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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감독의 자유
2002-12-07

편집장

이제는 편안해졌습니다. 지금 원하는 일이 당장 그 결과를 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유로워진 젊은 예술가는 진짜 무서운 낙관은 철저한 비관 위에서 피어나는 법이라는 것을 진짜 우리 눈앞에서 실연하려는가보다. 잃어버린 평등,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일시에 회복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얻어내는 일이 단박에 실현될 수 없으므로 초조함을 버리고 자기 사회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라. 갈수록 책임이라는 말이 좋아집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선 갈수록 이 책임감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아장커 감독은 아다시피 중국의 언더그라운드, 지하에서 영화를 하는 인물이다. 그가 한국에 처음 들고온 첫 장편 <소무>에는 그때까지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중국의 오늘,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의 현실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도입되는, 급변하는 중국사회의 변두리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거기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화면에는 오늘의 우리 현실이 담길 데가 없지요. 그때 젊은 감독은 중국 제5세대, 자신의 선배감독들의 미학에 그렇게 결별을 고했었다.

그 이후, 우리가 지아장커 감독에게 지나치게 경도한 것 아니냐고, 그를 지나치게 편애해온 것 아니냐고 누군가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의 두 번째 장편 <플랫폼>의 유랑악단을 뒤쫓는 여행기록을, 임순례 감독과 마주한 대담을, 때로는 그가 <하나 그리고 둘>이나 <화양연화> <와호장룡>와 같이 한꺼번에 융기한 중국 문화권의, 그러니까 화어권의 가작들을 마주한 소감을 <씨네21>은 독자들께 보여드렸다. 그리고도 다시 올해 부산에서 그의 시간을 청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를 맞은편 자리에 청한 건 <씨네21> 기자들이었다. 지아장커 영화의 뜨거운 지지자인 정성일씨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 디지털 삼인삼색이라는 프로젝트에 그를 불러들인 사람, 결과적으로 감독이 디지털영화의 효용성을 발견해서 디지털로 세 번째 영화 <임소요>를 찍게 만든 장본인이다. 두 사람의 재회는 자본주의화와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을 영화로, 미학으로, 전투적으로 해나가는 현황과 이유를 들려주는 소중한 사건이 되었다. 지난주 약속드린 보드웰-홍상수의 대화에 앞서, 중국의 지하전영 이야기를 먼저 보내드린다. 이것은 약속위반이다! 사과를 드리면서, 죄송하게도 다시 청탁을 덧붙이게 된다. <임소요>를 빨리 볼 수 있게 <씨네21> 독자들이 ‘압력’을 넣어달라는 정성일씨의 부탁말씀에 귀기울여주십사고.

또 한 가지, 정몽준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 릴레이 인터뷰 기사가 실린 지난호가 대부분의 독자들께 전달되기 전, 노무현 후보로의 후보 단일화가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마감 탓이라고는 해도 생동하는 상황을 따라잡지 못한 점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