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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송일곤 / 출연 김혜나, 서주희, 임유진, 손병호 / 제작연도 2001년
일어나자마자 벌써 수십번 본 영화를 틀어놓는다. 영화가 끝나면 다른 영화를 틀어놓는다. 영화가 끝나면 또 다른 영화를 틀어놓는다. 나는 만화가다. 대부분 밖에 나가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한다. 이것저것을 하며 잠이 들 때까지 영화를 틀어놓는다. 어떤 것은 10년 전에 50번을 봤을 때까지 세어봤는데 지금은 얼마나 봤는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를 한 것만 같아서 펑펑 울어버린 영화,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한 것 같은 영화, 너무 사실적이라 두려웠던 영화. 그 감동들을 다 잃어버렸다.
그 영화가 하는 얘기가 좋아서 보기 시작하다가, 너무 많이 보게 되면 그 영화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하나의 이야기였던 영화가 30번을 넘어가는 순간 모두 해체되고 대신 순간순간으로 변한다. 28분25초,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며 옆을 흘기다가 살짝 감았다 뜨는 눈, 영화 속 정신지체 아이가 순간 연
[내 인생의 영화] 앙꼬의 <꽃섬> 순간순간이 완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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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 특별전을 맞아 지난 1월 네덜란드 필름 뮤지엄에서 산 자무시 굿즈(?)를 다시 펼쳐 보았다. “고유한 것은 없다. 당신의 영감과 공명하고 상상을 지피는 모든 것으로부터 훔쳐라. (중략) 오로지 당신의 영혼에 직접 말 걸어오는 것들만 골라 훔쳐라. 그러면 당신이 만들어낸 것(과 도둑질)은 진정해질 것이다. 진정성은 무한히 소중하고 완전히 오리지널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훔쳤다는 사실을 감추려 애쓸 것 없다. 오히려 기념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취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디로 가져가느냐다’라는 고다르의 말을 어떤 경우에도 기억하라.” 독창성 결핍에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을 격려하는 이 조언은, 20세기 미학의 주요 선언들로 대사를 대신하는 영화 <매니페스토>(2015)에서도 케이트 블란쳇을 통해 들을 수 있다.
05/01
어느 영화제에나 연일 도전적 예술영화에 응전하느라 지친 관객을 기분전환시켜주는 유쾌한 치어리더 같은 상영작이 있다. 이번 전주국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튼튼이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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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 전에 또 스승의 날을 맞았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스승은 있는가, 라는 흔한 화두에서부터 김영란법, 사교육 문제까지 다양한 레퍼토리가 언론과 SNS를 떠돌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트위터 무라카미 하루키 봇의 글귀 하나였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이다.”
tvN의 새 프로그램 <우리들의 인생학교>가 막 개교한 참이다. 이 지면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2008년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서 시작해서 서울에도 개교한 비정규 학교, ‘The School of Life’.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인생’에 관해 알려주는 것을 모토로 하는 학교라고 하겠다. 인생학교 서울의 교장인 손미나 전 아나운서가 이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앵커 역할을 맡는다. ‘비난에 대처하는 법’, ‘나쁜 습관을 바꾸는 법’, ‘당당하게 미움받는 법’, ‘자존감을 높이는 법’….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을 것
[김호상의 TVIEW] <우리들의 인생학교> 인생의 학교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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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겟 아웃> 우리집...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보수적이야.
[정훈이 만화] <겟 아웃> 우리집...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보수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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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 수 없었다. 댄 오배넌과 로널드 슈세트가 “사람을 숙주로 삼아 알을 낳는 외계인이 있는데 이게 자라서 가슴을 뚫고 나온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 아이디어가 무려 38년 동안 계속될 굉장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는 걸 말이다. 데이비드의 대사처럼, “네 시작은 미약하되 나중은 창대하리라(욥기 8장7절)”.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가장 나중에 나온 에일리언 영화인 동시에 에일리언 연대기에서 가장 앞부분에 위치한 영화다. 물론 시간순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앞서 있지만 여기에는 제노모프가 등장하지 않는다. 제노모프는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에 등장했던 첫 번째 에일리언이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바로 그 제노모프의 탄생을 다룬다. 이건 에일리언 연대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최초의 인간이 아담인 것처럼 이 영화는 최초의 제노모프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다루는 창세기인 것이다.
잠시 제노모프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보고 괴물을 연기한 배우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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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변 집 천장에 숨어 살던 쥐새끼, 꼭 보러 오세요.” <변호인>(2013) 개봉 당시 20자평을 저렇게 남겼다가 무수히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여기서 ‘송변’은 ‘송 변호사’의 줄임말로 영화에서 실제 과거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한 송강호가 노무현 대신 송우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쥐새끼’는 알다시피 4대강 대통령의 다른 말이다. 물론 일베임을 증거하는 원색적인 욕설의 항의 메일보다는 ‘통쾌하다’, ‘<씨네21>에 친노 기자분이 계셔서 반갑습니다’라는 요지의 응원의 이메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당황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친노’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 자신에게 궁금한 것도 하나 있다. 당시 내가 왜 저런 20자평을 남겼나, 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엄밀하게 말해 영화에 대한 평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나 또한 원래 저런 식의 20자평을 쓰던 사람도 아니어서, 당시 동료 기자들도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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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라라는 도시를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덕분이다. 그의 고향이 페라라다. 안토니오니 영화 특유의 안개가 자욱한 풍경은 바로 이곳 페라라에서 싹튼 것이다. 안토니오니는 어릴 때부터 페라라의 안개 속에서 자랐다. 온몸을 싸고 감도는 솜털 같은 안개부터 폐부를 찌르는 겨울의 차가운 안개까지, 포 강(江) 유역의 대표도시 페라라는 늘 안개와 함께 기억됐다. 사람을 이유 없는 멜랑콜리 속으로 몰아넣는 안개는 안토니오니 영화의 돋보이는 매력이다. 그리스의 명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도 안토니오니에게 빚졌을 것이다. 나에겐 그 안개의 매력에 이끌려 들어간 게 안토니오니의 영화였고, 페라라의 풍경이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고향
페라라는 베네치아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내가 살던 볼로냐에선 북동쪽으로 30분 거리다). 르네상스 시절에는 에스테(Este) 집안 덕분에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에스테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안개의 도시 페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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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천의 얼굴을 가진 악기다. 연주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이펙터를 통해 변형도 가능하고 브랜드마다 고유의 음색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록이 그토록 오래 사랑받은 이유는 기타가 가진 다양한 사운드 잠재력 덕분일 것이다.
