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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즘 코미디의 왕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
김혜리 2002-05-29

여기는 미국판 <경찰청 사람들>에 해당하는 리얼리티 쇼 <쇼타임> 촬영현장입니다. 평소 연기 오디션에 목숨 건 보람이 있어 카메라 앞에서 날고 기는 촐랑이 파트너 옆에서, 코를 꿴 들소처럼 씩씩대며 끌려나온 베테랑 형사 미치는 풀먹인 빨래보다 뻣뻣하군요. 연기 지도를 위해 초빙된 왕년의 경찰 드라마 스타가 한숨을 토해냅니다. “저 인간은 사상 최악의 배우야!” 그 한마디가 펀치라인이 되는 까닭은 단 하나. ‘그 인간’이 다름 아닌 로버트 드 니로(59)이기 때문이지요. 천의 얼굴로 유명한 명우 피터 셀러스의 이름을 꿔다 쓴 것은 에디 머피가 맡은 교통순경 트레이 셀러스지만, 정작 10대 시절부터 스물다섯까지 변장을 한 프로필 사진을 들고 오디션을 섭렵한 주인공은 액터즈 스튜디오의 가장 자랑스런 졸업생 로버트 드 니로입니다.

밥(로버트의 애칭)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수군거리는 팬도 있을 법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로버트 드 니로를 보고 웃는 일이 부쩍 늘어난 느낌입니다. <미트 페어런츠>로 만난 것이 이태 전인데, 올해는 형사버디 코미디 <쇼타임>에 이어 <애널라이즈 디스>의 속편 <애널라이즈 댓>이 날을 받아놓았고 <미트 페어런츠>의 후일담 <미트 폭커스>가 2003년 필모그래피에 올라 있습니다. 1700만달러에서 2천만달러에 걸쳐진 개런티도 드 니로 평생 어느 때보다 두둑해서, 코미디를 팝콘처럼 마냥 가벼운 장르로 믿는 사람 틈에서는 <히트> 이후로는 드 니로가 은행계좌 관리에 주력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코미디언 드 니로는 갱스터 드 니로의 흐릿한 복사판이 아니라 네거티브 사진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습니다. 드 니로가 누굽니까. 알 카포네였고 비토 콜레오네였고 프랑켄슈타인이었습니다.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뿐인가요? 그와 공연하는 배우들은 개런티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오한부터 느낀다고 합니다. <미트 페어런츠>의 제이 로치 감독은 드 니로에게 겁먹은 벤 스틸러의 긴장을 연기에 끌어들이고 싶어 툭하면 “아, 당신이 낸 그 아이디어 말이지, 밥이 좋아할까 모르겠네”라고 변죽을 울리곤 했다지요. 기자들은 또 어떻구요. 고심 끝에 내놓은 정성어린 질문을 “뭐, 별로(침묵)”라고 줄곧 깔아뭉갠 인터뷰를 읽다보면 기자가 딱해 코끝이 시큰해져 옵니다.

만약 눈앞에서 그가 못마땅한 듯 눈썹이라도 꿈틀할라치면 “그래, 난 버러지야”라고 저절로 자학하게 될 듯한 사나이 드 니로가 탁월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은 바로 그 겁나는 카리스마 덕택입니다. 살짝 훌쩍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박장대소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코미디에는 이른바 ‘물 밖에 나온 생선’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졸지에 낯선 환경에 내던져지는 바람에 ‘품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인물의 허둥거림에 초점을 맞춘 코미디를 뜻하는 말이지요. 1970년대 이후 여러 걸작을 통해 완성된 신화적인 마초 드 니로는, 금이 갈 궁지에 몰린 남성적 자존심이 자아내는 웃음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피에로인 것이죠. 참, 이 대배우의 생애 최초 배역은 열살 때 연기한 <오즈의 마법사>의 겁쟁이 사자였다죠?

하긴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요? 배우 몇명의 필모그래피에서 취합할 만한 숫자의 걸작을 영화사에 일찌감치 헌정한 그가 뭘 선택한다 해도, 드 니로의 재능에 진 해크먼처럼 나쁜 영화를 업그레이드하는 배려의 자질이 없다 해도 우리는 감히 불평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용기를 짜내 물어볼까요. “코미디와 드라마 뭐가 더 어렵죠?” “글쎄… 미묘한 유머, 그건 내가 갖고 있는 자질 같고. 아이러니, 그건 내가 좀 아는 거죠. 그리고 이런저런 연기?, 그건 내가 최고로 잘하는 일이고.” 저런, 그러고보니 그의 영화 중에 <코미디의 왕>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인용된 인터뷰 출처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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