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주류 유통업체의 장부를 조작해 세금 탈루를 돕고, 사장의 묵인하에 소소한 “삥땅”을 쳐온 남자. 뒤탈 없이 해먹는 쪽으로 무척 유능한 인재였던 김성룡(남궁민)의 말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은 노나먹는 관계”란다. 대기업 분식회계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를 융통성 없는 지질이라 비웃던 그는, 공석이 된 그룹 경리과장직에 지원한다.
회계범죄를 저지르는 대기업과 회사 내 말단 경리부가 맞서는 블랙코미디. KBS <김과장>을 보고 있자니 ‘최순실 게이트’의 내부 고발자 모씨를 취재한 기사가 떠올랐다. 실무로 일하던 그는 타국에서 급여도, 숙소 지원도 끊긴 채 토사구팽 당했고 배신이 거듭되자 폭로를 결심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해졌다. 만약 최순실이 성룡처럼 ‘노나먹음’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면, 누구의 폭로도 없었을까?
드라마 <김과장>은 김성룡이 믿던 아름다운 ‘노나먹음’에 마찰이 생기는 지점들을 꼼꼼하게 짚어간다. 투명하
[유선주의 TVIEW] <김과장> 같이 노나먹읍시다?
-
[정훈이 만화] <조작된 도시> 그들이 짜놓은 세상, 뒤집어야 마땅하다
[정훈이 만화] <조작된 도시> 그들이 짜놓은 세상, 뒤집어야 마땅하다
-
대학에 입학했더니 나와 고향이 같은 여자애가 있었다. 우리는 인사를 했다. “안녕? 난 정원이라고 해.” “안녕? 난 혜영이라고 해.” 옆에서 보고 있던 서울 출신 동기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너네 왜 인사해?” 그럼 서울 애들은 통성명도 안 하고 야자 트냐? 우리 고향에선 안 그런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너네 아는 사이 아니야? 전주에 여학교 한개잖아.” 하….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전주에는 여고가 8개, 남녀공학이 2개야. 여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총 10개인 셈이지. 학교가 하도 많아서 나도 몇갠지 몰랐는데(으쓱), 하루는 교장이 3학년 전체를 강당에 모아놓고 우리 성적표 수백장을 던지면서 그러더라고, 이번 모의고사 결과 여고 8개 남녀공학 2개 중에서 우리 학교 이과가 9등 문과가 10등이다! 그리고 난 당연히 10등인 문과였지(다시 한번 으쓱).” 아이, 숨차.
서울 아이는 사과했다. “미안, 난 시골은 다 학교가 한개인 줄 알고.” 이 자식이! 나는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시골 사람의 도(道)
-
<핵소 고지>에는 ‘삭제’와 ‘편집’이 없다, 는 게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지난호 국내뉴스로도 전했듯이, <얼라이드>를 비롯하여 최근 일부 수입영화들의 가위질 논란 탓인지 오리지널 본편 그대로 개봉하는 것도 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당연하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횡행했으면, 어쩌다가 당연한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로 칭찬받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괜히 나도 나라는 이유로, 너도 너라는 이유로 칭찬받고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핵소 고지>에는 전장에서의 모르핀 투약 장면이나 심각하게 훼손되는 육체 등 다소 엄격한 심의기준이 적용될 만한 장면들이 있었으나, 이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결정한 영상물등급위원회쪽은 “심의 결과 영상의 표현에 있어 폭력적인 부분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지 않게 그려졌다. 그 밖에 대사와 공포 부분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어쨌건 호불호를 넘어 ‘감독 멜 깁슨’이 언제나 추구해왔던 거의 집착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제목 바꾸지 맙시다
-
-
읽다보면 입에 침이 고이고 온몸이 근질거려 벌떡 일어나 술집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만화들이 있다. <술 한잔 인생 한입>이라든가 <술꾼도시처녀들> <와카코와 술> 같은 만화들이 그렇다. 만화에서 소개한 술집을 검색하고 주당 멤버를 모아 만화에서 보았던 군침 도는 안주와 술을 만화의 주인공 와카코처럼 “푸슈! 푸슈!” 입으로 소리를 내며 부어라 마셔라 하고는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기어들어오게 된다. 다음날 늦은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그 아름답던 만화책들은 다시는 펼쳐보기도 싫어져 구석에 처박아버리고 숙취 때문에 끙끙 앓으며 “술을 다시 마시면 난 개다!”라고 중얼거린다. 뭐, 2~3일 지나면 다시 개가 되어 멍멍 짖겠지만. 운이 좋아서 그날 저녁쯤 숙취가 좀 진정된다면 또 다른 종류의 술에 관한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나 약간 하드한 <알코올 중독 원더랜드>를 보면서 전날 술 마시고 저지른 만행과 추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불 속에 숨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아즈마 히데오 <실종 일기>
-
스타트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누르질 못했다. 어서 빨리 저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고 싶었건만, 멍하니 소파에 앉은 채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쭉 들어버렸다. 나는 지금 ‘들었다’가 아니라 ‘들어버렸다’라고 썼다.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내가 이 음악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곡의 주인공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제목은 <All Along The Watchtower>다. 밥 딜런이 쓰고 노래한 것을 지미 헨드릭스와 그의 밴드가 커버해 1968년 세상에 내놓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 곡을 다시 만나게 된 건 게임 <마피아3> 덕분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하자마자 이 곡이 딱! 하고 흘러나오는데, (이미 익숙한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어쨌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1장의 ‘앨범’을 끝까지 듣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1개의 ‘곡’마저도 온 신경을 집중해 청취하는 경험을 박탈당
