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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이탈리아] 리미니와 라벤나

펠리니의 바다, 안토니오니의 바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아마코드>. 고향 리미니의 바다가 주요 배경이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리미니(Rimini) 출신이다. 피렌체에서 아드리아해 방향인 동쪽으로 계속 가면 닿는 중부 해변도시다. 리미니 바닷가의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백사장, 특히 황금빛 모래는 언제 봐도 장관이다. 아마 인기 있는 해변으로는 여전히 리미니가 이탈리아에서 (어쩌면 유럽에서) 최고로 꼽힐 것이다. 마치 우리의 해운대 같다. 명성이 오래됐고, 여름이면 전 유럽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넘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아 밀라노 같은 북쪽 도시에서 리미니로 향하는 기차는 여러 나라의 청춘들, 그리고 이들의 열기에 동참하려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펠리니는 관광지 리미니 특유의 흥분된 환경에서 자랐다. 청년 펠리니가 백수나 다름없는 고향 친구들과 시간을 죽치는 일상을 다룬 자전적 영화가 초기작 <비텔로니>(1953)다. 펠리니는 20년이 지나 스타 감독이 된 뒤, 한번 더 고향을 찾는다. 이번에는 10대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 작품이 <아마코드>(1973)다. 말하자면 <아마코드>는 <비텔로니>의 프리퀄인 셈이다.

리미니, 펠리니의 고향

<비텔로니>는 고향을 배경으로 했지만, 실제 촬영이 진행된 곳은 주로 로마 인근의 오스티아(Ostia) 해변이었다. 반면에 <아마코드>는 리미니에서 중요한 시퀀스를 거의 다 찍었다. 제목 ‘아마코드’는 리미니 사투리로 ‘나는 기억한다’라는 뜻이다. 펠리니는 10대 시절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당시는 1930년대로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이탈리아를 지배할 때다. <아마코드>에는 ‘티타’라는 말썽꾸러기 소년을 중심으로 10대들이 펼치는 성적 모험담, 그리고 이들의 일상과 무관한 듯 보이는 파시즘의 비정상이 함께 전개된다. 한쪽에선 철없는 소년들이 과도한 성적 호기심을 아슬아슬할 정도로 드러내고, 다른 한쪽에선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티타의 부친 같은 사람들이 파시스트들로부터 곤욕을 치르는 장면들이 교차되는 식이다.

<아마코드>에서 펠리니가 강조하는 리미니의 매력은 세곳에 집중돼 있다. 그곳은 시내의 광장, 인근의 전원, 그리고 바다이다. 저녁이면 광장을 산책하며, 이웃들을 만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는 게 당시 주민들의 일상 중 하나였다. TV가 없던 시절, 광장은 하나의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주요한 공간이었다. 이를테면 연례축제, 파시스트들의 정치집회, 또 자동차경주대회 같은 흥분된 행사들이 열렸다. 이제 막 사춘기를 통과하는 티타 일행은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여성들을 구경하기 위해 광장에 나가곤 한다. 광장 장면은 현지에서가 아니라, 당시 펠리니가 거의 단독으로 이용하던 치네치타의 세트장인 ‘스튜디오 5’에서 촬영됐다. 이곳은 펠리니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지금은 ‘펠리니 스튜디오’로 불린다.

<아마코드>의 중간쯤에 등장하는 전원 풍경은 리미니가 바다뿐 아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들판을 곁에 두고 있는지 한눈에 알게한다. 정신병원에 있는 미친 삼촌과 함께 소풍을 가는 장면에서다. 길옆에는 푸른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황금빛 밀밭이 펼쳐지는 곳이다. 가족들은 시골의 어느 한적한 농장에서 마당 위에 임시 식탁을 마련하여 함께 식사를 한다. 빵과 포도주, 그리고 치즈가 준비된 간단한 식탁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이곳 시골을 한순간에 낙원으로 바꿔놓는 것 같다. 전원 장면은 모두 리미니 현지에서 촬영됐고, 지금도 이탈리아 중부 시골의 평화로운 모습을 담은 대표적인 시퀀스로 남아 있다.

