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동대문 어느 건물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한 날, 은숙은 애인 민수에게 잠시 이별을 고한다. 그녀는 친구 미희의 애인 상혁을 남몰래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수는 은숙을 잊지 못한 채 노래방에서 일하는 한 소녀와 여관에 들어가고, 은숙은 여관 앞에서 상혁을 유혹한다. 이미 상혁과 결혼을 약속한 미희는 민수에게 은숙을 붙잡아달라고 요구한다. 이 너저분한 관계가 계속되는 한가운데서, 민수는 은숙의 마음을 돌리고자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라고 주절거려보지만, 그 목소리는 아무 힘도 갖지 못하는 헛소리일 뿐이다.■ Review 이 영화의 제목은 묘하다. 유치한 말장난 같기도 하고 지루하고 난해하지만 별 내용없는 치기어린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심지어 외우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날아가고…>는 의외로 일상의 한순간을 낚아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들이미는 영화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맹세 따위는 며칠도 가지 못할 객기에 불과하다고, 이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놓는다.
<나는 날아가고…>는 대부분 이처럼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들로 이어져 있다. 46분에 불과한 이 짧은 영화 속에서 여자들은 누가 먼저 사랑에 빠졌는가를 두고 다투고, 남자들은 “네가 사랑을 알아”라는 입에 담기 쑥스러운 대사를 술기운에 실어 외쳐댄다. 한 걸음만 떨어져 있어도 그 모든 상황이 비루하기만 한데, 그들은 세상에 다시 없는 거창한 사건을 만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않는다.
그 모습은 우리 모두의 기억과 겹쳐지는 것이어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남자를 묶어두기 위해 임신하고 싶어할 수 있고, 바람에 날리는 노끈을 보면서도 아득해질 수 있다. 살인을 꿈꾸다가도 어깨 위에 얹힌 미운 친구의 머리에 더 신경이 쓰일 수 있다. 영상원에서 홍상수 감독에게 영화를 배운 김영남 감독은 사소한 몸짓에도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목하는 법을 익힌 듯하다.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을 놓친 뒤 공허하게 되풀이되는 이 영화의 대사와 노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쓸쓸하게 환기시킨다. <나는 날아가고…>는 2001년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돼 주목받았던 작품. 그러나 칸영화제가 주는 엄숙함에 짓눌리면서 볼 필요는 없는 영화다. 김현정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