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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5월 29일 새벽, 평양 을밀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작은 체구의 여인이 무명천으로 엮은 줄을 타고 기와지붕 위를 위태롭게 기어올랐다. 5m 높이라고는 하나, 11m 축대 위에 지어진 누정이었기에 떨어지면 죽음이었다. 사실 죽기로 작심한 터였다. 목을 매려던 무명천이었다. 허나 마음을 달리 먹었다. 지붕 위에 쪼그려 앉아 아침을 맞은 그녀는 사람들이 몰려들자 비로소 외쳤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그마저 다시 깎고 해고를 남발하는 공장주의 횡포를! 규탄했던 그의 이름은 강주룡, 평원고무농장 노동자였다. 9시간30분의 점거농성 끝에 그녀는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로 인해 해고됐으나, 그녀로 인해 노동자들은 임금 인하를 막아냈다. ‘체공녀’ 강주룡, 이듬해 8월 빈민굴에서 31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 그녀는 최초의 고공농성자였다.
그로부터 80여년이 흘렀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까. 지난 15년 동안 노동자들이 공장굴뚝과 교통감시탑, 광고탑, 고
[노순택의 사진의 털] 강주룡으로부터 3137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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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지 루카스 / 출연 마크 해밀, 해리슨 포드, 캐리 피셔 / 제작연도 1977년
어릴 적 TV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이 방영되고 있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오비완 케노비(알렉 기네스)를 만나 광선검을 받는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집에 있던 VCR에 급하게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녹화를 했다.
당시 나에겐 시골 소년 루크가 모험을 떠나고, 동료들을 만나 공주를 구출하고, 거대한 악과 부닥치고, 서로 힘을 합쳐서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좋았고, 난생처음 보는 X윙 우주선과 데스 스타 등이 등장하는 제대로 된 SF물을 접하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와 동생은 비디오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반복 시청을 했는데, 동생은 영화의 후반부 대사를 죄다 외웠고, 난 이 영화의 특수효과에 몰입해 있었다.
10여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특수시각효과(VFX) 업계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
[내 인생의 영화] 박재욱의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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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더>의 가장 재미있는 대사와 이미지는, 맥도널드 형제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개념을 발명하고 디자인한 과정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딕(닉 오퍼먼)과 맥맥도널드(존 캐럴 린치)는 공산품 조립라인처럼 분업화된 햄버거 조리 프로세스에 맞게 주방을 설계한다. 그리고 테니스 코트에 백묵으로 튀김기계, 그릴, 음료 스테이션 등의 배치도를 그리고 직원들을 투입해 실전 시뮬레이션을 한다. 인력 트레이닝은 물론 실제를 반영해 동선의 설계를 수정하는 이중목적의 리허설이다. 실화에 기초한 이 장면은 존 리 행콕 감독과 안무가 키키의 협력에 의해 일종의 ‘버거 발레’로 연출됐다. 성격은 판이하지만 쌍둥이처럼 합이 잘 맞는 두 형제는 농구 코치처럼 ‘선수’들을 지휘하고 관찰하며 초안을 수정해간다. ‘요식업계의 코언 형제’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04/11
다큐멘터리 <댄서>의 대상은, 고작 20살에 영국 왕립발레단 솔로이스트로 뽑힌 걸로도 모자라 조연에는 부적절한 카리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우유 뺀 밀크셰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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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온다고 떠들썩하다. 흔히 말하는 ‘위기는 기회다’라는 슬로건 또한 넘쳐난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의 맞댄 얼굴을 보지도 못한 청년층에게 이건 명백한 사치다. 최근의 뉴스를 보자. 독일 아디다스사가 23년 만에 본국에서 공장을 가동했다고 한다. 사실 운동화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OEM 산업으로 베트남, 중국 등지의 공장에서 하청으로 생산되어온 지 오래다. 하지만 이젠 10명의 직원이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MADE IN CHINA’가 ‘MADE IN GERMANY’로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실체다.
‘밥벌이 연구소’를 표방한 JTBC의 <잡스>. 스티브 잡스를 차용한 동시에 ‘직업들’의 의미를 가진다. 박명수, 노홍철, (또)전현무가 3잡스로 공동 MC를 맡는다. AI로부터 직업을 빼앗길 위기에 직면한 우리 모두를 위한 직업 연구가 이들의 메인 잡이다. 야구 해설가이자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김호상의 TVIEW] <잡스> 제대로 직업 탐구를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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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 파워레인져스 출동하라!!
[정훈이 만화]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 파워레인져스 출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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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본지의 설문에 응답한 일이 있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여자 캐릭터를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충녀>의 윤여정과 <밀양>의 전도연,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그리고 마지막으로 <깊은 밤 갑자기>의 김영애를 꼽았다. 어쩌면 식상해질 게 빤한 이 리스트에 <깊은 밤 갑자기>의 김영애를 거론한 것에 대해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조만간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답을 보내고 나서 하루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김영애 선생님의 부고가 들려왔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날 밤 <깊은 밤 갑자기>를 다시 꺼내보았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시무시했다.