<아마코드>에서 리미니의 바다는 미지의 세상을 향한 벅찬 공간으로 제시된다.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저 멀리 바다로 나가기도 하고, 파시즘 시절 국가의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 만든 대형 여객선 ‘렉스’(Rex)를 바라보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여기서도 바다는 역시 미지의 세상을 향한 설레는 출발지로 그려져 있다.

중부의 또 다른 대표적인 해변도시 라벤나(Ravenna)는 리미니에서 북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해운대가 주로 외지인에게 점령당해, 현지인은 바로 옆에 있는 송정해수욕장으로 가듯, 리미니가 외국인의 바다라면, 라벤나는 이탈리아인의 바다다. 한때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이 역사적인 도시는 5, 6세기에 건립된 초기 기독교 성당들로 유명하다. 특히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 산타폴리나레 누오보(Sant’Apollinare Nuovo) 성당은 비잔틴 양식 건축의 귀중한 성지로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교회 내부의 예수의 삶을 그린 모자이크 장식은 비잔틴 미술의 대표작들이다.

도시 중심의 역사 깊은 유적지뿐 아니라 라벤나는 리미니처럼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백사장의 바다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붉은 사막>(1964)에서 그린 라벤나는 그런 관광지, 또는 명승지가 아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라벤나로 상징되는 산업화된 공간, 또는 오염된 공간이다. 라벤나는 바다 옆의 석유화학단지로도 유명한데, 안토니오니는 주로 이곳을 중심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라벤나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 또 눈부신 백사장의 바다는 단 한 장면에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누런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들, 검정색 물로 변한 냇물들, 그리고 시커먼 펄밭처럼 변한 오염된 흙 등이 강조돼 있다.

펠리니의 <아마코드>에선 파시즘 시절의 사람들이 티타로 상징되는 미성년에 머물기를 강요당했거나, 그의 삼촌처럼 미쳤거나, 파시스트들처럼 비정상의 광기에 빠져 있었다. 펠리니에 따르면 파시즘이란 게, 세상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은 산업화의 오염된 환경과 마주친 주인공 줄리아나(모니카 비티)가 점점 미쳐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선 파시즘의 정치가 아니라, 산업화의 경제가 사람의 목을 죈다.

줄리아나는 라벤나의 소문난 명승지들은 놔두고, 이상하게도 주로 오염된 공장지대를 아들과 함께 산책한다. 구두는 시커먼 흙에 푹푹 빠지고, 또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선 이상한 연기까지 나오고 있다. 균형 감각을 잃은 줄리아나는 이곳을 마치 산책하기 좋은 공원처럼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안토니오니는 줄리아나가 산책하는 이런 오염된 공간을 조형적으로는 대단히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첫 장면인 공장지대 스케치부터, 화면은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수직과 수평의 간결한 회화처럼 묘사된다. 말하자면 오염된 연기를 내뿜는 공장지역 전체가 혐오가 아니라 미술적 표현의 대상으로 변한 것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 라벤나의 안개 낀 항구 모습.

‘심리는 곧 조형’

1964년 <붉은 사막>이 발표됐을 때, 장 뤽 고다르는 안토니오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붉은 사막>은 심리적이기보다는 조형적입니다”라고 고다르가 말하자, 안토니오니는 “같은 의미”라고 대답한다. 고다르는 당시 영화계의 다수가 <붉은 사막>에서 표현된 ‘색깔의 심리’를 주로 강조한 것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곧 고다르는 심리보다는 조형적 표현법에 더 주목했다. 안토니오니의 답은 ‘심리는 곧 조형’이라는 것이다. 심리도 중요하고, 그것은 컬러는 물론 조형에 의해서도 표현된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두 감독이 강조한 것은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인 ‘컬러’보다는 ‘조형’이었다. 안토니오니의 말대로 <붉은 사막>의 라벤나는 색깔도 중요하지만, 거의 모든 장면이 ‘점선면’으로 구성된 회화처럼 표현돼 있다. 칸딘스키, 혹은 몬드리안이 카메라를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화면은 두 화가의 추상화를 닮아 있다. 펠리니의 흥분된 바다와 비교하자면, 안토니오니의 바다는 엄격하게 추상화돼 있는 셈이다. 아마 그래서 <붉은 사막>은 더 고독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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