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서는 상반기 한국영화의 흐름과 산업적인 특색, 경향을 한 차례 정리한 바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대중영화와는 다른 맥락과 각도에서 다뤄야 한다. 독립영화는 단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근간이자 뿌리는 결국 독립영화의 창의성과 새로운 목소리에서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독립영화지만 가장 회복이 느린 곳도 독립영화다. 이에 <씨네21>에서는 독립영화의 현재를 말하기 위해 네명의 영화인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분들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한편으론 날카로운 진실을 품고 있다. 영화의 범주가 급변하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는 지금, 독립영화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중이다. 독립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2022년 상반기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을 짐작해본다.
|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독립영화 기획자로, 2022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 9인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 이호준 |더숲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예술영화관의 영화 편성과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다.
| 박혜진 |엣나인필름 극장사업부 팀장. 독립영화를 배급·마케팅하고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의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 백재호 |<대관람차>(2018), <시민 노무현>(2019), <붉은 장미의 추억>(2022)을 연출하고 <최선의 삶>(2021), <역할들>(2022)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시장은 <범죄도시2> 이후 회복세로 가다가 여름 시장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다시 숨 고르기를 하는 모양새다. 반등할 때는 정작 혜택을 보지 못하다가 위기에는 더 큰 위기를 맞는 게 독립예술영화들이 아닌가 싶다. 올해 상반기 한국 독립영화 시장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린다.
이호준 멀티플렉스를 비롯한 영화산업 전반이 침체를 겪고 있는 건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잠깐 반등이나 회복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냉정히 보면 팬데믹 이후 3년치 누적된 결과들이 오히려 이제 드러나는 모양새다. 개봉이 밀린 영화들이 차례로 나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거다. <범죄도시2> 이후로 멀티플렉스가 살아나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도 낙수 효과가 있을 거란 기대가 잠시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관객 증가로 이어지진 않았다.
백재호 한국 독립영화의 경우 올 하반기 기대작들이 있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2019년의 <벌새>, 2020년의 <남매의 여름밤> 같은 영화들을 잇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 이렇다 할 흐름으로 짚어줄 작품이 많지 않지만 꾸준히 제자리를 지키는 영화들이 나왔다고 본다.
박혜진 독립예술영화관은 지난해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고 본다. 침체가 오래되다 보니 관객의 패턴이 달라진 부분이 확실히 감지된다. 일단 규모가 큰 영화들의 선전이 예술영화 시장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이 됐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상업, 예술, 독립영화의 관객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아트나인의 경우 상반기엔 침수 피해도 겪었고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하반기에는 기대를 걸 만한 독립영화가 꽤 있다. 그래서 하반기 대중상업영화 시장의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회복세를 기대한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희귀한 사례
분리를 언급했는데 극장을 중심으로 본다면 아트나인을 필두로 더숲아트시네마(이하 더숲)나 에무시네마, 라이카시네마 등 독립예술영화전용관 혹은 작은 규모의 상영관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도 이야기해볼 만하다.
박혜진 맞다. 50석 정도 규모의 마이크로 시네마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관객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찾아가는 관객은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한데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경쟁도 있다보니 다양한 아이디어와 발굴이 시도되고 있다. 결국 우리 극장을 찾아주는 관객이 누군지 알아야 하고, 그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틀어야 한다.
백재호 연출, 제작 입장에서 말하자면 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제작지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작품은 꾸준히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런 작품들이 어떻게 관객에게 소개되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그동안 부족했다는 거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점차 배급,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다행히 지원사업도 그런 방향으로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부족한 게 현실이라 개별 작품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고군분투해왔다는 인상이다.
이호준 작은 영화관들은 다들 비슷할 것 같은데, 올해 더숲에서 제일 스코어가 높은 영화 중 하나가 <헤어질 결심>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독립영화는 아니지만 독립예술영화 카테고리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영화들도 예술영화라고 인식되면 작은 영화관을 중심으로 저변을 넓혀나가기도 하는 게 올해의 독특한 양상이다.
