和)시대가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를 스파이의 눈을 통해 재현할 것이다.
정리 문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