지머의 <Lost Your Mind>는 기타의 여러 매력 가운데서도 유독 몽롱한 음색이 돋보이는 곡이다. 록에서 자주 쓰는 공격적인 이펙터를 배제하고 깔끔한 톤에 리버브(목욕탕 울림 현상)를 세게 걸어 뿌옇고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후렴에 등장하는 솔로 연주를 듣고 있으면 심호흡처럼 이완의 기분이 든다. 보컬 및 다른 악기들도 기타 연주와 닮아 느릿하고 몽환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기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는 음악, 오랜만이다.
지머는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음악을 잘 만들어 ‘슬로 하우스’, ‘지평선의 디스코’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한다. 페스티벌의 서브 스테이지에서, 드라이브 중에, 집에서
[마감인간의 music] 몽롱하고 아름다운 - 지머, <Lost Your Mind>(Feat. F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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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마도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고 일주일 남짓 후 <씨네21>에 실리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결과에 울고 웃느라 이 깜깜이 기간 동안 있었던 여론조사 루머에 마음 졸인 사실은 다 잊어버릴 테지만, 어쨌든 나와 내 주변은 무엇이 전략이고 무엇이 팩트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각종 뉴스와 ‘카더라’를 검색하며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2017년 대선을 그동안 겪었던 역대 대선 중 가장 건강한 선거로 기억할 것 같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사표 논란’이다. 군소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가 사표냐 소신 투표냐 ‘논란’이 된 선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전의 선거는 언제나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구도가 잡혔고 그 안에서 군소 후보는 안팎으로 단일화 요구를 받아야 했다. 그들에게 표를 줄 수 있는 환경 자체도 마련되지 못했던 과거가 그리 멀지 않았음은 심상정 후보가 선거 초반 ‘완주하겠느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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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 목소리 출연 나라 유리아, 도이 히로키 / 제작연도 2008년
뜬금포인데요. 저 사주 볼 줄 압니다. 생년월일시 주시면 공부하셔야 하는지, 장사해야 할 팔자인지 봐드릴 수 있어요. 음, 무슨 큰 뜻이 있어 배운 건 아니고요. 2012년이었습니다. 도시농업 웹툰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준재벌 도련님이 강남 한복판 500억원짜리 대지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웹툰이었는데요. 회색 도심에서 무한경쟁을 하며 지친 등장인물1이 우연히 괴짜 주인공(농부, 부동산 큰손)과 엮입니다. 흙이라곤 초딩 이래 만져본 적 없던 이가 농사를 짓게 되고, 영적 깨달음을 얻죠. “와, 자연은 정말 숭고하구나. 나는 지금껏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는지(초롱초롱)!”
사주도 그때 배웠습니다. 새싹이 움튼 컷 하나를 그리려 음양오행을 공부했거든요. 뭐라더라? 농사란 “천지인이 조화하는 숭고한 것”이랍니다. 하루 끙끙 앓다 겨우 한컷 그리고, 논문 무수히 읽고 나서야 사람 하나
[내 인생의 영화] 무적핑크의 <벼랑 위의 포뇨> 이래서 지브리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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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박동현 감독의 <나의 자전거에 대하여>는 세 단락으로 나뉜다. 광주항쟁의 기억을 되짚은 두 번째 장은 감독의 전작 <기이한 춤: 기무>(2010)처럼 풍경과 명상을 결합한다. ‘폐가’가 된 광주국군통합병원을 소요하며 카메라(촬영 박홍열)가 이곳저곳에 시선을 던지는 동안, 사운드트랙은 한 할머니가 회고하는 1980년 5월을 들려준다. 그녀는 혈연 없는 청년들을 도우러 병원으로 찾아가 손상된 시신을 수습하고 씻었다. “보초 서던 군인이 막았어. 병원에 아들이 있어 보러가야 한다고 매달렸더니 돌아서 집들을 타넘어 가라고 했어. 첫 번째 집 담을 넘다 주인에게 한소리 들었어. 아들이 저기 있다고 했더니 받침대를 놓아줬어. 두 번째 집에서는 대문을 열어주었고, 세 번째 집은….” 시냇물처럼 담담히 굽이치는 그녀의 진술을 듣는 관객에게 보이는 광경은 더이상 병원의 깨진 유리창과 갈라진 콘크리트가 아니다.
04/29
16 : 00 용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사동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