박혜진 <헤어질 결심>이 입소문에 힘입어 상영관을 점차 넓혀나가는 방식으로 흥행한 것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걸 견인한 곳이 독립예술영화관들이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은 독립예술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니즈에 맞는 영화였다. 첫주에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했다가 관객의 외면을 받았던 작품이 호평을 중심으로 관객 사이에서 확고한 지지를 이어나갔는데, 그 중심에 독립예술영화관, 혹은 마이크로 영화관들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마이크로 영화관들도 안정적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영화로서 <헤어질 결심> 같은 영화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향으로 새로운 관람 형태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동시에 중요한 전환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립예술영화를 통칭해서 쓰고 있지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는 엄연히 구분된다. 한편으론 규모가 큰 영화인 <헤어질 결심>이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시대의 독립영화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수 있을 듯하다.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자면 독립예술영화 시장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김동현 <헤어질 결심>은 엄밀한 의미에선 상업영화다. 독립 혹은 예술영화를 트는 극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상영이 어렵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의 경우 칸영화제 수상과 더불어 예술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박혜진 1년 중 220일 정도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 행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거다. 다만 독립예술영화의 범주에 대해 질문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변화는 관객이 훨씬 빠르게 받아들이고 인지한다. 관객은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영화들과는 다른 매력을 <헤어질 결심>에서 발견하고 뒤늦게 찾아보고자 했다. 그때 멀티플렉스에서는 이미 그 영화가 사라지고, 작은 영화관들에서 상영 중이다. 자연스럽게 관객이 그곳으로 몰리고 <헤어질 결심>을 통해 주변 작은 상영관의 존재도 알게 된다. 그렇게 유입된 관객이 새로운 충성 고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호준 <헤어질 결심>만의 사례는 아니다. 몇년에 한번씩 비슷한 영화들이 나온다. 과거 <옥자> 때 멀티플렉스 3사가 상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작은 영화관들이 <옥자>를 틀며 알려진 경우도 있었다. 상반기 한국 독립영화 중 눈에 띄는 작품은 주로 다큐멘터리들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극예술영화들은 전통적인 독립영화 이외의 범주까지 좀더 확장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효과도 있었던 걸로 보인다. 작은 영화관 입장에선 극장 프로그래머가 어떤 구성을 하는지가 절대적인데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을 땐 시도하지 않았을 과감한 확장이나 실험적인 시도들도 많아졌다고 느낀다.
멀티플렉스에서 한번 빠져나간 영화의 불씨를 작은 영화관 중심으로 다시 지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다. 북미의 롤아웃(소규모 개봉 후 반응이 좋으면 상영관을 늘려가는 방식)처럼 처음부터 의도한 배급 방향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이채롭다. 멀티플렉스 중심이었던 한국 영화산업에서 다시 과거처럼 소규모 단관 극장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신호로 볼 수도 있을까.
박혜진 멀티플렉스의 대안을 말하기엔 아직 작은 규모이고, 작은 영화관들 각자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너무 앞서나가는 이야기 같다. 다만 작은 영화관의 경우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존을 위해 발빠르게 대처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트렌드를 좀더 빠르게 받아들이고 관객의 니즈에 맞춰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강점은 있다.
백재호 반대로 작은 상영관들의 발빠른 대처나 아이디어가 멀티플렉스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 상영 호흡이 길어지기도 하고, <헤어질 결심>처럼 상영관이 다시 늘어나기도 하고. 다만 이건 반대로 말하면 영화마다 부침이 심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극장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관객의 확보를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작은 영화관은 독립예술영화의 새로운 변화가 될 것인가
김동현 독립예술영화관들은 2004년 CGV가 아트하우스를 론칭한 이후 지금까지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그 수가 늘었다. 문제는 작품 수가 그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상영할 곳은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 영화 편수의 증가에 비해 시장 자체가 확대되었는지 묻는다면 회의적이다. 물리적 규모의 확장도 그렇지만 조금 더 디테일하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독립영화 시장과 예술영화 시장은 일치하지 않는다. 독립영화 시장은 단발성으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히트작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한 데 반해 예술영화를 찾는 관객은 다양한 경로로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독립영화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한때 다양성 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독립, 예술, 저예산 등 성격이 다른 영화들을 무리하게 섞어놓은 시기가 있었다. 우리 시대의 독립영화의 기능과 범주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을 약간 수정한다면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독립예술영화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관찰이 요구된다.
김동현 맞다. 독립영화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노력해왔다. 이를테면 공동체 안에서 호응받았던 독립영화들이 있다. 2017년 이후 <벌새> <메기> <아워 바디> 등이 가져온 흐름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 이후 영화제, 특히 독립영화제들을 보면 관객이 다시 몰리고 관심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걸 지속시키고 일반 상영까지 확산시키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요구, 희망적인 변화들이 엿보이는데 그게 영화제 안에서만 그치지 않도록 장치들이 필요하다.
