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캐나다의 한 인디 밴드가 첫 내한공연을 연다. 디스트로이어라는 이름의 1인 밴드로 본거지 밴쿠버를 넘어 세계 곳곳에 마니아를 양산한 그룹이다. 프런트 맨이자 유일한 고정 구성원 댄 베하르는 내한 1년 전,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Poison Season》을 발표했다.
‘파괴자’라는 과격한 이름을 접했을 때는 하드록 아니면 헤비메탈 밴드이겠거니, 멋대로 추측하고서 찾아 듣지 않았다. 그야말로 섣부른 판단이었다. 2012년 언젠가, 우연히 <Chinatown>이란 곡을 들었다. 부드럽게 흐르는 기타 선율에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 생각나는 몽환적인 가사와 목소리, 신시사이저와 전자음악이 있었다.
2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성실하게 디스코그래피를 채운 밴드의 가장 최신 음반은 올해 발매한 《Ken》이지만, 오늘 추천할 음반은 위에 언급한 곡이 있는 2011년 앨범《Kaputt》이다. 총 9곡 50분짜리 스튜디오 앨범에는 요즘 잘나가는 음악가들의 결과물처럼, 한 장르 대신 여러 요소를 혼합하고 재구성한 음악이 섞였다. 일렉트로닉, 소프트 록, 스무드 재즈와 팝 요소가 80년대 복고풍 신스 팝 멜로디를 중심에 두고 흐른다고나 할까.
어떤 음반은 특정한 곡 한둘이 특별히 좋아서 편애한다. 반대로 물 흐르듯 분위기에 취하는 음반도 있다. 《Kaputt》는 전적으로 후자에 가깝다. PBR&B 같은 장르가 최신 음악 트렌드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요즘, 이 음반을 들으면 마치 사라지는 과거의 조각 퍼즐을 마주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