[마감인간의 music] 포로가 되다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ll Along The Watchtower>
-
지난해 7월12일, 나와 작업실 친구들은 난데없이 속초로 향했다. 누군가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곳에서 <포켓몬 고>를 해볼 수 있다는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속초, 인제, 신남이라는 표지판을 거쳐 자정을 넘긴 시각에 속초에 도착했다.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여기 있어, 있어!”라고 외쳤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포켓몬이라고는 피카츄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는 나였지만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귀여운, 지나치게 귀여운 생명체에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우리는 밤새도록 거리를 돌며 포켓몬을 포획했고, 해가 떴을 때도 멀리 보이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길 한번 흘긋 던졌을 뿐 분주히 포켓스톱을 돌아다녔다. 작업실 바로 옆 편의점도 가기 귀찮아하는 친구들이 한없이 걸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처음 포획한 포켓몬은 이브이였다. 쾌청한 날씨였고, 속초 바다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의 잉어
[한유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금은 포켓몬을 잡는 시간
-
어린 시절,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기관지천식을 심하게 앓았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부유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내 방엔 다른 친구들 집엔 없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고, 조립해 만들 수 있는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매일 장난감을 조립하고 공상과학 소설들을 즐겨 읽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브이>나 <전격 Z작전>을 시청하던 어느 날, <주말의 명화>였는지 <토요명화>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어디선가 방영한 <스타워즈>를 보게 되었다.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지구라는 별은 영화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등장했다 치더라도 지구는 작은 변두리 행성 중 하나로 나왔을 것이다. 그 세계 안에선 우주의 다양한 종족들이 거대한 연합을 이루어 살고, 그 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국이라는 또 하나의 집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내 인생의 영화] 한성천의 <스타워즈> 시리즈
-
이번주의 스포츠 타임라인으로 시작하는 KBS의 <한눈에 스포츠>. 공영방송사와 닮은꼴인 제목이야 어쨌든,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기존의 심심하고 전형적인 카메라워크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메인 앵커의 상반신을 광각 카메라의 줌인으로, 그것도 핸드헬드 느낌으로 흔들어주며 스포츠의 다이내믹함을 전한다. 몇 대 몇의 스코어와 선수들 소식을 단신과 리포트로 전하던 스포츠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 스포츠 쇼의 느낌을 예능에서 차용해 온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짧은 코너들은 모바일 콘텐츠를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청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뉴스, 소트니코바와 김연아의 금메달 논쟁이나 프로야구 FA 100억원 시대의 명암 등에 대한 분석적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동사의 스포츠국에서 만든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가 새로운 형식의 스포츠 토크의 장을 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쇼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노리고 있는 듯 보인다. 공중파는 지금 치열한 생존경쟁 중이다
[김호상의 TVIEW] <한눈에 스포츠> 스포츠 프로그램의 진화
-
[정훈이 만화]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모든 것을 구원할 그 날이 온다
[정훈이 만화]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모든 것을 구원할 그 날이 온다
-
“내가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네가 앞으로 뭘 하든 하지 마라.” 한국영화계의 기념비적인 캐릭터 블랙코미디인 송능한 감독의 1997년작 <넘버.3>에서 극중 마동팔 검사(최민식)가, 그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들러붙어보려는 조직의 넘버3 서태주(한석규)에게 “깡패 새끼는 동생으로 키우지 않는다”며 건네는 준엄한 충고다. 이번호 <더 킹> 비평기획에서 송형국 평론가가 이른바 ‘검사 영화’를 한국영화계 특유의 장르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적극 동의하면서,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에서 검사와 깡패의 앙상블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영화가 바로 <넘버.3>였던 것 같다. 첫 장면부터 최민식이 샌드백을 치며 복싱을 하고 있기에 ‘어디 조폭인가?’ 싶지만 그의 옆으로 ‘檢事’라는 팻말이 보인다. 법을 다루지만 주먹이 더 빠른 그는 이후 한국영화계에 등장하는 검사 캐릭터의 전범이 됐다. 더불어 공격적인 풍자로 대중문화와 현실정치를 넘나드는 코미디 전략은 <넘버.3>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검사 영화 <넘버.3>를 다시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