한국의 6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의 공포영화들을 돌아보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하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그렇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기록적인 흥행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배우 김영애의 절정의 순간 <깊은 밤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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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호 특집은 전주국제영화제 프리뷰다. 올해도 <씨네21>은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데일리로 참여한다. 이화정, 장영엽, 김성훈, 김현수 기자가 전주의 곳곳을 누비며 다채로운 소식들을 전해줄 것이다. 김지훈 평론가도 ‘익스팬디드 시네마’에 관해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기로 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익스팬디드 시네마의 취지를 강화하기 위해 대상의 다양성, 실험의 과단성을 기준으로 양적, 질적인 확대를 기했다. 장편 초청작 수가 13편으로 늘었고, 개별 작품의 면면도 다채롭다. 사진과 회화, 필름의 교합을 꾸준히 시도해온 실험영화의 대가 패트릭 보카노프스키의 <태양의 꿈>, 전설적인 유럽의 실험영화작가 보리스 레만의 예술적 유서로 보이는 <장례식(죽어가는 예술에 대하여)>, ‘한여름밤의 꿈’을 영감의 모태로 하여 셰익스피어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을 다시 시도하는 마티아스 피네이로의 <허미아와 헬레나>,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대표하는 왕성한 생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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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도를 펴보면, 북쪽 국경은 전부 산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여기가 알프스다. 알프스는 유럽의 남부와 북부를 가르는 대륙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스위스가 알프스를 잘 이용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알프스를 주로 스위스와 연결하여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알프스는 여러 나라에 걸쳐 있다. 왼쪽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알프스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슬로베니아까지 연결돼 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의 북쪽 국경 전부가 알프스인 셈이다. 알프스의 유명 산들, 이를테면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쳐서, 마테호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걸쳐서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산들도 대체로 프랑스, 스위스와 연결하여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는 지중해의 바다와 연상되는 경우가 더 많아서일 것이다. 이탈리아와 설산은 선뜻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선 이미 동계올림픽이 두번 열렸다. 미국(4번), 프랑스(3번)에 이어, 스위스, 오스트리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돌로미티, 이탈리아의 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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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테크노 아티스트 덥파이어가 내한했을 때 일이다. 공연 전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직 테크노가 대중화되지 않았다. 테크노가 더 많이 알려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했다. 덥파이어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잘하는 이벤트를 찾아가서 배워오라”면서 독일 만하임에서 열리는 타임 워프라는 페스티벌을 추천했다. 친구들은 그곳에 가서야 ‘테크노의 매력이 뭔지 알겠다’고 수긍한다고 했다. 지난 4월 1일, 독일 만하임에 다녀왔다.
직접 보고 느낀 것은 한국에선 아직 안 되겠다는 헛헛함이었다. 일단 올해 타임 워프는 1만7천명가량 몰렸고 매진을 기록했다. 그런데 라인업에 대중적인 EDM 아티스트는 한명도 없었다. 전부 언더그라운드 지향 아티스트였다. 독일에선 이들만 데리고도 1만7천명 매진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새벽 내내 놀고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지쳤다며 아침에 발길을 돌리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공연의 절반은 관객이 만든다는 걸
[마감인간의 music] 관객이 만들 수 있는 공연 - 타임 워프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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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업실로 이사하면서 필요한 것이 끝없이 생겨났다. 커다란 창문 앞에 책상을 들여놓았고 책상 앞을 떠나지 않으려고 허리가 편하다는 의자를 배치했다. 집중력을 높일 조명도 잊지 않았다. 그래, 이제 작업만 시작하면 되는데. 커피머신 하나만 있으면 완벽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에 들어갔다.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공기가 맑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작업실 근처엔 4차선 도로가 있다. 그 때문인지 집 안엔 먼지가 자주 쌓이는데 덕분에 커다란 창문을 여는 데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창‘문’이 아닌 일광용 창으로 전락한 유리를 통해 밖을 보다보면 이 먼지들의 주범이 과연 저 쌩쌩 달리는 차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곤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그 실체적 회색빛 공기는 너무 묵직하게 다가와 혹시 바다 건너 대륙에서 생겨난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까지 든다. 때문에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연다는 것이 용기를 넘어 무모함과는 다른 무식에 가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믿음을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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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폰소 쿠아론 / 출연 샌드라 불럭, 조지 클루니 / 제작연도 2013년
어느 겨울날, 패딩을 입고 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니 그곳은 산소도 중력도 없는, 나의 숨소리만 들리는 우주 같았다. 종종 마음 둘 곳 없고 방향조차 잡을 수 없는 막막한 시간을 마주한다. 그 순간은 지독히 춥고 고독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히 홀로 존재하는 이 순간이 축복이 되기도 한다. 마치 <그래비티> 속 샌드라 불럭이 고난의 시간 속에서 우주 속을 떠다니다 방황하던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삶의 의미, 사랑 혹은 신일지도 모르는 자신을 붙들어줄 중력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고립무원의 고독을 마주하고 있는 이에게 이 영화는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리라 생각한다..
정유미 감독. 작가. 단편애니메이션 <나의 작은 인형상자> <먼지아이> <연애놀이> 등을 연출했고 이를 책으로도 엮어 출간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내 인생의 영화] 정유미의 <그래비티> 고독이자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