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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학대받은 개들의 반란을 그린 <화이트 갓>은 흔히 <혹성탈출> 시리즈에 비교되지만 판타지가 아니며 공간도 한 도시로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면 갈등을 서사적으로 해소할 출구가 제한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은 이 난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초월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몇 차례의 경이로운 순간을 창조했다. 몸을 낮추어 다른 종족과 눈높이를 맞추고 땅과 나란해진 인간과 동물의 이미지는 그중에서도 백미다.
02/20
내가 다닌 중학교는 예술 학교였다. 기억 속의 나는 3년 내내 음악부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를 들으며 등교했다. 주번이라서, 잠이 오지 않아서, 유별나게 일찍 집을 나선 어둑한 아침에도 음악부의 이름 모를 누군가는 반드시 나보다 먼저 학교에 와서 악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아, 지지 않겠어! 나도 방과 후에 석고상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악마는 까만 쫄티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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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모든 행불행의 원인. 영원한 제도인 가족이 ‘평생 원수’인 경우가 최악일 테고 직장 상사, 동료, 연인, 지나가다 부딪친 사람까지.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내 입장에서 너무나 억울할 때 상대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도대체 왜 저럴까? 미친 걸까? 아픈 걸까? 나쁜 걸까?
인간의 본질은 없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얘기.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이 상대의 본질이다. 나열하기 민망한 다양한 저질 행동이 일상인 사람들,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갑질, 일부 ‘진보 인사’의 인간성 바닥에 직면할 때가 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면 마음 편하다.
그런데 미친 사람이 아픈 사람이라면 다시 골치가 아파진다. 정신적 질병(mental disease)은 기분, 감정, 인식에 장애가 생기는 병이다. 정신 질환자는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라는 편견이 강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암이나 당뇨병의 증상이 다 다르듯 정신적 질병도 마찬가지다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픈 사람, 미친 사람,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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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한 10대나 자기관리가 철저한 20대가 아니고서야 ‘먹는 것이 곧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는 날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평범한 일주일 중에 하루였던 어제 먹은 것을 떠올려본다. 아침은 마트에서 1+1로 구입해온 두유로, 점심엔 자장면에 서비스 군만두 두개를 먹었다. 저녁은 회식이었다. 맥주를 마셨는데, 밥이 될 만한 안주랍시고 빨간 떡볶이와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 전부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들은 말이나, 하루 동안 했던 생각은, 행동은 어땠을까. 유기농적이고, 순수하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소위 ‘착한’ 것들이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악해지고 교묘해졌는데, 우리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착한 것을 찾는다. 그만큼 하루하루 나이를 쌓아가는 일이 괴롭다는 방증이기도 할 테다. 네모난 TV 화면 속에서만큼은 지지부진하고 속 터지는 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않기를, 착한 마음으로 바랄 테니 말이다.
KBS2 수목드라마, <착하지
[김호상의 TVIEW] 라벨을 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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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신데렐라> 신데렐라를 찾습니다
[정훈이 만화] <신데렐라> 신데렐라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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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년. 밤하늘에 유럽의 ‘첫 번째’ 혜성이 떴다. 기원전부터 혜성을 체계적으로 관측해온 아시아와 달리 유럽에서는 그런 역사가 없었다. 유럽인들은 하늘은 완전하므로 별들이 섭리에 따라 규칙적인 원을 그리며 지구를 돈다고 믿었고, 혜성을 땅 근처의 먼지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먼 우주를 관측해온 천문관측가 티코 브라헤의 눈에는 혜성이 대기권의 현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천체가 불완전한 운동을 하는 게 아닐까? 관심을 먼 우주에서 가까운 태양계로 돌린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했다. 행성들은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완전히 규칙적이지는 않았고 그 궤도는 명백히 원과는 달랐다. 그러나 여전히 천동설에 사로잡혀 있었던 티코 브라헤는 규칙을 찾아내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의 손에 넘어간다.
지동설을 어려서 수용했고 수학적 재능까지 갖췄던 케플러는 관측 자료를 손에 넣은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핼리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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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대적이면서 가장 고전적인, 그랜드한 매너!” 마침 실내악이 흐르던 참이라 지역 케이블TV의 웨딩홀 광고가 떠올랐으나, 실은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거대 로펌 대표 한정호(유준상)가 아들 인상(이준)에게 법을 공부하면 체화되는 매너를 설교하던 중이다. 탈모 외엔 별 고민 없던 일상은 아들이 난데없이 산달이 가까운 소녀를 데려오면서 깨지고, 경위를 설명하던 서봄(고아성)은 정호네 거실에서 진통을 시작한다. 이 소동을 비공식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한정호는 오페라를 크게 틀어 산모의 비명을 감추고 구급대원 앞에서 그랜드한 매너를 선보인다. “이렇게 기민하게 와주시다니 정말 놀랍고, 감사합니다.” 한정호 부부가 전통과 격식, 의전에 집착할수록 상황은 꼬이고 봄이는 더 깊숙이 자리잡는다. 쉴 새 없이 웃다 보면, 정성주 작가의 전작이 겹쳐지며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다.
