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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약자를 알아본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최연소이자 유일한 싱글 여자로 가평에 끌려갔던 그 밤, 꼬마들은 열명이 넘는 어른 중에서 누가 가장 약한지를 대번에 눈치채고는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왔다. “이모, 우리랑 놀아요.” 누가 네 이모라는 거니, 그건 그렇고, 너 이름이 뭐니. 부모들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생면부지 꼬마 무리를 거느리고 두 시간 동안 배드민턴을 쳤다. “이모, 왜 이렇게 못 쳐요, 깔깔깔.” 그래, 나 배드민턴으로 체육 실기 시험 봐서 C 맞은 사람이다! 그래서 20년 넘게 라켓을 꺾었는데 너네 때문에 이러고 있다! 야외에 나온 꼬마들이 흥분해 좀처럼 잠들지 않았던 그날 밤은 매우 길었다.
내가 전전한 다양한 직업과 아르바이트 중에서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코 애 보기다. (돈 받고 한 일도 아니고 일하던 가게 주인 아줌마가 가끔 떠맡겼다.) 뽀로로가 없던 암흑의 1990년대, 세평 가게에 갇힌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태엽 장치 여섯살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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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포터> 세계에서 사물을 날아오르게 하는 주문이 “윙가르디움 레비오사”다.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투모로우랜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성 캐릭터가 키를 잡은 영화들이 약진하는 초여름이다. 멜리사 매카시 주연의 <스파이>는 XL 사이즈 중년 여성들이 현실에서 마주치는 흔한 편견들을 첩보 모험 서사 안에서 신나게 격퇴한다. 폴 페이그 감독은 농담을 통해서도 현실의 성차별 패턴을 예리하게 짚는다. 수잔(멜리사 매카시)이 현장 스파이로 나서기 두려운 마음을 친구에게 고백하는 대사가 한 예다. “엄마의 충고가 항상 머릿속에 울려. 수잔, 절대 튀지 마라. 승리는 양보해라. 도시락에 그런 메모를 넣어줬어.” 여자는 똑똑함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조력자로 남는 ‘지혜’를 발휘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체념. 낯설지 않다.
05/18
내년 오스카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윙가르디움 퓨리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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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 초반, 임수정의 대사는 압권이다. 특히 두 가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그럼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뭔가요?” 또 하나는 류승룡이 속옷 차림으로 우유통인지 가스통인지 메고 지나가자 이선균이 “저 남자 멋지지 않아?”라며 아내를 떠본다. 그녀 왈, “미친 거 아냐? 한겨울에 왜 옷 벗고 XX이야”. (정확한 대사는 아니다.) 얼마나 웃었던지 다음 장면을 놓쳤다. 그녀의 대사는 소통의 의미를 압축한다. 우리가 흔히 대화라고 생각하는 소통(疏/通)의 ‘소’는 ‘트다’는 뜻도 있지만, ‘거칠다’, ‘멀다’(소외)라는 의미도 ‘만만치 않은’ 글자다. 그러니 소통은 “안 통한다”는 뜻도 되고, 실제로 우리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산다. 언어를 만든 자의 권력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새가 아침 일찍 일어나면 벌레를 더 잡아먹을지 모르지만, 벌레가 일찍 일어나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는 의미다. 벌레 입장에서 이른 기상은 재앙이다.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찍 일어나는 새, 일찍 일어나는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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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캐릭터가 영 아니야. 착한 남자, 이걸 어디다 쓰니?” 대표가 실무자와 상의도 없이 계약한 웹툰 원작을 마지못해 검토하던 정인필름의 프로듀서 김수진(송지효)이 짜증을 섞어 원작에 타박을 놓는다. 하지만 ‘구여친’들과의 실제 연애사를 웹툰으로 그린 작가가 자신의 ‘구남친’인 방명수(변요한)란 사실을 알게 된 수진은 웹툰을 다시 읽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의 설렘과 흥분이 새삼스러워지는 현자타임이 찾아온다. 노트북을 탁 덮어버린 수진의 긴 한숨을 번역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 정도가 될 테지. 그렇다. 대개는 의미 없다. 옛 남자의 연애 회고담에 언젠가 자신도 등장하리라 상상하는 달콤하고 씁쓸한 감정 따위가 먹고사는 데 무슨 영향을 미치겠나? tvN 드라마 <구여친클럽> 이야기다.