박혜진 그런 의미에서 극장 중심의 체험들이 중요하다. 단지 영화 상영뿐 아니라 작은 영화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고민한다. 이런 부가적인 경험까지 신경 쓰는 영화들은 관객도 많이 몰리고 지속성도 있다. 최근 굿즈 문화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백재호 아까 멀티플렉스의 낙수 효과가 더이상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독립예술영화 내부에서 서로 확장되는 경험들은 존재하는 듯하다. 영화제를 즐기다가 예술영화전용관을 찾고, 특정 영화를 보러왔다가 전용관에서 상영하는 다른 영화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전시나 다른 행사를 보다가 영화에도 눈길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 전통적인 시네필들과는 다른 관람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저변이 넓어지다보니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독립, 예술, 극, 상업영화의 경계도 점점 무의미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호준 극장은 점차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영화를 배급, 유통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다보면 새로운 관객이 유입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시설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영진위를 비롯한 공적 지원은 제작쪽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김동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점진적으로 배급, 마케팅, 시설에 대한 지원은 증가해왔다. 여기서 인식의 변화가 동반되었으면 한다. 사실 독립예술영화가 문화로서 존재하느냐를 먼저 물어야 한다. 지금의 지원 형태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만들어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힘들게 각자도생, 자력갱생하는 데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정책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면 그에 따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영화발전기금은 늘 딜레마가 있다. 재원의 다각화는 늘 제기되는 부분이지만 무엇을 근거와 명분으로 재원을 늘릴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화적 공간의 중심으로서의 극장, 문화 다양성의 근간으로서의 극장을 말할 때가 되었다. 현재 한국의 스크린은 3500개 가까이 되는데 그중 독립예술관은 100개도 채 되지 않는다. 작은 영화관처럼 각자의 힘으로 텃밭을 일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시설 확충이 절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하나하나의 공간이 다 소중하고, 모두 정당한 지원을 받는 영화 공간, 시네마테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악역을 맡아서 공격적인 질문을 하나 하자면 영진위의 한정된 예산이 독립영화쪽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불만도 있다.
김동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 점이다. 작은 파이를 놓고 다들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 안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효율을 따질 필요가 있지만 영화산업이 아니라 문화예술산업이라는 더 큰 범주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으면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공공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는 물을 부어야 한다. 이건 수익과 회수를 위한 투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채우려고 물을 붓는 게 아니라 공공의 시선에서 문화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공익사업이다. 지금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지키고 있는 분들이야말로 한국 영화산업의 마지노선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여러 기관들과 연계하여 지역 기반, 장소 기반의 문화 커뮤니티를 정착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혜진 이 지점에서 지방의 작은 영화관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지역 작은 영화관들만 해도 사정이 열악한 가운데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온도 차가 심하다. 경기권에만 가도 정말 열악한 시설에서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꾸려나가는 상영관들이 많다. 결국 기반은 극장이라는 플랫폼이다. 의미만으로 버티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지방 극장들에 대한 시설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서 근래에는 많이 애쓰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더딘 건 어쩔 수 없다.
독립영화 내부의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올해 한국 독립영화의 경향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 올해 눈에 띈 작품들을 각자 하나씩 언급한다면.
이호준 주목할 만한 극영화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게 작품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면 박루슬란 감독의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같은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받은 장르영화인데,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고 합작으로 만들어진 방식도 남다르며 장르적 재미도 충실한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가 꼭 흥행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이 너무 안타깝고, 그런 점에서 다시 마케팅과 배급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작은 영화관들의 홍보 채널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백재호 예전엔 영화가 좋으면 관객이 찾아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가령 서현우 배우가 주연한 <썬더버드> 같은 작품은 장르적인 면이 꽤 강한데 규모는 저예산이다. 이걸 독립영화로 포지셔닝하는 게 유리할지 상업영화로 홍보하는 게 좋을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말했던 독립, 예술, 저예산 영화들은 모두 각자의 맥락이 있는데 지금은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조금씩 섞여 있는 것 같다.
김동현 한편으론 그게 독립영화의 위상이 올라가고 인지도가 넓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들 위기라고 하지만 한국 독립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꾸준히 성장해왔다. 다큐멘터리가 강세인 건 올해뿐 아니라 몇해 동안 이어진 경향이다. 역대 독립영화 박스오피스 1위도 다큐멘터리였다.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다큐멘터리는 독립영화에 포함되어 있지만 일반 상영관에서 좀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정치적인 메시지에 따라 충성도 높은 관객층이 모이기도 한다. 주제와 상황에 따라 폭발력이 있다는 말이다.
