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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인공들이 사는 방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아쉽게도 캐릭터 설정에 맞춘 초기 컨셉 이상을 끌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처를 숨긴 남자주인공의 황량한 내면을 암시하는 컬러로 꾸민 넓은 오피스텔이 따분하기로 치면 제일이고, 거실 중앙에 계단이 있는 재벌가 저택이나 신혼부부의 방도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제작비 효율을 높이는 패턴화된 세트와 촉박한 촬영일정에서 우선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일일극이나 주말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미니시리즈에서도 공간과 캐릭터의 조응을 고민하는 연출자는 드물다. 그리고 예외에 속하는 연출자를 말할 때 이윤정 PD를 빼놓을 수 없다.
tvN <하트 투 하트>에서 대인기피증을 앓는 여주인공 차홍도(최강희)의 집을 보자.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7년간 혼자 지낸 홍도의 집은 짝이 안 맞는 서랍장을 비롯한 묵은 살림을 가꾸는 젊은 여자의 아기자기한 취향이 배어 있다. 양파 물꽂이와 패브릭처럼 손이 많
[유선주의 TVIEW] 아~ 그래서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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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언어에도 감촉이 있다면, 이 단어가 단군이시다. 첫사랑!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심금이 오케스트라 연주되어 설렘과 애틋함으로 영혼에게도 떨리는 살결을 부여하는 바로 그 단어, 첫사랑! 기억 속에 언제나 아스라이 남아, 정화수를 떠놓고 오체투지 백일기도 드려도 꿈속에서나마 몇년에 한번 다시 볼까 말까 한 첫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을 알면서도, 신에게 저항한다는 각오로, 온몸의 호르몬을 유일한 무기 삼아 목숨 걸고 사랑했던 바로 그 첫사랑! 첫사랑이 그렇게 애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첫사랑은 운명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첫사랑이다. 즉 첫사랑은 언제나 과거형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애절한 사랑이다. 아아, 다시 들려온다. 이 어설픈 이론에 저항하려는 어설픈 반론들이. 혹자는 “나는 첫사랑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으하하하, 부럽지”라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재반박하련다. 안 부럽다. 백년이 지나봐라. 그 가약도 과거형이다. 아니, 백년 지나기 전에 그대
[곡사의 아수라장] 첫사랑과 첫사랑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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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밝은 밤이었다. 정자에 앉아 달을 보며 손수 빚은 술을 마시자고 산기슭에 모인 무도인들은 내가 신은 앵클부츠를 보더니 난색을 표했다. “힘드실 텐데….” “동네 등산로 정도는 괜찮아요.” “그게… 길이 없거든요.” 이보시오, 무도를 걷는 이들은 도(道)가 아니면 검을 뽑지 않으며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거 아니었소. 그날 밤 나무뿌리와 덤불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길이 아닌 길을 오르며, 나는 꿈을 꾸었다, 만화 <비천무>의 진하처럼 대나무 향기 그윽한 죽엽청주를 음미하는 꿈을. 천신만고 끝에 버려진 정자에 오르니, 과연 그러했다, 나는 그저 꿈을 꾸었던 것이다.
제대로 익었는지 모르겠다며 무도인들이 꺼낸 술은 맥주요, 신경 써서 마련했다며 내놓은 안주는 하몬이었다. “저, 전통 무예를 하면 전통주를 마시는 거 아니었….” 달빛에 비친 무도인들의 눈빛은 서늘했다. “저희는 맥주 좋아합니다.” 아, 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무도인들은 살찌는 법을 논하기 시작했고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강해지고 싶나? 천천히 들어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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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허삼관> 13월의 헌혈
[정훈이 만화] <허삼관> 13월의 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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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는 배낭 멘 여자의 이미지가 종단하는 영화다. 건조 식량과 간이 정수기, 몇벌의 옷가지와 텐트, 반복해 읽을 책과 노트.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의 파란 배낭에는 그녀의 의식주와 정신이 몽땅 들어 있다. 한명의 인간이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자신의 등에 짊어질 수 있다는 사실, 나아가 짊어질 수 있는 부피를 넘어선 물건은 삶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소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예기치 못한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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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면 피터 잭슨 감독의 ‘중간계 6부작’만큼 주제와 스타일이 일관된 장기적 연작 영화도 없다. 혹자는 피터 잭슨이, 두벌의 <스타워즈> 3부작을 세상에 내놓고 세 번째 3부작을 디즈니의 손에 위탁한 조지 루카스 병에 걸린 게 아니냐며 놀리기도 하지만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조지 루카스 외 다른 감독들도 메가폰을 잡았고 심지어 그들이 연출한 <제국의 역습>과 <제다이의 귀환>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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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갑의 횡포가 처벌받고 을의 억울함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써놓고 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순진하다 못해 한심한 인식이다. 그래도 열받는 현실이 계속 생기는 걸 보면, 세상에 대한 기대는 살아 있다는 증거인가 보다.
