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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제작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보고 싶은 걸 끝까지 하기로 했다”
송경원 2022-08-18

이정재, 정우성을 26년 만에 한 스크린에 담아낼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다.”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헌트>가 완성되기까지 몇년에 걸친 시간이 마치 몇 개월처럼 짧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신세계> <무뢰한> <아수라> <공작> 등 선 굵은 영화들을 제작해온 한재덕 대표에게도 <헌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음에 하면 되지, 하다가는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갈수록 커진다. 지금 이 순간 전력투구해도 원하는 바가 성사될까 말까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 지금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를 헤치고 뚝심과 결기로 만들어진 <헌트>는 사나이픽처스의, 나아가 한국영화의 현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부문에서 먼저 공개한 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공작>(2017)에 이어 두 번째다.

= 전략적으로 구상한 마케팅은 아니다. 그저 영화가 잘 나왔으니 기왕이면 큰 무대에서 소개하고 해외 관객의 반응도 살피고자 했다. 물론 칸에서 공개하고 여름에 개봉하는 일정이 빡빡하긴 하다. <공작> 때도 촉박한 시간 때문에 고생했다. 이번에도 이정재 감독에게 모니터 시사를 외국에서 한다고 생각하고 편집해 달라고 했는데 말이 쉽지 그게 그렇게 되겠나. 못할 짓을 시킨 셈인데 결국 해내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칸에서의 반응과 국내 시사 반응에 온도 차가 있는데.

= 칸에서는 아무래도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 따라가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액션 구성이나 서스펜스적으로는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국내 개봉을 앞두고 이정재 감독이 편집을 다시 하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쳐내고 좀더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손을 봤다. 사실 감독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인데 이정재 감독이 워낙 시야가 넓고 귀가 열려 있는 연출자다. 무엇이 관객에게 가장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중심에 두고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 첫 연출 데뷔작임을 감안하면 큰 규모의 프로덕션이 필요한 모험이다. 이정재 배우가 메가폰을 잡기까지의 과정에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

= 처음 <남산>의 시나리오를 본 건 내가 한창 <공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비슷한 시기의 안기부 배경 영화라 눈길이 갔지만 투자가 쉽진 않을 거라고 봤다. 정권이 달가워하는 소재도 아니다 보니 <공작>의 투자조차 잘 안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출연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알게 된 이정재 배우가 이야기에 호감을 느껴 판권을 구입했다는 걸 알게 됐다. 워낙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는데, 시나리오를 꾸준히 고쳐오는 걸 보고 나도 어느새 함께 참여하게 되더라. 정지우, 한재림 감독 등 여러 연출자들과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고, 이야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정재씨니까 직접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인 것 맞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하고. 내가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해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 일단 컨셉이 선명하다. 목적이 같은데 이데올로기가 다른 두 남자가 각자 다른 경로로 대통령 암살을 계획한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 한명의 안타고니스트와 대결하고 그를 저지하는 게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라면 <헌트>는 두명의 안타고니스트가 두개의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는 영화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면서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다. 두 사람이 왜 함께하고,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필수적이고 그 지점이 해결 안되면 시작할 수 없었다. 이정재 감독이 2년 반 넘는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붙들고 다듬어낸 끝에 마침내 합의점에 도달했다. 시나리오가 나오면 제일 먼저 설득할 대상은 함께할 스탭들인데 그 부분이 납득된 거다. 워낙 이쪽 일을 잘 아는 사람이라 어지간한 기성 감독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았고 관객이 원하는 포인트를 잡아내는 감각이 있다. 내 지난 경험에 비유하자면 <헌트>는 <공작>과 <베를린>(2012)의 장점을 함께 지닌 영화다.

- 두 영화의 어떤 장점들을 섞었다는 말인가.

= <헌트>의 핵심은 액션과 서스펜스의 공존이다. 스파이물은 기본적으로 서스펜스가 강점이지만 느리고 정적인 경우가 많다. 가령 <공작>의 경우 김정일을 만나 거래를 하고 진짜 임무를 들키지 않은 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미션이 영화를 내내 끌고 간다. 긴장감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대신 액션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반대로 <베를린>은 액션이 거의 절반 이상인데 거기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스파이물의 밀도 높은 공기와는 사뭇 다르다. <헌트>의 경우 두 가지의 다른 방향성을 하나로 뭉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꽤 많은 상상력이 가미되기도 한다. 사실 남의 나라에서 M16 소총을 난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적으로 권총을 이용한 총격 신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건가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보고 싶은 걸 끝까지 하기로 했다. 단순하게는 기관총을 난사하는 사운드에 대한 동경 같은. 그런 즐거움을 전면에 확장시킨 대중오락영화다.

- 역사를 모티브로 하지만 상상력이 가미된 픽션임을 처음부터 고지한다.

