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무자비하게 돌아가고 있다. 촬영장소로 빌린 술집은 여섯시까지 비워줘야 하는데, 아직도 40여컷을 더 찍어야 하고, 한번 술병이 날아갈 때마다 바닥을 말끔히 닦아야 하는 복잡한 상황. 그러나 첫 영화를 찍고 있는 최진원 감독은 쉴새없이 시원스러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일사천리로 제작진을 몰아간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있을 때도 감독은 나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주연부터 연기지도와 현장정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듯한 윤다훈이 대신 기운차게 외치기 때문이다. “자, 의리로 한번 더!”
룸살롱 마담과 깡패 형제의 전쟁을 그린 <패밀리>는 최진원 감독의 우연한 경험에서 시작된 영화다. 술 마시러 룸살롱에 들른, 당시엔 방송작가였던 최 감독은 험악해 보이는 남자와 악을 쓰며 싸우고 있는 호스티스를 봤다. 그땐 이 광경에 좀더 살을 붙이면 재미있겠다고만 생각했지만 어느새 시나리오를 썼고 필름으로까지 연결됐다. 조폭영화가 쏟아지고 있던 터라 제작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황신혜를 주연으로 결정하고 언론에 보도까지 된 뒤 제작사가 손을 떼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감독과 함께했던 신경은 프로듀서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까지 몰렸다. 그 암담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걸까. <테마게임> <남자 셋 여자 셋> 등을 쓴 최진원 감독은 결국 하룻만에 40컷 넘는 분량을 모두 찍고야 말았다.
룸살롱 ‘패밀리아’에서 찍는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의 촬영은 김민종과 윤다훈이 연기하는 깡패 형제가 2차를 거부하고 달아난 호스티스를 내놓으라며 쳐들어온 장면. 큰형을 자처하는 윤다훈과 몸을 던지며 연기한 김민종, 차갑게 카운터에 앉아서도 간간이 장난에 끼어드는 황신혜와 함께 8월을 기약하는 <패밀리> 촬영은 웃음 속에 끝났다. 사진 오계옥·글 김현정
사진설명
1. 호스티스에게 모욕을 당한 깡패 성대(김민종)는 룸살롱을 습격하지만 마담 해숙(황신혜)은 굴복을 모르는 기센 여자다.
2. 난장판이 된 룸살롱에 멋모르고 찾아든 영철(이동건). 이곳 호스티스의 기둥서방인 그는 느닷없는 의협심에 불타오른다.
3. 코미디영화답게 웃음이 그치지 않았던 <패밀리> 촬영현장에서, 배우들은 틈만 나면 한자리에 모여 농담과 고민을 주고받았다.
4. 과격하고 능력있는 깡패 성대는 인천을 접수한 뒤 중국까지 진출하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한갓 룸살롱 마담에게 발목을 붙들린다.
5. 현장을 휘어잡은 주연 윤다훈. 그가 연기한 성준은 동생 말 잘 듣는 어리숙한 깡패지만 항상 사랑에 마음을 열어두는 대책없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