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5월 29일 새벽, 평양 을밀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작은 체구의 여인이 무명천으로 엮은 줄을 타고 기와지붕 위를 위태롭게 기어올랐다. 5m 높이라고는 하나, 11m 축대 위에 지어진 누정이었기에 떨어지면 죽음이었다. 사실 죽기로 작심한 터였다. 목을 매려던 무명천이었다. 허나 마음을 달리 먹었다. 지붕 위에 쪼그려 앉아 아침을 맞은 그녀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비로소 외쳤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그마저 다시 깎고 해고를 남발하는 공장주의 횡포를! 규탄했던 그의 이름은 강주룡, 평원고무농장 노동자였다. 9시간30분의 점거농성 끝에 그녀는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로 인해 해고됐으나, 그녀로 인해 노동자들은 임금 인하를 막아냈다. ‘체공녀’ 강주룡, 이듬해 8월 빈민굴에서 31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는 최초의 고공농성자였다.
그로부터 80여년이 흘렀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까. 지난 15년 동안 노동자들이 공장굴뚝과 교통감시탑, 광고탑, 고압송전탑, 교각에 올라 목숨 건 고공농성을 벌인 횟수만 100여건을 훌쩍 넘는다. 2015년 7월 8일 구미공단 스타케미칼 굴뚝에 올랐던 차광호는 408일 만에 땅을 밟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고공농성이었다. 2014년 12월 한겨울의 오체투지를 감행했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문자해고에 항의해 10년 복직투쟁을 벌였다. 청춘을 거리에서 보낸 그들은 “죽는 것 빼고는 다 해볼 만큼” 싸웠지만 끝내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주룡의 고공농성으로부터 31374일이 흐른 2017년 4월 14일, 비정규직-해고노동자 김경래, 고진수, 오수일, 이인근, 김혜진, 장재현은 광화문 네거리 광고탑 위에 올랐다. 그 위에서 머리를 밀었고, 그 위에서 굶고 있다. 비참하게도 그들의 요구는, 86년 전 강주룡의 절규와 정확하게 같았다. 노동3권이 헌법33조로 규정된 공화국의 노동자가 식민지 시대 노동자와 같은 요구를 하며 벼랑으로 몰리는 이 시대를 21세기라 불러도 좋은 걸까. 박근혜의 헌정농단은 끝났지만, 자본의 헌정농단은 오늘도 폭주하고 있다. 그때는 TV가 없었기에, 지금은 TV가 있어도, 노동자들의 외침은 TV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