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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현지에서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이주영이 한 말들
임수연 2022-06-09

영화는 발견의 여행이다

올해 칸영화제 최고의 스타는 <브로커>팀이었다. <브로커>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앞두고,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로커>팀이 레드 카펫에 나타날 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팬들이 뜨겁게 환호했다. 영화제 기간 이들이 공식 석상에 설 때 했던 말들도 매번 화제에 올랐다. 감독 및 배우가 참석한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기자단과 가진 티타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처음 시놉시스 단계에선 심플하게 아기를 버린 엄마와 브로커가 만나 유사 가족을 형성하는 이야기로 구상했다. 그런데 여러 각도로 리서치를 거듭하면서 좀더 복잡한 스토리를 떠올리게 됐다. 또한 <브로커>는 결국 유사 가족보다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가족 이야기와는 달라진 부분이다."

"언어의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 연출하는 것에 대해 나 역시 걱정이 많았다. 배두나씨는 일본어 버전과 함께 비교해서 시나리오를 읽고 싶다고 했다. 일본어에서 ‘…’으로 여백을 담아 표현한 부분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배두나씨와 4시간 정도 함께 소통하면서 훨씬 살아 있는 대사로 다듬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송강호씨는 매일 현장 편집본을 보고 와서 내게 의견을 줬다. ‘어제 촬영 현장 편집본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지금 쓴 이 테이크보다는 두 번째 이전 테이크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유심히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그런 말들이 중요한 가이드가 됐다."

"어떤 메시지를 던지거나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영화를 찍지는 않는다. <브로커> 역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아기를 파는 여정을 통해 펼쳐지는 이야기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방식은 내가 영화를 만들 때나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영화는 곧 발견의 여행이다."

"KTX 안에서 터널을 지나갈 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장면은 세트 촬영이 안전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나와 홍경표 촬영감독은 실제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찍고 싶어 했다. 기차가 터널에 몇분 몇초에 진입하고 빠져나가는지 시간을 계산한 뒤에 타이밍을 맞춰 대사를 하는 촬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기적적으로 두 번째 테이크에서 지금의 장면을 얻어냈다."

상현 역의 송강호

"일본인 감독님이라 아주 디테일하고 정교하게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시놉시스에서 조금 더 발전된 단계의 글이었다. 자신의 머릿속엔 다 있지만 시나리오에는 여백을 남겨두고 촬영하면서 공백을 채워가는 스타일의 감독님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데뷔작이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홍상수 감독님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브로커>를 두고 왜 악인을 선하게 표현하느냐고 하는 감상이 있는데, 그렇게 장르영화의 잣대로 접근하면 당황스럽고 의아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간의 변화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중후반에 가서 이 영화의 문법에 익숙해질 때 <브로커>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 우성이 ‘친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일본식 한자 표현이고 우리에겐 일상적이지 않다. 그런데 극중 대사의 뉘앙스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의미가 담겨 있는 신선한 표현이었다. 일본어 시나리오를 일본 배우들이 연기했거나,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여진 글을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거나, <브로커>처럼 일본어-한국어 번역을 거친 시나리오로 촬영한 작품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대사일 것이다."

동수 역의 강동원

"이번 영화에서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뒤로 한발 빠져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싶다는 일념으로 미니멀하게 연기했다. 실제 보육원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다가 얻은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입양을 굉장히 가고 싶어 한다. 보육원에 차가 들어오면 혹시 나를 데리러 온 게 아닐까 늘 생각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더라. 그리고 보육원에서 자란 신부님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용기를 내서 여쭤봤다. ‘혹시 엄마 안 보고 싶어요?’ 더이상 그런 마음은 없다더라. 나이를 먹어서 보고 싶다는 감정은 사라져버렸다고. 하지만 죽기 전에 딱 한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두 가지 심리를 꼭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관객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연기했다."

"실제로 해진이와 놀아주고 우성이를 돌보면서 찍었다. 우성이는 그냥 편하게만 해주면 가만히 있는데 해진이는 계속 놀아줘야 하지 않나. (웃음) 두 가지 이유로 해진이와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첫째, 해진이에게 <브로커>가 진짜 행복하고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있었고 둘째, 그렇게 해야 아역배우들이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

소영 역의 이지은

"소영이가 상현, 동수, 해진, 우성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했던 것처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음…. 생각해본 적 없지만 ‘너는 정말 행운아야’라고 해주고 싶다. 나도 왜 이런 불행이 내게 왔을까 느끼는 순간이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복이 많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다시 나를 걸을 수 있게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것이 죄가 더 가볍냐며 의문을 표하는 대사가 있다. 당시 감독님에게 따로 면담을 요청해서 이게 소영 개인의 가치관인지 아니면 감독님이 소영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은 영화의 주제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다음 미팅 때 답을 주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그 대사는 소영의 생각이며 그 장면이 필요한 이유를 친절하고 납득 가능하게 설명해주셨다. 그 대사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과는 달라서 이게 영화의 주제라고 한다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확실히 여쭤보고 시작하고 싶었다."

이 형사 역의 이주영

"소영과 이 형사는 나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좀더 소영과 비슷한 입장에서 이 일을 바라볼 수 있다. 이 형사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사회제도적인 측면에서 미혼모를 도와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는 먹으면서 대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감독님은 대사가 다소 뭉개지더라도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촬영 당일 그 공간의 우연성에 많이 기대서 찍기도 했다. 두나 언니와 함께 현장에서 스테비아 토마토를 자주 먹곤 했는데, 하루는 실제로 토마토를 먹으면서 연기해보라고 제안하셨다. 좁은 차 안에서 상반신 위주로 연기를 하다 보면 연기가 제한될 수 있는데 이러한 두잉(doing) 액션을 주시니까 굉장히 편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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