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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헤일, 시저!
김혜리 2017-08-16

※<혹성탈출: 종의 전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엘리자의 내일>

<엘리자의 내일>은 개혁 운동에 청춘을 바쳤으나 좌절한 채 부모가 된 세대의 이야기다. 의사 로메오(아드리안 티티에니)는 똑똑한 딸 엘리자가 부조리에 전 루마니아 사회를 탈출해 서구의 엘리트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엘리자의 유학길에 뜻밖의 사고로 생긴 장애물은 로메오에게 부정한 청탁을 행하게 만든다. 어느새 혐오하던 부조리의 일부가 돼버린 중년의 이야기는 망연자실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신세’의 네트워크는 거의 희극적이다. 청탁은 금전이 아니라 뒷날의 청탁과 맞교환되고, A가 B에게, B가 C에게 연줄을 빌렸는데 C가 A의 힘을 필요로 한다면 A가 C에게 갚기도 한다. 서클 안쪽에서 보면 공정해 보이지만, 급행을 잡아탄 누군가 대신 기회를 빼앗긴 외부자에겐 그렇지 않다. 누구 한 사람 자유롭지 못한 그물망을 암시하듯 <엘리자의 내일> 속 대부분의 대화는 전화벨 소리에 방해받는다.

07/25

<덩케르크>의 줄거리를 쓰는 데에는 두줄도 필요 없다. 앞서 적은 대로 캐릭터와 드라마로 이루어지는 통상적 의미의 스토리는 없다시피하다. 대신 지상, 해상, 공중에서 흘러가는 세 타임라인의 시점과 시선의 교차 대비가 내적 서사를 만든다. 이를테면 우리는 스피트파이어 조종사 두 사람이 교환하는 (동일한) 수신호를 공중과 해상에서 두 차례 보게 되는데 두 번째에는 앞선 안심이 착각이었음을 발견한다. 겁에 질려 전장으로 돌아가길 격렬히 거부하는 군인(킬리언 머피)은, 며칠 (혹은 몇 시간) 전 물에 빠진 병사들에게 헤엄쳐서 해안으로 돌아가라고 냉철하게 지시하는 상관이었다. 영화는 이처럼 상반된 두 이미지를 주석 없이 그냥 연달아 던진다. 한편 <덩케르크>는 데이비드 보드웰 같은 영화학자가 장면 지속시간과 더불어 이미지 배열의 패턴도 도해할 법하다.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잔교’편의 숏이 제일 넓고, ‘해상’편은 요트 내부에, ‘공중’편은 좁은 전투기 콕피트에 갇혀 있다. 한편 땅과 바다, 공중에 자리한 극중 인물의 시야의 깊이는 부등호가 반대로 그려진다.