= 그 지점이 중요했다. 극장에 역사 수업을 받으러 오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할 건 오락영화의 스탠스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였다. 예를 들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전통적인 스파이물을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영화가 표방하기에는 장르가 소구하는 관객층이 협소하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라면 투입된 자본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렇게 해서 전통적인 스파이물이 확장된 사례가 이를테면 ‘007 시리즈’나 ‘본 시리즈’다. 얼마나 사실적이고 말이 되는지보다 얼마나 재밌게 보이는지를 우선순위에 두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사례다. <헌트>의 경우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한 액션의 연쇄가 핵심이다. 눈만 즐거운 영화가 아니라 눈도 즐거운 영화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제작했다.

- 코로나19 이후 극장이 위축되면서 현장에도 변화가 있나. 이번 영화에서 해외 로케이션 대신 국내 세트에서 미국, 일본, 태국을 재현한 것도 그런 변화 중 하나일까.

= 프리프로덕션의 치밀한 고민과 예산의 효율적인 사용이 중요해진 건 사실이다. 다만 꼭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국내에서 찍은 건 아니다. 가령 <모가디슈>처럼 대부분의 장면에서 해외 로케이션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거기에 맞는 기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여러 방식을 동원해 더 효과적인 화면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방식도 열려 있다는 정도의 변화다. CG 기술이 발전한 부분도 있고 미술 등 스탭들의 숙련도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전반적인 경향이라기보다는 영화마다 각기 다른 상황의 문제다. 다만 후반작업의 완성도가 몇년 전과 비교해 상당 부분 올라간 건 사실이다.

- <범죄도시2>가 극장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후 여름 시장을 두고 이른바 빅4가 차례로 개봉 중이다. 제일 마지막에 개봉하는 <헌트> 입장에서는 관객의 피로감 등 여러 부담이 있지 않나.

= 코로나19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극장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고, 완성되었지만 여전히 개봉을 못하고 있는 영화들이 많다. 어찌됐건 자본이 돌아야 다음 영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될 텐데 고여 있다는 게 제일 위험하다. 2주씩 간격을 두고 사이좋게 개봉해서 다 같이 잘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자유시장 경쟁에서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에 최종 선택은 관객의 몫이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뒤 결과를 기다릴 따름이다.

- 최근 티켓값이 상승하면서 기회비용을 생각한 관객의 선택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관람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 그런 변화까지 감안하고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사실 모든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랐으니 소비나 관람이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좋은 영화, 재밌는 콘텐츠는 결국 관객의 선택을 받을 거라고 믿는다. 예전 <아수라> 때도 극장에서는 손실을 입었지만 시간이 지나 부가판권 시장을 거쳐 결국엔 손익분기를 넘겼다. 이런 시기에도 한국 콘텐츠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크고 작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단한 일이다. 그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작품의 완성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눈높이가 올라가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지런히 따라붙어야 한다.

- 감독 이정재는 어떤 연출자인가.

= 한마디로 표현하면 집념의 사나이. 해야 한다고 정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사람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거기에 모든 정열을 쏟았고, 연출을 할 땐 누구보다 꼼꼼하게 작업했다. 이제 개봉을 앞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홍보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책임감이라고 해도 좋겠다. 허성태 배우와 코카인 댄스를 추는 걸 보고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주변을 살피지 않는 것도 아니다. 폭우로 <JTBC 뉴스룸> 출연을 취소했던 것처럼. 사실 이정재, 정우성 두 스타 배우가 홍보하는 게 효과가 크지만 조심스런 부분도 있다. 스타 마케팅으로 관심이 생긴 관객이 영화가 기대와 달랐을 때 느낄 당혹감이나 실망감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너무 과하지 않고 노련하게 영화를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사나이픽처스와 일을 안 해본 배우는 있어도 한번만 하는 배우는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끈끈한 의리를 자랑한다. 이번에는 이성민, 황정민, 주지훈, 김남길 배우 등 역대급 출연진이 분량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 이정재 감독도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너무 감사한 응원을 받았다. 이성민 배우는 대본을 보냈는데 도착하는 와중에 보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출연료를 주면 화낼 거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주지훈 배우는 할 역할이 없으면 와서 슬레이트라도 치겠다고 하고. 그런 마음들에 울컥한 순간들이 많다. 오히려 이들의 출연 때문에 시선이 분산될까 고민이었는데 이정재 감독이 일본 시퀀스에 몰아서 해결했다. 솔직히 스케줄을 맞추는 게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산 와서 촬영하고 메이크업도 못 지우고 바로 KTX 타고 간 배우도 있었다. 기대만큼 걱정도 많았는데 관객이 깨알 같은 재미로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 사나이픽처스는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한국영화의 한축을 맡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영화라는 게 참 신기하다. 누군가 그럴듯한 환상을 만들어낸 건데 그게 거짓말인지 알면서도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환호한다. 그럼에도 그걸 만드는 사람이 진심을 다하고 그걸 즐기는 사람이 진솔하게 반응하면 더이상 환상도 가짜도 거짓말도 아니다. 매번 그 과정을 보고 겪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짜라고 실감한다. 목표가 있다면 오랫동안 살아남는 거다. 거기에 욕심을 하나 더 내자면 신인감독님들이 싹을 틔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박찬욱, 봉준호 이후의 세대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역시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새로운 감독들이 나올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데 일정 부분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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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