한정호의 로펌은 JTBC <밀회>처럼 상스러운 재벌의 약점을 쥐고 거래할 수 있
[유선주의 TVIEW] 참으로 우스운, 하지만 아찔하게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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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보다가 빵 터지고 말았다. 그 트윗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뱀파이어가 못 사는 이유.’ 뭐지? 낚여서 클릭해보니, 헉! 사진이 한장 올라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교회 숫자’라는 제목으로 남한 지도 위에 수천개의 점들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물론 그 점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교회가 하도 많아서 뱀파이어가 우리나라에 서식할 수 없다는 농담에 빵 터지면서 한편으론 씁쓸해졌다. 종교가 우리나라에 와서 고생이 많구나. 역시 대한민국은 뱀파이어 살 곳이 못 되는구나.
우리나라에 뱀파이어가 없는 이유는 교회 때문만이 아니다. 외국에는 수없이 많은 뱀파이어 소설과 영화들, 코믹스가 있지만 우리나라엔 (뱀파이어 전통도 없을뿐더러) 뱀파이어를 환영해줄 매체가 적다. 그나마 뱀파이어에 우호적인 매체는 영화(혹은 웹툰)일 텐데, 할리우드영화 <트와일라잇> 등은 국내 흥행에 성공할지언정 정작 우리나라 뱀파이어영화는 <흡혈형사 나도열> <박쥐&g
[곡사의 아수라장] 서민의 피가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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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기생수 파트1> 다중인격 기생수
[정훈이 만화] <기생수 파트1> 다중인격 기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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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 마니아인 친구가 있었다. 체격은 작지만 험악하게 생긴 청년이 허름한 아저씨 점퍼를 입고 인사동과 황학동을 돌며 칼날을 살피고 있노라면 상인들은 저런 인간에게 칼을 팔아도 되는가, 돈 몇푼에 양심을 넘기는 거 아닌가, 고뇌하는 얼굴이 되곤 했다. 착하게 생긴 내가 거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아유, 아저씨, 괜찮아요. 이런 쪼끄만 칼로 사람 죽일 것도 아니고.” 그러자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죽일 수 있어.” 넌 눈치도 없냐. 감히 친구를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좌판을 정리하는 아저씨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오래전 그 애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작고 평범한 싸움이 일어났다. 맞은 아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마침 주머니에 있던 주머니칼을 꺼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때린 아이를 한번 찔렀는데…. “즉사했어.” 뭐라고. “엄청난 우연으로 어딘지도 모르면서 정확하게 급소를 찌른 거지. … 마치 킬러처럼.” 친구는 침통하게 말했다.
그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커터칼을 금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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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성인용 에로틱 로맨스로서 싱거운 실체를 드러낸 가운데, 때마침 시선을 유혹하는 영화가 있으니 피터 스트릭랜드 감독의 <듀크 오브 버건디>다. 몇몇 영화제에서 소개된 다음 올해 초 영미권 일부에서 개봉한 <듀크 오브 버건디>는, 겉으로 보이는 지배자-복종자 관계 뒤에 색색의 실크 커튼처럼 섬세하게 겹쳐진 두 여자의 사도마조히즘적 성애를 탐구하는 영화다. 화면은 나비 표본처럼 우아하지만, 고통부터 우스꽝스러움에 이르는 관능의 온갖 성분을 망라한 내막은 만만치 않다.
02/06
<폭스캐처>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탁월한 몸 연기(physical acting)의 향연이라고 평한다. 나 역시 맨 앞줄에 서서 동의하는 바다. 연습용 인형과 묵묵히 섀도 레슬링을 벌이는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의 모습으로 테마를 암시하는 도입부부터 눈사태처럼 설명 없이 들이닥치는 결말까지 <폭스캐처>는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말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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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여섯살이 된 조카에게 물었다. 원휘는 꿈이 뭐야? 꿈이 뭐긴 꿈은 자다 깨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순식간에 제 엄마인 내 동생을 바라봤다. 원휘야, 큰 이모가 너 커서 어떤 사람 되고 싶은지 묻는 거야. 조카는 배시시 웃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니 무슨 애가 꿈도 없니, 이거 큰 문제 아니니?
그래서 시작된 동생과의 한판 싸움. 제 자식 문제라면 언니인 내 머리털이라도 라이터로 지질 기세여서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없는 내가 서러워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자다 오줌 마려 깰 때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는 기억의 잔상 정도로 꿈을 생각한다는 건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 같았다. 되고픈 것도 하고픈 것도 많을 나이 아닌가, 여섯살이라면 그림책에서 나팔 한번 봤다 치면 나팔꽃도 그리고 싶고 나팔수처럼 트럼펫도 불고 싶고 팔랑팔랑 나팔바지도 입고 싶고 아줌마들 대화 끝에 나팔관이라는 생소함을 되묻기도 할 호기심의 나이 아닌가.
그러나 조카는 아직 어리고 그 어림에 부합되지
[김민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대학이 왜 대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