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고가도로에서 맞는 늦봄의 새벽은 묘하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밖에 오를 수 없는 곳에 두발로 멈춰 서서 평화시장 상가를 바라보면, 시간을 잠시 정지시키고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분좋을 수 있는 특권이지만, 평화시장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적 시간의 처연함이, 낮게 내려앉은 구름과 아직 남은 한기와 어울려 낯선 과거와 대면하고 있는 듯한 착각과 밑모를 불안감을 함께 자아낸다.
일요일인 5월19일 새벽 3시부터 청계고가도로 반을 막고 <오아시스>의 막바지 촬영이 이루어졌다. 이날 분량은 청계고가에서 차가 막히자 설경구가 문소리를 안고 고가도로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 청계고가를 다시 막을 수도 없고, 영화 속 시간이 저녁 무렵이어서 해뜨기 전에 빨리 찍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테이크가 많기로 이름난 이창동 감독이지만, 이날만은 두 시간에 여섯컷을 찍는 놀라운 속도전을 펼쳤다. 이창동 감독은 촬영중에는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날은 촬영이 거의 끝나가는 탓인지 기자들에게 “이 영화가 감동적인 멜로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해달라”라고 웃으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오아시스>는 전과자 남자(설경구)와 장애자 여인(문소리)과의 사랑을 다룬 ‘감동적인’ 멜로드라마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에 이은 이창동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지난해 11월에 촬영에 들어갔으며, 이번주 타이에서의 3일간 촬영일정을 끝으로 크랭크업한다. 관객에겐 8월 초에 선보일 예정. 글 허문영·사진 이스트필름 제공
사진설명
1. 자장면을 함께 먹고 최고의 데이트를 마친 두 사람이 공주(문소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로가 막히자 종두(설경구)가 갑자기 공주를 안고 나와 춤을 춘다.
2. 1의 장면 촬영을 위해 차량 100여대와 스탭 80여명이 동원됐다. 촬영은 날이 밝은 아침 6시쯤 끝났다.
3. 신중하고 꼼꼼하게 찍기로 이름난 이창동 감독도 이날만은 두 시간에 6컷을 찍었다. 촬영허가를 받은 시간이 길지 않은데다, 날이 밝으면 저녁의 색감을 낼 수 없기 때문.
4. <박하사탕>에 이어 <오아시스>에서 다시 연인으로 만난 설경구와 문소리. 지금까지와는 달리 하도 순식간에 오케이가 나는 바람에 설경구는 "오늘은 다른 감독님하고 촬영하는 기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