나는 휴대폰, SNS,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강의하는 것 외에는 외출도 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최소화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도 집 전화와 전자메일로 웬만한 사람보다 더 세상에 노출된 신세다. 제일 힘에 부치는 일은 지인들이 내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인데, 내용의 전형성 때문이다.
사연인즉 소위 진보, 유명, 훌륭, 소수자 ‘셀럽’으로 알려진 이들의 ‘갑질’이다. 누구나 알만한 사람들이, 믿겨지지 않는 일을 일삼는다. ‘선한’ 자에게 억압받는 약한 자. ‘좋은 일’을 많이 한 유명 인사로부터 억압, 상처, 피해를 입은 이들이 내게 하소연하거나 실질적 도움을 청한다. 한 사람에 대해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강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알아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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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 철수와 영희
[정훈이 만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 철수와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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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그 무엇도 자신의 상대성이론에 위배될 수 없다고 믿었다.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정보는 물론 존재와 탄생 같은 ‘사실’조차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래서 순간이동은 불가능하다. 과학자로서 자신의 전성기에 태동한 양자역학을 아인슈타인이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양자역학적 효과는 아인슈타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가 만약 존재한다면, 빛보다 빠른 이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그 무엇도 빛보다 빠를 수 없으므로 양자역학은 틀렸다’였다.
오늘날 ‘EPR 실험’으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의 역설로 양자역학이 방증되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는 없다. 오히려 과학자들은 그로부터 순간이동을 구현할 기술적 힌트를 얻었다. 1990년대에는 아인슈타인의 역설에 기반한 원자 규모의 순간이동이 실험적으로 성공했고, 조만간 눈에 보이는 크기의 물질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가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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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 집에 갔다가- 내 입장에서는- 신기한 물건을 보았다. 구글의 크롬캐스트. 태블릿의 앱과 와이파이로 연동되어 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TV에 띄워 볼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 6시5분에 맞춰 TV 앞에 앉을 필요 없는 세상은 이미 나도 나름대로 누려왔지만, 크롬캐스트나 애플TV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앞으로 지상파 방송국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야 할지는 항상 고민인 과제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플랫폼이 발견되면 본능적인 호기심이 발동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싹한 감정도 동반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프로그램,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KBS2에서 2015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프로그램이다. 일단 예능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다큐멘터리 3일>의 DNA를 살짝살짝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닥본사’(<개그콘서트>의 코너 ‘닥치고 본방사수’)를 떠올리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본방을 사수하라는 프로젝트인가 하는
[김호상의 TVIEW] 본방사수라는 어려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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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제목의 회화 작품이 있다. 뭐가 그려져 있냐고? 작품엔 버젓이 파이프가 그려져 있다. 악취미가 아니다. 제목과 제목이 지시하는 대상의 불일치, 그 역설이 주는 당혹감이 작품의 주제다. <샘물>이라는 설치 작품도 있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옹달샘을 퍼와서 설치해놨냐고? 아니올시다. 떡하니 변기가 하나 놓여 있는 작품이다. 뭐 역시나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로 역설감을 주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다다이즘 작품이다. 그 시절 음악도 역설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가 꽤 있었는데, 존 케이지가 피아노 앞에서 4분33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퇴장한 퍼포먼스는 유명하다. 침묵이 음악이 되는 역설이라니. 과연 전후 시대의 니힐리즘 아방가르드답다.
역설(혹은 아이러니). 사전적 의미로는 “1. 발화된 언표와 의미하는 언의가 불일치하는 상태. 2. 예상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라고 나와 있다. 위 작품들 말고도 역설을 주제로 한, 역설로 이루어진,
[곡사의 아수라장] 모순, 부조리, 불일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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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기술자들> (주)대한민국 기술자들
[정훈이 만화] <기술자들> (주)대한민국 기술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