박혜진 여성 서사에 대한 영화는 다큐, 극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칭을 다녀왔는데 5편의 프로젝트가 결이 비슷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고 본다. 올해도 흥행은 다소 아쉬웠지만 <불도저에 탄 소녀> 같은 영화는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동현 여성 서사가 다양해질 거라는 데 동의한다. 독립영화가 사랑해온 주제들은 계속 바뀌는, 아니 넓어지는 중이다. 여성 서사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벌새>처럼 개인의 성장담을 다루던 영화들이 사회적 관계를 고민하는 영화로 넓어지는 중이다. 다양한 영화를 통해 독립극영화를 보는 관객층도 넓어지길 기대한다. 최근 몇년간 좋은 데뷔작을 만든 독립영화 감독이 많다. 이들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다시 활력이 돌아올 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성적표의 김민영>도 무척 재미있었다.
백재호 결국엔 독립영화 중에서 분위기를 끌고 갈 만한 히트작이 나와주어야 한다. 독립영화다운 차기작을 만들어주는 감독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립영화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고 규모가 큰 영화로 넘어가는 것이 몇년간의 흐름이긴 했다. 결과적으로 독립영화가 마치 대중영화 진출을 위한 발판처럼 사용되는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김동현 몇 가지 사례로 그렇게 단정하긴 무리가 있다. 다만 다른 영화들에도 영향을 미칠 흥행작이 나와줘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독립영화가 상업영화처럼 이윤 회수를 최우선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허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대중상업영화는 50억원 남짓한 제작비라면 중저예산이겠지만 독립영화에서 10억~25억원이 투자된다면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다른 상상을 해볼 여지도 확보할 수 있고. 그렇다고 예산이 무한정 커진다고 좋은 일도 아니다. 독립영화의 방식이 가진 에너지가 어떤 계기로 스파크를 일으키면 정체된 한국영화 전체에 새로운 활력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창작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감독들의 고집이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계속 만나고 싶다.
박혜진 예산으로만 따질 문제는 아니지만 웰메이드 독립영화가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앞서 상업영화의 낙수 효과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그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코로나를 거치면서 입증된 게 아닐까 싶다. 멀티플렉스가 회복된다고 예술영화전용관들까지 잘되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독립예술영화 중에 크게 성공하는 작품이 나온다면 거기서 독립영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다.
다시 돌고 돌아 독립영화가 무엇인지를 묻기 위해서는 결국 이 질문으로 시작해야 할 듯하다. 여러분은 어떤 독립영화를 보고 싶은가. 독립영화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김동현 차이를 보고 싶다. 서울독립영화제만 해도 1년에 1500편이 넘는 작품들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메시지나 캐릭터가 다 비슷하다.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이니 문제 인식이 비슷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어떤 뾰족함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개방식이든, 연출이든 독립영화에 기대하는 건 거칠어도 새로운,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른 에너지나 관점이다.
박혜진 독립예술영화에 기대하는 바는 상업영화와 다를 것이다. 내게 독립영화는 마음에 남겨두고 싶은 것들, 그런 순간들을 만나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닐까 싶다. 하반기 영화들을 소개한다면 <성적표의 김민영>을 시작으로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 등 하반기에 아트나인에서 준비 중인 좋은 작품들이 많다.
이호준 원론적인 이야기겠지만 나 역시 감독의 개성과 색깔, 야심이 드러나는 영화들을 만나길 기대한다. 독립영화 하면 어둡고 내면에 천착하는 이야기가 다수라는 편견도 있는데 최근에는 액션 등 여러 장르와 결합한 영화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안에서 어떤 인장이라고 해야 할까. 대사가 됐건, 장면이 됐건 그런 특별함이 드러나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
백재호 그래서 영화제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제에서 그런 뾰족한 작품들을 뽑아줘야 창작자들도 그런 작품이 응원을 받는다는 걸 확인하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이런 영화들을 받아준다면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을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제작지원을 심사할 때도 잘 다듬어진 부분만큼 뾰족한 부분을 응원해주었으면 한다.
이호준 <성적표의 김민영>은 윤가은 감독의 영화나 <종착역> 같은 영화까지 포섭할 수 있는, 싱그러운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대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연상되는, 힙한 요소가 있는 <성덕> 같은 영화도 기대된다. 작은 영화들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극장에 설 수 없는 환경과 상황들이 안타깝다. 대중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화제작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그 낙수 효과로 더 작고 개성 있는 독립영화들도 힘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 더숲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흥행하는 독립영화의 우산 아래 작은 영화들을 선보일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