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할리우드가 투자, 배급하는 첫영화의 프로듀서가 되셨네요.” 처음에 한맥영화 대표 김형준(43)씨는 콜럼비아 한국 지사장 권혁조씨의 전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감을 못 잡았다. 요즘처럼 투자사가 즐비한 시대에 직배사가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큰 뉴스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본사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고 연출자로 강우석 감독이 나섰으며 시네마서비스가 국내 배급을 한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한마디로 <실미도>는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을 가늠할 또 다른 시금석인 셈이다.
제작자인 김형준씨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동감> 이후 2년 만에 제작하는 작품이며 1990년대 초부터 부침을 거듭한 자신의 영화사업에서 비로소 결실을 맺을 기회인 것이다. <실미도> 외에도 그는 올해 한국영화 3편을 제작할 계획이다. “올해는 파워 50위 안에 들어야될 텐데…”라는 말도 그냥 해보는 소리 같진 않다. 김형준씨에게 2002년이 어느 해보다 바쁜 한해가 될 것은 분명해보인다.
<실미도> 프로젝트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
실미도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던 사람들은 예전부터 많이 있었다. 영화세상 안동규 대표가 김영빈 감독과 함께 10년 전에 만들려고 했던 적도 있고 김종학 프로듀서도 준비했던 걸로 알고 있다. TV드라마에서도 잠깐 등장했고. 그러나 내가 실미도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처음엔 제작자인 임상수씨가 백동호씨의 소설 <실미도>를 건네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그걸 극동스크린 대표 김승씨에게 보여줬는데 열흘 뒤에 김승씨가 작가와 계약했다며 들고 왔다. 그러면서 극동스크린에서 진행했는데 일이 진척이 안 됐다. 우여곡절이 많은데 김호선 감독이 연출한다고 기사가 나기도 했다. 다시 내게 넘어온 것은 지난해 초였다. 시나리오가 6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는데 역사적 사실을 픽션으로 다시 만든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타이타닉>이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서 멜로적 요소를 많이 담으려고 했다.
콜럼비아 영화사가 투자하게 된 것은 어떤 계기였나.
콜럼비아 한국 지사도 4년 전부터 한국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더라. 우리 영화사에서 준비하는 작품들 시나리오를 콜럼비아 권혁조 사장에게 보여줬는데 다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면 영문번역까지 미리 해놓는 편인데 특히 <실미도>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권혁조 사장이 본사에 보내보겠다고 했고 그뒤 2달간 소식이 없었다. 지난해 12월에 본사에서 회의를 했는데 투자 결정이 났다는 연락이 왔다. 감독을 구하는 게 문제였는데 연출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았다. 강우석 감독을 만난 것은 2주 전이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더니 “하고 싶긴 한데 지금 시네마서비스 합병 직후라 남의 돈 받아서 다른 회사 작품을 연출하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콜럼비아에 다시 확인해봤다. 국내 배급을 시네마서비스로 해도 되겠느냐고. 콜럼비아에서 오케이했고 그러자 강우석 감독도 하겠다고 나섰다.
수익배분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소니픽처스와 한맥영화가 전세계 배급에서 나오는 수익을 50 대 50으로 나눈다. 한국 배급은 시네마서비스가 맡고 소니픽처스는 해외 배급 수수료를 경비에 포함시켜 수익을 계산한다. 제작비 규모가 정확히 나오지 않은 상태라 앞으로 어떤 변동이 있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시네마서비스가 추가 투자자로 나선다든가 하는.
연출자로 강우석 감독을 점찍은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의 친분이 작용한 것인가.
두 가지를 눈여겨봤다. 첫번째는 그의 연출력이다. <공공의 적>을 보면서 강 감독이 이 정도 코미디를 연출할 수 있다면 정극도 분명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두번째는 강 감독이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도록 돕고 싶었다. 누군가 딴 감독이 <실미도>를 연출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상업영화 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면 강 감독은 자신이 했으면 하고 많이 아쉬워할 사람이다. 나는 강 감독이 승승장구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손 벌려본 적이 없다. 이광훈 감독의 <천년호>를 제작하려고 시네마서비스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어봤는데 일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강우석 팬이 아니라 강우석 편이 됐다.
실제 실미도 사건과 영화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하다.
