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로투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하와이 고급 리조트 화이트 로투스의 내부는 실상 개판 오분 전이다. 임신 사실을 숨기고 취업한 수습 직원은 사무실에서 출산을 하고 시한폭탄 같은 리조트의 하루하루에 지친 매니저 아먼드는 술과 약에 의존한다. 실의에 빠져 리조트를 찾은 타냐는 스파숍 직원 벨린다와 사업을 도모하지만 둘의 이상은 조금씩 어긋나고, 신혼여행 중인 레이철은 완고한 남편 셰인을 보며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 불안을 느낀다. <화이트 로투스>는 다양한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는 리조트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인간 군상의 실체를 풍자하며 계급 갈등, 인종차별, 여성 혐오, 세대 담론 등 동시대 미국 사회에 산재한 사회문제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제74회 에미상에서 10관왕을 차지했다.

<돕식: 약물의 늪>

1996년 제약회사 퍼듀 파마는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산재가 많은 1차 산업 집약 지역을 거점으로 옥시콘틴의 대규모 판촉에 도입한다. 애팔래치아산맥 탄광 진료소의 의사 피닉스도 퍼듀 파마의 주요한 타깃이다. 1999년 옥시콘틴의 오남용으로 인한 전국적인 마약중독 현상을 목격한 마약단속국 요원 브리짓은 옥시콘틴 출시에 드리운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2003년 버지니아주 검사 릭과 랜디는 퍼듀 파마를 기소하기 위해 수사에 돌입한다. 제목의 ‘돕식’은 마약중독자가 다음 투약 이전에 겪는 통증을 뜻하는 말로 <돕식: 약물의 늪>은 마약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건조한 톤으로 그린다. 피닉스를 연기한 마이클 키턴은 제74회 에미상에서 주연상을 안았다

<스테이션 일레븐>

유명 배우 아서가 <리어 왕>을 공연하던 도중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객석에서 공연을 보던 지번은 혼비백산인 객석을 건너 무대에 혼자 남겨진 아역배우 키어스틴을 임시 보호하기 위해 동생 프랭크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날은 유례없는 독감이 세계를 덮쳐 다수의 인류가 말살된 날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년 후, 키어스틴은 ‘예술로서 세상을 잠시 정상으로 만들자’는 신념을 지닌 유랑 극단과 함께 미국을 돌며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을 공연한다. <스테이션 일레븐>은 2014년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경험한 적 없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더없이 시의적절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 텍스트가 작중 서사와 맞물며 넘나드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천국의 깃발 아래>

1984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브렌다와 그녀의 15개월 딸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르몬교도 신자인 형사 젭 파이어리는 용의자로 브렌다의 남편 앨런 레퍼티를 체포한다. 젭은 앨런으로부터 독실한 모르몬교 교리 속에 운영되는 레퍼티 가문의 고압적인 가부장 체제와 보수적인 지역주의, 그리고 반조세 운동 등 가문의 반사회적 신념 속에서 브렌다가 고통받았음을 알게 된다. 젭은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자신의 신조이자 삶의 근간인 모르몬교의 어두운 이면을 발견하곤 괴로워한다. 젭의 수사, 브렌다의 레퍼티가 입성기 그리고 1800년대 초 모르몬교 선지자의 종교 창시 과정 등 세 타임라인이 교차하는 플롯은 종교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악행은 시대를 막론하고 끝없이 되풀이됨을 이야기로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