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순넷이 돼도, 여전히 날 필요로 할 건가요?” 세월이 흘러도 연인의, 혹은 팬들의 감정이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비틀스의 의 가사를 빌려 얘기하자면, 주디 덴치는 이미 확실한 예스의 대답을 들은 배우다. 예순넷에서도 4년이 지난 예순여덟. 그녀는 여전히 영화가, 무대가, 관객이 원하는 배우니 말이다. 아니, 환갑의 나이를 넘기면서 오히려 영화계의 구애는 더욱 열렬해진 듯하다. 매년 꼬박 2∼3편씩 찍을 만큼 손짓하는 영화가 많아진 것도, 오스카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각종 시상식에서나 매스컴에서 앞다퉈 그녀의 연기에 갈채를 보내게 된 것도, 60대 중반에 접어든 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최근에도 주디 덴치는 <아이리스>로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골든글로브와 오스카에 나란히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라 있다.
<아이리스>는 영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의 삶을 다룬 영화. 머독이 강단에서 갑자기 노래로 인사를 대신할 때의 당당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미소를 띠는 것도 잠시, 덴치는 알츠하이머병에 잠식당하는 머독의 시간을 살아냈다. 자신의 우주와도 같은 언어를 잃은 작가, 살아온 체취를 잊고 자신만의 내면으로 침잠한 머독의 영혼은, 의식의 허공 어딘가를 떠도는 듯한 덴치의 시선에 머물러 있다. 화를 내는 남편을 영문 모르고 바라보는 눈빛, 혹은 물에 대한 공포를 드러낼 때처럼 백지상태의 무구함이 묻어나는 연기는 과장을 피하면서 처연한 여운을 남긴다. 대사가 없거나 외국어라 해도 관객이 인물을 이해할 수 있어야 좋은 연기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듯, 아이리스가 된 덴치는 말없이 보는 이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난 셰익스피어 배우, 혹은 영화배우, 시트콤에 나온 TV 연기자란 식으로 불리길 원하지 않는다. 내 자신을 넓혀가기 위해, 항상 다른 역할을 찾으려고 애써왔다.”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갔던 고향 요크의 시어터 로열의 무대 뒤에서 배우의 꿈을 발견한 이래, 덴치는 연기의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 드라마에서 수학한 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의 연출가 피터 홀에게 발탁된 그녀는 위트있고 세련된 줄리엣이었으며, 티타니아, 레이디 맥베스, “폐경기의 난쟁이” 같을 거라며 애초에는 거절했다는 클레오파트라에도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었다. 1964년 <세번째 비밀>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으나, 70∼80년대는 연극과 TV가 주무대였다. 역시 연기자인 남편 마이클 윌리엄스와 커플로 나온 81년 시트콤 <어 파인 로맨스>에서는 위트가 풍부한 언어학자로 영국아카데미상 TV부문 연기상을 수상했다.
87년 <전망좋은 방>으로 영국아카데미상에서 조연상을 거머쥔 이래, 덴치의 이름은 영화부문 수상후보에서 더 자주 보인다. <핸드풀 오브 더스트> 등 튼실한 조연으로 호평을 들어온 덴치는, ‘셰익스피어 배우’를 고집하지 않았듯 007시리즈도 피하지 않았다. 95년 부터 연기한 제임스 본드의 상관 M과, 고독과 열정을 품은 속내를 내비치는 <미세스 브라운>의 빅토리아 여왕이 한몸이 될 수 있는 것도, 결코 하나의 틀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은 탓이다. <미세스 브라운>은 후보에만 올랐지만, 이듬해 오스카는 보상이라도 하듯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8분간 엘리자베스 여왕이 된 덴치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바 있다.
지난해 1월 좋은 동료였던 남편을 간암으로 잃고, 덴치는 <아이리스> <쉬핑 뉴스> <테레즈 라켕> 등 3편의 영화를 오갔다. “슬픔은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다 연소해버려야 한다”는 그는, 현재 <본드 20>과 목소리 연기를 선보일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웨팅 불릿> 등 신작을 기다리고 있다. 삶의 생기를 잊기 쉬운 예순여덟의 세월을 넘어, 여배우들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는 우려를 말끔히 덜어내며, 늘 새로운 시작을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