실미도 사건은 71년 8월23일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대북침투부대가 대통령 면담을 하겠다며 서울로 오다가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교전 끝에 전원 폭사한 사건이다. 이 부대가 만들어진 것은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침투하다 사살된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 당시 사형수 31명을 뽑아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시켰다. 3년간 비인간적인 훈련만 받던 그들이 탈출을 기도했던 것이다. 영화는 실화에 멜로드라마적 설정을 더할 계획이다. 당시 사건이 남긴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서도 영화적 해석을 내릴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미 나와 있는데 촬영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강 감독이 다시 각색을 하고 있고 실미도 헌팅도 시작했다. 과거 국방부 소유였던 실미도가 지금은 사유지가 돼서 협의할 일이 많다. 스탭 구성은 대충 이뤄졌다. <공공의 적> 제작진이 대거 참여할 것 같고 촬영은 <상하이 트라이어드>와 <인생>을 찍은 루예, 무술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참여한 위엔탁이 하기로 했다. 8월에 촬영에 들어가서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담아 내년 2월까지 찍을 예정이다.
<실미도> 얘기는 그만하고 개인적인 얘기로 넘어가보자. 김 대표는 어떻게 영화일을 시작하게 됐나.
사실 난 대학에서 재정학을 공부했던 사람이고 영화를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던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는데 삼촌이 현진영화사를 하고 있었다. 현진영화사는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 이장호 감독의 <일송정 푸른 솔은> 등을 제작한 영화사로 80년대 초부터 활동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현진영화사의 영화 수입을 도와줬는데 그러다가 점점 영화일에 깊이 개입하게 됐다. 처음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한 것은 <미스터 맘마>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강 감독이 채 완성도 안 된 <미스터 맘마>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처음 제작한 영화가 <가슴달린 남자>인데 이 영화도 내가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제작자가 된 경우는 많지 않은데 어떻게 시나리오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사실 미국에서 오래 살다와서 한글을 잘 몰랐다. 처음 시나리오 쓴 거 보면 철자법도 틀리고 가관이었다. 영화 수입하고 자막 번역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 같다. 당시까진 지문이 많이 들어간 시나리오가 거의 없었는데 나는 지문이 많이 들어간 시나리오를 썼다. 묘사가 자세하니까 연출하기 좋은 점이 있었을 거다. 그렇게 해서 <미스터 맘마>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걸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영화를 수입해서 번역하는 일을 했는데 내가 번역한 대목에서 관객이 웃으면 내가 웃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딴따라 하려는지 알겠고 이래서 창작을 하고 제작을 하고 연출을 하는구나 싶더라.
<가슴달린 남자> 이후로 <사랑하기 좋은 날>을 만들었고 한동안 슬럼프였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 흥행에서 실패하고 <피아노맨> <죽이는 이야기>까지 내리 흥행이 안 됐다. <죽이는 이야기>가 치명적이었는데 투자사가 손을 떼는 바람에 손해를 혼자 고스란히 안아야 했다. 마침 IMF가 터진 때라 차비가 없어서 길바닥에서 잔 적도 있다.
그뒤로 만든 영화가 <링>과 <동감>인데 최근 2년간 제작한 영화는 없었다. 여전히 만회가 힘들었던 시기였나 보다.
<약속>과 <거짓말>도 사실 내가 제작하려고 준비하다 회사 부도나는 바람에 신씨네로 넘어간 프로젝트들이다. 97년에 수입, 배급한 <지아이 제인>이 성공해서 좀 숨통이 트였지만 <링>과 <동감>을 제작한 뒤로 수입, 배급한 영화 8편의 흥행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겟 카터> <패밀리맨> <브링 잇 온> <D-13> <기프트> 등의 영화인데 특히 <D-13>이 타격이 컸다. 당시엔 최소 한달에 1편씩 배급하는 회사를 목표로 삼고 있어서 외화 수입을 많이 했다. 지금은 다른 회사들이 잘 하고 있으니까 내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내가 영화사업 하면서 날린 돈이 100억원쯤 되지 않나 싶다. 아버지가 예전에 방위산업체를 운영해서 돈이 좀 있었는데 이래저래 다 써버린 셈이다.
올해가 한맥영화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인 거 같다
올해는 파워 50위 안에 꼭 들어야 할 텐데. (웃음) <실미도> 외에 이광훈 감독이 연출할 <천년호>가 있고 송경식 감독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있다. 공동제작하는 <개밥그릇>이라는 영화도 있고. 모두 4편인데 사실 내 꿈은 한국 감독 데리고 할리우드에 가서 영화 만드는 것이다. 우리 문화가 해외에 나가서 팔려야지 지금처럼만 하면 동네잔치밖에 안 된다. 제작자로서 큰물에서 놀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다. 그런 면에서 <실미도>를 하는 것은 큰 짐을 지는 일이다. 내가 잘 못하면 다음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는 부담이 크다. 콜럼비아 입장에서 보면 내가 돈을 벌어줘야 한국영화에 계속 투자할 게 아닌가. 글 남동철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