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향해 가꾸고 유지하는 “사람다움”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회적 성원권, 즉 한 사람을 사회적 관계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사회적 성원권이란 비단 큰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만남과 대화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상호작용 의례: 대면 행동에 관한 에세이>는 “사람다움”의 존중과 무시에 관련된 미시적 상호작용의 규칙들을 다룬다. 고프먼을 참조하자면, 인격의 존중과 무시는 생각보다 아주 손쉽게 일어난다. 상대방이 면전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사람은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몇번 끄덕이는 것만으로 사람은 존중받았다고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인격 침해 양상이 심각하다는 것은 최근 분명해지고 있다. 인격 침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물론 성폭력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갖는 주권이 타인에 의해 빼앗기고 침해당하는 것은 인격 살인으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사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인격을 침해한 이들로부터 종종 “고의가 아니었다”라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법원에서는 “고의성 여부”가 죄질을 판단하는 데 주요 준거가 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고 행해지는 인격 침해야말로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음은 마음속에 타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감이 애초부터 결여되었다는 사실, 타인의 인격을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물로 당연시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실은 “당신의 인격이 그토록 중요한지 몰랐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 큰 모욕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태도와 문화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차원에서 결여돼 있을 때, 문제는 더 악화된다. 인격을 침해당한 이가 인격을 침해한 자, 나아가 세상을 향해 구구절절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고 설득하고 호소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자신의 말이 외면당할 때, 문제제기가 과민한 자의식 때문으로 치부될 때, 인격을 침해당한 이는 “결국 내 문제인가? 내 요구가 너무 무리인가?”라는 자기 검열의 심리적 악순환에 빠져든다. 그리고 자괴감과 무기력에 빠져 인격을 되찾으려는 싸움을 포기하게 된다.
사회학은 권력이 강압적인 힘의 행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인의 문제제기에 대한 집단과 조직의 응답 방식 자체가 권력이 행사되는 장치다. 문제를 제기하면 다음과 같은 전형적 반응들이 나온다. “뭔가 오해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라고 변명하기. 책임 전가하기. 관행으로 둘러대기. 마지못해 사과를 해야 한다면 단서를 달아 사과하기(“불쾌했다면 미안하다”).
권력은 이렇듯 사람을 불확실성으로 내몰아 몸과 마음을 소진시켜버린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은 조금 달리 해석해야 한다. 계란은 원래 계란이 아니었다. 계란은 원래 돌이었다. 돌은 바위를 두들기면서 점차 계란이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이 말도 해야겠다. 바위는 원래 바위가 아니었다. 바위도 원래 돌이었다. 바위는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돌들과 뭉치며 거대해진다. 그러면서 바위는 모든 돌들이 동등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진실을 망각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