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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매혹, 꼿꼿한 책임감, <서프라이즈>의 이요원

이요원은 대체로 무표정하다. 건방지다거나 버릇없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그냥 무슨 이야기를 하든 표정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 편이다. “그래요?” 심드렁하게 대답하거나 “고맙습니다” 예의바르게 인사하거나 “아니오” 분명하게 부정할 뿐. 잘 놀라지도, 크게 웃지도, 심하게 분노하지도 않는다.처음 이요원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조그마한 빛만 허락된 어두운 동굴을 걷는 기분과 비슷한 것이다. 조금은 스산하고, 적막이 감돌고, 두렵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이 발동되는, 암담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확신도 들지 않는 그런 초행길. 하지만 ‘뭐 저런 아이가 다 있어?’ 휙 돌아서버리면 그만일 텐데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뭘까. 그에게는 쉽게, 좋다, 싫다, 착하다, 나쁘다로 설명될 수 없는, 아니 아예 그런 판단 자체를 흐리게 만드는 독성이 있다. 아주 강한 독성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푸른 안개> <고양이를 부탁해> <아프리카> <서프라이즈>까지, 이요원은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 요즘에는 장혁, 손예진 등과 출연하는 퓨전사극 <대망> 촬영까지 이어져 워낙 마른 체격에 그나마 통통하던 볼살마저 홀쭉해져서 어린 티가 싹 가셨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혹시 지치지 않았느냐고, 힘들지 않았냐고 물을라치면 “일인데요, 이게 직업인데 어쩌겠냐”는 망설임없는 대답이 날아온다. “재밌으니까, 즐거우니까, 꿈을 이루기 위해,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등 보통 4지선다 속에 정리되는 그 나이 또래 배우들의 반응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었다.

이요원 속엔 로리타처럼 치명적인 독소를 품은 소녀성과 인생의 크고 작은 고비를 거치며 만들어진 생채기 위에 덧살이 채워진 중년의 여인네 같은 태도가 교묘하게 공존한다. “저도 그럴 때가 있었죠. 그냥 배우라는 일이 재밌고 신나서 할 때가요. 열여덟, 열아홉 때가 그랬었나….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해요. 이건 분명한 사회생활이고 직업으로 선택한 거죠.” 그 누구보다 조숙하고 현실적이었던 <고양이를 부탁해>의 혜주가 정말 어울렸던 역할이었다고 잠시 고개를 끄덕여본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은 그냥 넘길 일도 저건 왜 저럴까.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저런 말을 하지? 꽤나 민감하고 조숙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상처도 많이 받게 되고 조금씩 뭐랄까, 나를 지키는 벽을 쌓아나갔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그의 냉소 이면에는 배우로서의 직업정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보통 감독들이란 절대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들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지만 “배우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의견을 피력한 뒤라면 결국 감독 뜻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는 자기만의 확고한 원칙이나 “결국은 등떠밀려한 게 아니고 내가 선택한 거라면 그 모든 결과까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꼿꼿한 책임감까지. 이 순간, 스물셋 그 으스러질것 같은 여린 어깨가 철모보다 단단해 보인다.

드라마 <푸른 안개>를 연출했던 표민수 감독님은 “내 속에 있는 다른 모습을 알게 해주고 끄집어내준” 그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주유소 습격사건> 때처럼 아무 생각없는 역할이 주로 들어왔는데 아마도 <푸른 안개>를 보며 어, 저 애가 저런 느낌이 있어? 하셨나봐요. 이후엔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역할들이 많이 들어왔죠.” 이제 여름을 바쳤던 <아프리카> 이후 지난해 겨울 내내 찍어낸 사랑스러운 로맨틱코미디 <서프라이즈>를 세상에 내놓기에 앞서 그는 “불만도 마음에 쏙 드는 부분도 분명한 영화”라고 설명한다. 더이상 이러쿵저러쿵 홍보성 멘트도 자랑도 없다.

“가끔 건방지다는 소리도 듣는데, 그건 아마도 대부분의 배우들은 싹싹해야 한다, 는 선입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런 접대용 웃음을 날리는 게 싫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 속에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필요도 못 느껴요.” 이제 겨우 5년차 배우는 철저히 관객의 판타지에 복종해야 하는 영화란 매체의 본질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듯했다.

“영화란 게 어찌보면 일종의 사기인데 사기치는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이 노출되고 알려지면 이후에 사기치기가 좀 어렵잖아요?” 그러니 방글방글 웃으며 이것 한번 이용해 보세요 하는 광고 속 그도, 카메라를 향해 아기처럼 미소짓는 그도 본인 말에 따르면 일종의 ‘사기’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제대로, 사기를 쳐주길 바란다. 매번 들키지 않게 다른 모습으로, 보는 순간 누구라도 ‘서프라이즈’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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