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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너무 쉽게 접하고, 음악에 금세 질리기 쉬운 요즘 다시 찾아 들을만한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를 만난다는 건 축복이다. 캐나다 토론토 교외에서 자란 싱어송라이터 대니얼 시저가 부르는 R&B 음악은 곳곳에 부드러운 여운이 느껴진다. 2016년 10월 발표한 최신곡이자 싱글 음반 <Get You>에 달린 익명의 댓글은 그의 음악을 듣고 느낀 감정을 압축한 두 단어였다. ‘부드럽고 독특하다.’(smooth and unique)
알려진 바로 그는 복음음악 가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회와 신앙이 공기처럼 스며든 삶은 그에게 자연스러웠다. 데뷔 초기 발표한 EP 음반 《Pilgrim’s Paradise》(2015) 수록곡 <Violet> 뮤직비디오에 나온 성가대 신과 교회 시퀀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났다. 그러나 그의 터전에서 그와 또래 친구들에게 신앙이란 흔들리는 믿음이었다. 또 다른 그의 대표곡 <Death & Taxes>는 믿음에 관한
[마감인간의 music] R&B 본연의 아름다움 - 대니얼 시저, 《Pilgrim’s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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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처럼 전시를 보러 갔다. 마침 살이 에일 듯 극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날이라 이만저만 귀찮은 게 아니었지만 흔치 않은 건축 전시라 흥미가 동해 온몸을 칭칭 동여매고 집을 나섰다. 엄밀히 말하면 건축 전시가 아니라 ‘건축가의 삶展’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라는 르코르뷔지에의 전시였는데, 들어가자마자 그의 장례식부터 보여줬던 전시 구성은 꽤 신선했다. 그가 자신의 장례식에 쓰일 음악을 생전에 선곡해놓았다는 음악이 전시관 곳곳에서 흘러나왔는데 척박한 내 클래식 상식 중에도 가장 애정하는 곡이 끼어 있어 반가웠다.
사실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아파트를 처음 ‘발명’했다는 정도만 사전에 알고 갔는데 현대건축의 아버지라는 칭호는 인생 대부분 공격만 당하다가 말년이 되어서야 겨우 얻어낸 훈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건축가보다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당대 최고의 화가 피카소에게 콤플렉스를 느낀 자였다. 모든 예술가들이 모인다는 파리에 젊은 나이에 와서 그는 실패를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단순하게, 존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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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 출연 톰 크루즈, 필립 베이커 홀, 줄리안 무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윌리암 H. 머시 / 제작년도 1999년
누구나 술 취하면 당기는 음악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누구나 술 취하면 당기는 영화 한편쯤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 책 <청춘을 달리다>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취향에 관한 한 그리 이성적인 타입의 사람이 못 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거다. “인생의 영화 한편을 고른다면?”이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결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고르기 힘들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질문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머지 그냥 <그랜 토리노>(2008)라고 발설해버린다. 물론 이 단 하나의 리스트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대개, 기분 탓이다. <빌리 엘리어트>(2000)가 될 수도,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가 내 입에서 나올 수도 있다.
기준이 필요했
[내 인생의 영화] 배순탁의 <매그놀리아> 취중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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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신조어로 ‘탕진잼’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탕진 + 재미의 합성어로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란 의미를 가진다. 또 하나의 신조어인 ‘시발비용’과 어울리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뜻인 이 말은 탕진잼과 교묘하게 얽힌다. 2017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소소하게 탕진할 돈조차 충분하지 않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욕지거리를 수백번은 내뱉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세태는 미디어에서 가장 먼저 읽어내고 방송 아이템으로 바로 활용한다.
‘패키지로 세계일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있는 JTBC의 <뭉쳐야 뜬다>. 먹방 못지않게 많은 여행 프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속내를 알고 있는 건지, 첫 모임에서 이들은 “여행 프로 너무 많지 않아?”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는 네 사람, 정형돈과 김성주, 안정환과 김용만. 예능 새내기이자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는 안정환을 제외한 세 사람은 이미 국
[김호상의 TVIEW] <뭉쳐야 뜬다> 여행 프로 너무 많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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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그레이트 월> 이 막장의 밑바닥은 어디에
[정훈이 만화] <그레이트 월> 이 막장의 밑바닥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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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그런 장면들이 꽤 많다. 그 가운데 두 가지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두 가지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그것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장면은 모두 한명의 배우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평생에 걸쳐 마흔세번 죽었고, 얼마 전 마지막으로 다시 죽었다. 이 원고는 그에게 바치는 글이다.
