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들의 영화·문화정책을 묻는 릴레이 인터뷰를 약속대로 이번호로 종결한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 사이의 단일화가 이루어져, 19일의 선거에 나설 후보는 그 가운데 셋이 되었는데, 4주에 걸쳐 나간 기사의 형식과 분량은 동일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터뷰의 형식을 따른 것이었다. 서면인터뷰냐, 직접 대면한 경우냐를 기사에 반영했다. 활자로 얻은 답일 경우, 실제 만난 것처럼 분식하는 일은 피했다. 그것이 취재의 노고나 우리 매체의 ‘권위’를 과대포장하는 허위를 벗어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육성을 서면답변보다 무겁게 대했다. 추상적 의견에 육성, 그리고 존재의 무게를 합산한 결과였다.
연속인터뷰의 지상중계를 마치며 둘러보니 이번 선거는 영화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통령선거가 되어 있다. 여당이 전국구 의석 하나쯤을 문화예술단체의 장에게 배정해주고, 상대 후보의 선거를 돕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던 문화는 이제 정말 퇴장당한 상태다. 영화인들이 운동과정의 ‘화동’, 아니 ‘꽃’의 역할을 하던 시대를 종영하고,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과 희망을 행동으로 적극 표현하고 흐름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발전’의 한 양상으로 보인다.
영화인들은 효순과 미선, 두 여중생의 압사사건의 무죄평결을 규탄하며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도도한 물결에도 합류하고 있다. 박찬욱, 류승완 감독이 광화문에서, 김지운 감독이 영화촬영현장에서 왜, 어떻게 머리를 깎았나를 조종국씨가 ‘충무로 다이어리’에서 고백하듯 보고했다. 한국영화의 정신이 한국의 현실과 유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은 당연히, 우리들의 씨네스코프가 되었다.
우리들의 관심은 다시, 텔레비전 토론과 정치광고들이 대규모 유세를 대체하는 오늘의 선거로 돌아간다. 한쪽은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그 효용을 과시한 이른바 네거티브 광고와 전략을 택했고, 또 한쪽은 21세기와 상대하겠다며 포지티브 전략을 택했다. 그 효과는 앞으로 관계전문가들에게 흥미있는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위판단과 비평은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연구업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19일의 선택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