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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세이 워드>의 브리타니 머피
최수임 2002-03-27

여자아이의 몸은 천천히, 그러나 몰라보게 변한다. 몸이 어느 한 형태에 안착하기까지, 보기 싫게 부풀었다 단단해지는 그 과정은 보통 시간 속에 묻히고 곧 잊혀진다. 브리타니 머피는, 그런 점에선 불우하다. 그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연기경력에서, <클루리스>의 촌스럽기 그지없는 시골 전학생 타이는 빠뜨릴 수 없는 기억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예쁘게 만들어주기 대작전’을 벌이던 뚱뚱한 곱슬머리 여학생 타이. 지금의 머피가 완성된 유리공예품이라면 타이를 연기하던 그녀는 유리공예사가 입김을 확 불어넣고는 아직 매만지기 전 단계의 울퉁불퉁한 유리덩어리였다. “다 조명과 의상과 가발 때문이라구요. 그 영화를 찍었던 건 막 가슴이 부풀어오른 열다섯살 때였어요. 어쩔 줄 모르던 때였단 말이에요.” 뒤늦게 항변을 하건 말건, 어쨌거나 그 발육과정상 제일 못생긴 모습으로, 머피는 뉴저지에서 9살때부터 부풀려온 할리우드 드림을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말해주지 않겠어요.” <돈 세이 워드>에서 머피는, 이 한마디로 초반부터 기세를 제압한다. 8살 때 아버지의 살해현장을 목도하고 10년째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인 척하며 살고 있는 상처투성이 소녀 엘리자베스. 상대역인 정신과의사 마이클 더글라스는 물론, 관객들을 섬뜩함 속으로 밀어넣는 이 대사를 소리칠 때, 브리타니 머피는 어떤 배우보다도 강렬하게 정신병원 침상의 서늘함을 내뿜는다. “당신도 그들이 원하는 그것을 원하지? 말해주지 않겠어.” 정신병동은, 브리타니 머피에게 낯선 무대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머피는, 아직 젖살이 남아 있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갖다주는 전기구이 치킨을 줄창 먹으며 설사약을 찾는 클레이무어 병동의 왕따환자 데이지를 연기했었다. 2번의 인상적인 정신이상자 연기는 그녀에게 ‘기이한 캐릭터엔 단연 여왕’(<코스모폴리탄> 2001년 12월호)이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넌 지금 연기를 하고 있어. 정신병자인 척하고 있다구.” <돈 세이 워드>에서 마이클 더글라스의 이 대사는, 머피의 캐릭터 하나를 어쨌거나 묘하게 건드리고 지나간다.

브리타니 머피는 9살 때 뉴저지 지방극장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타고난 노래와 연기실력은 13살의 그녀에게 이미 매니저가 붙게 했고, 머피 모녀는 할리우드 드림을 안고 먼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했다. TV에 종종 나오던 어린 10대 배우는 곧 <클루리스>로 얼굴을 알렸고 스물이 넘어 찍은 <처음 만나는 자유>로 주목할 만한 조연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공포물 <체리 폴스>에서 섹스 경험이 없는 틴에이저만 죽이는 연쇄살인범의 표적이 된 주인공 여고생 조디, 로맨틱코미디 <뉴욕의 사이드워크>에서 웨이트리스 애슐리 등 다양한 배역을 거쳤다. 드루 배리모어와 공연한 최근작 <라이딩 위드 보이즈>는 아마도 그녀가 가장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드루 배리모어와 나란히 동갑내기 미혼모 페이로 나오는 머피는, 마르기까지 한 몸매며 엉뚱하고 발랄하면서도 다감한 성격연기로 어딘지 <노블리>의 내털리 포트먼을 연상시킨다. 캐릭터 대역전. 베브(드루 배리모어)와 드레스를 바꿔입고는 가슴팍이 헐렁하다며 온갖 것을 옷 속에 집어넣는 예쁘장한 페이는, 10대 때 머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다.

“이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좀 알아보나요?” 한 미국기자의 질문에 브리타니 머피는 자신의 대사를 인용해 “말해주지 않겠어요”라고 조크를 던졌다. 때로는 마릴린 먼로, 때로는 안젤리나 졸리, 때로는 내털리 포트먼의 표정을 발하는 아직도 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경력 16년의 브리타니 머피. <돈 세이 워드>에서 엘리자베스가 쉽사리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듯, 브리타니 머피는 지금 대중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헤프게 다 털어놓지 않으면서 제대로 물오른 스타덤의 시간을 영리하게 연장시키고 있다. “연기를 배운 적은 없어요. 하지만 외국어는 학교에서 배울 수도 있지만 직접 외국에 가 살면서 배울 수도 있잖아요.” 연기수업 한번 받은 적 없지만 작품마다 억양과 뉘앙스가 정확한 연기를 보여주는 머피에게, 할리우드는 갈수록 많은 것을 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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