첫 번째 장면. 데이비드 린치의 초기작 가운데 <엘리펀트맨>은 실존했던 존 메릭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승전결이 꽤 뚜렷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린치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그답지 않은 영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보다 이미지와 그것을 둘러싼 공기로 먼저 기억된다는 점에서 <엘리펀트맨> 또한 감독의 인장이 곳곳에 박혀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존 메릭은 다발성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얼굴에는 거대한 섬유종이 달려 있었다. 이러한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엘리펀트맨>과 <1984>의 잊지 못할 장면으로 존 허트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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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라는 직업은 참 애매하다. 뉴스를 발굴하고 이슈를 추적하는 일간지 본위의 이른바 ‘언론인’으로 분류되지도 않을뿐더러 <씨네21>의 경우 잡지협회나 한국영화기자협회에 등록돼 있지도 않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기사를 써도 ‘올해의 영화기자상’은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잡지로서의 <씨네21>이 모기업인 <한겨레>로부터 다수의 기자들이 넘어와 출발했음에도, 오래전 그보다 앞섰던 영화월간지 <스크린>과 <로드쇼>가 생겨나 사실상 기자보다는 영화평론가나 영화애호가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른바 ‘영화기자’가 되면서 형성된 전통이 이식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를 꿈꿨다 해도 ‘언론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통과한 정식(?) 기자도 아니고, 보다 멀리 영화현장으로 나가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다 해도 어쨌건 ‘영화인’은 아닌, 그럼에도 영화현장과 밀착된 기자로서의 자질과 뛰어난 혜안을 갖춘 평론가로서의 자질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반달 영화기자의 잃어버린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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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영화 속 남자주인공들의 직업군이 대부분 형사, 군인 아니면 범죄자, 자경단이었다. 그들은 법의 집행자가 아니라면 반대로 범법자였고, 그 공권력마저도 위법하게, 지극히 사(私)적으로 집행하는 일이 예사였다. 그들은 위험한 외톨이들이었다. 생겨먹은 성격이 처음부터 고집불통에 수구꼴통인 그들은 걸어다니는 인간흉기였고, 항상 개인적인 원한과 증오에 불타는 프로페셔널이었다. 나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했고 거기 나오는 그런 남자들을 사랑했다. 사실 지금도 좋아한다. 하지만 솔직히 인정하자. 그들은 모두 각자 나름의 파시스트였다는 걸.
요즘 영화 속 남자주인공들의 직업은 대체로 무엇일까? 글쎄, 외국은 슈퍼히어로와 스파이라면 한국은 검사와 조폭? 통틀어 직장인 아니면 아빠라고 하면 어떨까. 법이 곧 정의를 상징하던 시대는 지났다. 위험한 외톨이는 주인공쪽에선 사라지는 추세다. 론 울프는 주로 테러범을 칭하는 말이 되었다. 영웅이든 악당이든 남자들은 모두 어딘가 시스템에 소속된다. 그리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토니 스콧의 <맨 온 파이어>와 엘리 슈라키의 <격노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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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0일, <에스콰이어>는 장문의 칼럼을 통해 EDM 그룹 체인스모커스를 통렬히 비판했다. 요약하면 체인스모커스는 EDM 신의 니클백이라는 것이다(니클백은 과도한 대중성 때문에 마니아들의 혐오에 시달려왔다). 첫 문단만 인용하면 이렇다.
“니클백 혐오는 이제 니클백만큼이나 진부해졌다. 니클백이 얼마나 구린지 더이상 아무리 영특한 글을 써봤자 전혀 재밌지 않다. 할 만큼 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우리의 집단 조롱 대상이 될 만한 새로운 이들이 나타났다. 체인스모커스다. 그들은 니클백이 포스트 그런지 아레나 록에 대해 했던 짓을 EDM에 하고 있다. 해당 장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악의 클리셰들을 이용해 단시간에 인기를 얻었다.”
칼럼이 화제가 되자 체인스모커스가 즉각 반격에 나섰다. SNS에 니클백의 히트곡 <How You Remind Me>를 부르는 영상을 올렸다. 자신들의 신곡 <Paris>를 부르다가 갑자기 <How You Re
[마감인간의 music] 팝 EDM 변화 예고 - 체인스모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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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고향집의 화두는 단연‘책가방’이었다. 조카 두명이 올해 나란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여동생들 미간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형편에 맞게 사주자니 따돌림당할 것 같고, 유행하는 명품 가방을 사주자니 적잖이 부담이 되고. 듣자하니 10만원짜리는 가난뱅이 취급이고, 70만원 이상의 명품 브랜드는 재고가 없을 지경이고, 30만, 40만원짜리는 돼야 간신히 중산층 흉내를 낼 수 있단다. 책가방에, 아이들 옷 브랜드까지 벌써부터 등골 부서지겠다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이른바 신(新)등골 브레이커. 노스페이스, 자전거, 화장품 등 중·고등학교를 휩쓸었던 고가품 유행이 이제는 초등학교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입학 학용품의 평균 지출 비용이 63만8천원이란다. 14만원짜리 이탈리아제 지우개, 33만원짜리 프랑스제 필통, 28만원짜리 이탈리아제 공책이 70만원짜리 일제 책가방에 담겨 있어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입학식 풍경. 인정욕망 자체가 창백하게 물신화돼버린 어떤 즉물의 세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조카의 입학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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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린드롬(Palindrome)은 회문, 즉 앞에서 읽으나 뒤에서 읽으나 같은 단어나 어구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리효리, 오디오, 기러기 같은 단어가 있겠고 ‘여보 안경 안 보여’, ‘소주 만병만 주소’ 같은 문장도 있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1995)를 연출한 토드 솔론즈의 2004년작 <팰린드롬>의 주인공은 아비바(Aviva)라는 이름의 소녀이고, 그 역시 앞뒤로 읽어도 똑같은 팰린드롬식 이름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비바 역은 완전히 다른 8명의 배우가 연기하는데, 이 때문에 처음 영화를 볼 때 주인공 아비바에게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백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비바의 첫 번째 모습은 흑인 소녀였는데(거기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스럽고…) 이내 짙은 갈색 머리의 통통한 백인 소녀로 바뀌었다가, 빨간 머리의 교정기를 낀 마른 백인 소녀-통통한 금발의 백인 소녀-갈색 단발과 보통 체격의 백인 소녀-긴 머리의 엄청난 과체중 흑인 소녀-검
[내 인생의 영화] 이랑의 <팰린드롬> 반성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