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표의 사채 빚으로 회사는 망하게 생겼고 수진은 명수의 웹툰을 영화로 만들어 어떻게든 재기를 해야 한다. 게다가
[유선주의 TVIEW] 구여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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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이 타계했다. 향년 106살. 참 기나긴 여정이셨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슨 웰스, 한형모, 김기영 감독보다 형님이시니 말 다 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기자들은 “독특한 영상미학을 추구했던 최고령 감독”이라고 틀에 박힌 수사들을 퍼다나르지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바쁜 우리는 정작 그 ‘독특한 영상미학’이 뭔지 모른다. 기자들도 모른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를 진정 노장으로 만든 그만의 ‘독특한 영상미학’이란 사실, 연극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의 모든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역할을 겨우 연기해내는 배우들이 대사를 주고받는 연극영화다. 그것은 무대를 숨기지 않는 말들의 영화였고(<언어와 유토피아>), 배역극을 숨기지 않는 영화였다(<신곡>). 심지어 그는 아예 연극을 촬영했다(<식인> <제5제국> <나의 경우>). 고집이 조금 꺾인 후기에도 그는 여
[곡사의 아수라장] 삶은 이미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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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세상의 멸망 그후
[정훈이 만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세상의 멸망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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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외딴 도로에 서 있다. 경찰이다. 차를 손보는 중이다. 옅은 하늘색 반팔 티셔츠에는 기름때가 요란하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꽉 찬 가죽 부츠의 주름이 보기 좋게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차 안에서는 무선통신이 요란하다. 동료들이 폭주 범죄자 나이트라이더를 추격하는 중임을 알리는 경찰 통신이다. 남자가 가죽 재킷을 걸쳐 입고 차에 올라탄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백미러를 살짝 흘긴다. 동료들은 전멸했다. 경찰들을 따돌린 나이트라이더의 8기통 엔진이 괴성을 지르며 도로를 가른다. 마침내 남자의 차가 출발한다. 차체에 새겨진 인터셉터라는 글자가 크고 선명하다. 나이트라이더와 길 한가운데서 마주한다.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두대의 차. 충돌의 순간, 나이트라이더가 먼저 핸들을 틀어 아찔하게 피해나간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는 나이트라이더. 그러나 그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다 끝났다며 울부짖는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상대의 압도적인 무게감을 감지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삶이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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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계기로 내 인생의 자동차영화들을 추억하는 요즈음이다. 그중 <배니싱 포인트>(1971)는 극도로 단순하다 못해 곧장 승천할 기세의 괴작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자동차 탁송원 코왈스키(배리 뉴먼)는 콜로라도부터 샌프란시스코를 16시간에 주파한다는 미친 목표를 세우고 시속 257km까지 닷지 챌린저의 액셀을 밟는다. 이 자동차영화에는 카체이스도 노상 액션도 없다. 주인공은 장애물과 교통경찰을 무시하고 소실점까지 과속할 뿐이다. 운전 도중 문득, 영원히 달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이 든 적이 있다면 <배니싱 포인트>는 당신을 위한 영화다.
05/06
“저희 마블이 생각하는 슈퍼히어로의 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민간인 보호입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는 동안 이 슬로건이 도처에서 나부끼는 환각이 보였다. 조스 웨던 감독은 관객의 호흡을 절대적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영웅 동맹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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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진화 이론이 마지막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생명이 목표하는 모든 일의 대전제가 생존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은 진화를 관장하는 생존 도그마에 완벽하게 어긋난다. 진화심리학자인 데니스 데 카탄사로는 개체로서의 번식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을 때 유전자를 공유하는 부양 친족에게 생존 자원을 몰아주는 옵션이 자살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서에 ‘섹스할 기회가 없어서’라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죽어서도 수치스러울 만큼 엄청난 고백이다. 무의식에 박아둬야만 한다. 카탄사로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 충동과 생활 변수의 상관관계는 지난달의 섹스 빈도, 성공적인 이성관계, 평생의 섹스 빈도, 안정적인 이성관계, 지난해의 섹스 빈도, 자녀 수 순서였다고 한다. 이 상관성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생식 잠재력이 낮은 사람들, 친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람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 사이에서 높게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자살이 생식 및 양육 능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손아람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타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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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중에 적어도 한달에 한두번쯤은 선후배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있다. ‘다 정리하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까봐….’ 그 문장에 길게 이어지는 말줄임표. 그 속에는 아마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꽤 많이 묻혀 있겠지만, 그 말줄임표 속의 상상과 고민들을 끄집어내 식후의 커피 테이블에 올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상상 속에서만 떠올려보는 쪽이 피차 행복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그 답을 스스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우리는 제주도와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쓰인 책들을 들춰보며, 인터넷 사이트를 띄워놓으며, 그렇게 그 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2015년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MBC에서 이제 막 시작한 수목드라마 <맨도롱 또똣>은 제목부터가 제주도 방언이다. 풀어놓으면 ‘기분 좋게 따뜻한’이란 뜻이라고 한다. <미생>의 안영이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강소라가 여주인공 이정주 역을, 영화 <
[김호상의 TVIEW] 제주도와 연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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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차이나타운> 크루즈 타고 한국으로~
[정훈이 만화] <차이나타운> 크루즈 타고 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