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한국의 영화글쟁이들은 행복해야 마땅하다. 가공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그래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처럼 생명으로 태어난 듯한 허진호의 가작 <봄날이 간다>가 곁에 있다. 이 영화는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선하고 지혜롭다. 저 먼 유행가의 봄날처럼 느닷없이 왔던 사랑이 다시 가는 과정을 보여주되, 집착에서 풀려나 소생하는 젊음의 생명력도 선사해준다. 바람소리, 정선아리리, 풍경소리, 아우라지의 물소리에 정결하게 귀를 기울이는 주인공들처럼 보는 이들은 사랑과 상실이 이들의 시간을 통과하는 소리, 마침내 성장의 매듭을 짓는 소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의 속에서도 그 소리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영화 속 그 사람이 아름다우면, 우리 사람도 아름답다.
정재은 감독의 첫 장편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 옆에 있다. 서울의 변두리 인천(전국토가 서울공화국의 변두리지만)에서 스무살에 대학 대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여자애들이 거기 있다. 소재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던 시절이라면 아마 이 젊은이들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 하나만 해도 칭찬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입시교육이 청소년교육의 대명사가 되고, 입시철이면 모든 일간지가 대학시험 문제에 지면을 내주는 아주 특이한 나라의 영화답게 한국영화는 이들에게 시선을 준 적이 별로 없다. 아무리 고개를 곧추세워도 학력의 사다리 없이 오를 곳이 없는 사무실, ‘비진학’이 곧 ‘낙오’인 양 내려다보는 시선들, 또는 가난. 그 모든 무게가 극단적으로 쏠린 지점에 사는 한 주인공은 거리에서 마주친 미친 여자가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닌가 두려워 떨기까지 한다. 그런데 다행히 이 고양이들은 소재주의의 혐의에 가둬둘 도리가 없다. 영화는 다섯 친구들의 우정 사이로, 그들을 에워싸는 현실 속으로, 그들이 달리는 길 위로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파고들거나 자유롭게 낙하한다. 하나하나 소중한 빛을 지닌 주인공들처럼 <고양이를 부탁해>는 영롱하게 빛난다.
누군가는 검약한, 그러나 ‘철학적’인 <나비>의 오디세이를 주목할 것이고, 누군가는 뒤렌마트식 아이러니가 좀더 대중적인 리듬과 웃음으로 변화해 스며든 장진 감독의 행보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한 주일 성찬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영화들이 다양한 촉수로 사람들을 잡아끈다. 그런데 이 ‘10월의 봄날’이 짧은 꿈이 될까 두려워 아직 마음놓고 웃지 못한다. 이 두려움에 동참하시라고, 그래서 행복도 함께 누리자고, 권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귀기울여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