전쟁의 의의를 말로 논하는 것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처칠의 목소리뿐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라는 격언은 <덩케르크>가 감상성을 피한 방법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돌아보면 이 영화는 여느 전쟁영화 못지않은 개수의 비탄과 영웅적 에피소드를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 병사 (가명) 깁슨(아뉴린 바나드)은 살기 위해 영국군으로 위장했지만 배가 어뢰를 맞자 반사적으로 해치를 열어 다수의 영국군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나중에 정체가 밝혀지자 사지로 떠밀린다. 문스톤호가 기름 뜬 바다에서 병사들을 구조하고 불가피한 순간 기수를 꺾을 때 요트 뒤쪽에서는 남은 군인들이 화염에 휩싸여 허우적거린다. 문스톤호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무관한 어이없는 희생은, 혼란 중 분별을 잃은 아군의 실수로 발생한 허망한 죽음도 전사(戰死)임을 말한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일화들을 언어로 설명하거나 시간을 지체하며 강조하지 않은 채 난사한다. <덩케르크>는 더할 나위 없이 리얼한 전쟁영화지만 피가 적게 나온다. 팔다리가 날아가는 전장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 가운데 중심이 아니라는 판단일 것이다. 톰 하디가 분한 스피트파이어 파일럿의 희생과 자원해서 달려온 영국 민간 선박들의 도착은 이 영화에서 가장 ‘할리우드 엔딩’스러운 장면이지만 음악을 제외한 연출은 최대한 말과 표정을 걷어내고 풍경으로서 두 사건을 제시한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를 감정적으로 가장 고조시킨 것은, 예상대로 연료가 다한 전투기의 프로펠러가 공중에서 멎는 순간의 정적이었다. 요트와 어선이 케르크 해안으로 다가오는 숏은 우리를 간절히 귀향을 기다리던 병사 입장에 세워 감격의 큐사인을 보내지만, 화면 안 영국인들은 손조차 흔드는 일 없이 단호하고 담담하다. 이름 모를 영국 시민의 군상 가운데 낮은 굽의 구두를 신고 갑판에 서서 야무지게 전방을 주시하는 여성은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영국판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생각하는 ‘덩케르크 정신’은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위치에서 감각한 전쟁의 총합. 그러고 보니 내가 <덩케르크>를 처음 본 날 ‘기념비’라는 단어를 떠올린 까닭은 ‘기념비적’이라는 예찬의 의미가 아니라 무수한 돌로 쌓아올린 무명 용사 참전탑 같은 모뉴먼트를 닮았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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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영화인 줄 알았는데 전쟁영화이고, 전쟁영화인 줄 알았는데 재난영화거나 감옥 탈출 영화로 판명되는 반전이 줄 잇는 여름이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하 <종의 전쟁>)은 원제와 한국어 제목 모두 3부작을 마무리짓는 인간과 유인원의 전면전을 예고하지만 실상은 복수를 중심에 둔 서부극과 탈출극이다(전투 장면은 오히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반격의 서막>)에 더 많다. 3부작 제목의 혼돈을 염두에 둔 듯 <종의 전쟁>은 ‘빨간 펜’으로 단어를 강조해 전사를 정리한다). 이 대결에서 이스트우드 역은 물론 시저(앤디 서키스)고 적수는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을 멘토로 모시고 있는 것 같은 강경파 대령(우디 해럴슨)이다. 소중한 존재를 대령의 손에 잃은 시저는 새 정착지를 찾아가는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죄지은 자에게 고통을 돌려주려 한다. 실험실에서 학대당한 코바(토비 켑벨)의 원한을 다스리려 했던 시저는 코바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된다. 초반의 숲속 전투를 제외하면 대규모 액션 세트 피스는 적의 눈을 피한 탈옥이고 가장 격렬한 전쟁은 시저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인간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도중에 유인원의 스토리로 시점을 바꿨고 <반격의 서막>은 인간과의 공존에 대해 견해가 다른 시저와 코바의 대립이 주요 갈등이었다. <종의 전쟁>에 이르러서는 잔인한 안타고니스트인 대령이 있지만 실상은 시저와 시저의 싸움에 가깝다. 서사적으로 대령 캐릭터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같은 리더로서 시저를 자극하고 회의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올리버 스톤의 킬러>의 소름을 다시 돋게 하는 우디 해럴슨은 시저와 독대하다 어느 순간 말귀 못 알아듣는 후배를 다그치듯 짜증스럽게 외친다. “도대체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전시행동을 왜 사감(私感)으로 받아들여? 네가 날 죽이면 동족이 당할 일을 생각해봐!” 인간이 유인원에게 지나치게 센티멘털하다고 불평하는 지경이다. 지능으로 인간을 추월한 시저는 <종의 전쟁>에서는 시험에 들고 모순을 드러내며 어느 때보다 인간적 상태에 이른다. 영웅의 일대기로서 21세기 <혹성탈출> 3부작이 내게 매력적인 이유는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나중에는 창대한 상승일로의 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의 전쟁>의 시저는 <반격의 서막>의 갈등으로 돌아가 동족까지 살해하며 지킨 철학이 한낱 복수욕보다 미약하다는 진실에 직면한다. 시저는 마지막 영화의 마지막 장에서 각성하고 위대해지지 않는다. 정념과 원한을 이기지 못해 다시 무리와 떨어졌다 온전한 복수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치명상을 입는다. 시저는 말하자면 유인원의 모세다. 인간의 일원인 줄 알고 성장해 핍박받는 동족의 지도자가 되고 엑소더스를 주도하지만 과오를 범하고, 본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닿기 전에 눈을 감는 여정이 모세의 그것과 나란하다. <종의 전쟁>은 현실정치의 때를 묻히기 전에 영웅을 떠나보냄으로써 유인원 혹성의 건국신화를 완성한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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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오랑우탄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은 마침내 둔한 인간 관객이 유인원 캐릭터를 기억하고 개성을 구별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성공을 했다. 처음엔 적수로 만났지만 충직한 행동대장이 된 로켓, 현대 프랜차이즈 영화 악역 베스트에 꼽힐 코바, 그리고 지혜롭고 다감한 오랑우탄 모리스다. 서커스 출신 모리스는 어린 인간에게 부드러운 면을 보이고 예술적 재능이 있으며 상황을 넓게 본다. 상황에 흔들림 없는 당위를 확인시키는 무리의 미네르바다. 모리스가 시저의 가장 존경하는 동지이자 경청하는 반대자인 이유는 그의 카리스마가 시저의 권위와 겹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특질들은 나로 하여금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끝날 때까지 모리스를 여성으로 추정하게 만들었다. 그러저러한 속성이 여성만의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까지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이미 여성이 심하게 배제된 이야기에서 굳이 모리스까지 남성이라고 정했는지가 미스터리다. 게다가 모리스를 연기한 배우는 여성인 카린 코노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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