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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면 여기 좀 담아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던 2003년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나의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칸영화제 출장이었다.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영화주간지 <필름2.0> 선배였던 현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와 함께 칸을 누볐다. 불문학 전공자였던 그 덕분에 매일 레스토랑에서 와인에 다채로운 요리를 즐겼다면 거짓말이고, 언제 어떤 상황이건 ‘실브플레’ 한마디로 보름을 버티며 맥도널드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물론 기사도 열심히 썼다. 하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를 울면서 보고나온 뒤 프레스 센터에 가서 리뷰를 작성하고 있었다. 충격을 안겨준 어린 주인공 야기라 유야를 비롯해 배우들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고, 연출이나 작품 스타일 또한 고레에다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기에, 유럽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과 싸워가며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내 고통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2003년 칸국제영화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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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일직선으로 뻗은 아스팔트 도로가 한 페이지 전체를 가득 매우고 있다. 시커먼 도로는 구불구불 내리막과 오르막의 연속이고 고개 너머 안 보이는 곳에는 독을 품은 까치 독사 같은 악의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그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걷는 소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운동화만 바라보고 걷는다. 소년의 발걸음마다 작은 흙먼지가 풀썩 일어나고, 그의 발끝에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의 시체가 걸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질겁하고 죽은 고양이의 주위를 맴도는 파리가 몸에 닿을까 화들짝 피하겠지만 이 소년은 죽은 고양이를 주워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간다. 짐승의 시체는 사후경직이 일어나 빳빳하게 굳어 있고 파리들은 도망치지 않고 소년과 시체 주변을 사납게 날아다닌다.
내가 어렸을 때 간혹 있었던 동네의 개구쟁이들도 죽은 짐승을 주어와 아이들을 질겁하게 하며 즐거워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들이 옆구리에 죽은 짐승을 끼고 다녔던 경우는 없었다. 거의 모두 죽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더프 백더프 <내 친구 다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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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 레드’에 가입했다. 간단히 말해 월 7900원을 내고 광고없이 유튜브를 이용하는 서비스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이렇게 쾌적해지다니. 자연스레 유튜브 사용시간도 늘었다. 요즘 나의 우주는 유튜브다.
특히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를 즐겨찾기해놓고 틈날 때마다 보고 있다. 투팍(2Pac)의 <To Live & Die in L.A.>도 그중 하나다. 제목에서 이미 느껴지듯 이 노래에서 투팍은 LA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제목에 ‘Die’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뮤직비디오에 비장미 같은 것이 서려 있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투팍은 몇몇 여성과 LA 곳곳을 ‘드라이브’한다. 긴장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대신에 바다, 햇살, 어울림, 웃음, 장난 등이 이어지며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안긴다. 그리고 이 느낌이야말로 내가 이 뮤직비디오를 아끼는 이유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뮤직비디오가 현실의 LA를 온전히 대변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마감인간의 music] 천사의 도시에서 - 투팍, <To Live & Die in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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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이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나 보다.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인디포럼 2017 신작전 경쟁에서 단 한편의 장편극영화도 뽑히지 못했다. 응모작 편수가 적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올해 출품된 영화들은 1041편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우선 영화제 구조 탓이 크다. 다른 국제영화제들은 장편극영화에 특정 프로그램들이 있어 최소한의 정족수를 채워야 하지만, 인디포럼의 경우 다큐멘터리, 단편, 장편, 애니메이션 등 매체 형식의 차이 없이 심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올해처럼 장편극영화가 없는 비상사태가 빚어지곤 한다.
물론 모호한 균형보다 확실한 미학적 지향에 방점을 찍는 패기는 박수를 칠 만한 일이지만 이런 식의 절대평가는 상대적 빈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안타까운 건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은 관뒀지만 10여년 인디포럼 작가회의 의장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게 황폐화된 장편 독립영화를 어떻게 활성화할까 하는 문제였다.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한국 독립영화의 멈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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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창동 / 출연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 / 제작연도 1999년
나는 ‘박사모’였다. 웬 뜬금없는 커밍아웃(?)이냐고? 나도 사실 잊고 있었다. 나의 정체성을 혹은 나의 시작을. 나는 박사모, 영화 ‘<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이었다. 17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Chapter#1 포토25, 1999년 봄. 나는 당시 대전 시내 한복판에서 스티커 사진 가게를 1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휴일도 없이 오후 2시에 출근해 새벽 2시까지 코 묻은 현금을 긁어모았다. 그 재미에 빠져 살면서도, 영화 잡지 <키노>를 읽고 DVD방을 드나들었다. 유일한 낙이었다. 그때 <키노>에서 <박하사탕> 현장 취재기사를 봤던 것 같다. <초록물고기>의 팬이었던 나는 <박하사탕>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Chapter#2 부산국제영화제, 1999년 10월 14일. 오직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박하사
[내 인생의 영화] 조계영의 <박하사탕> 나는 박사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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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연애 감정이 성립하고 유지되는 데 필요한 가치 거래의 시장 역할을 한다. 운명론이나 희생, 치유와 회복을 덧입혀 사랑의 효능을 강조하는가 하면, 사랑의 불완전함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연애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성장 이벤트라고 호객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가치를 이해하고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높은 언어능력을 갖춘 상대가 있어야 하고, 관계는 상호적이며, 성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부류는 배제되어야 한다. 일종의 통제된 시장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말이 잘 통하는 남자,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 성 매수자가 동일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집단으로 공유하고, 그리 크게 놀라지 않게 된 동시대 여성들에게 앞서 말한 전제들은 더이상 설정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차라리 시간여행, 귀신, 도깨비쪽이 더 몰입하기 수월하다. SBS <수상한 파트너>의 흥미로운 점이라면, 주인공인 변호사 은봉희(남지현) 주변에 위의 세 가지 남성이 다
[유선주의 TVIEW] <수상한 파트너> 로코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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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회장님께서 조직의 인사를 단행하신답니다!!
[정훈이 만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회장님께서 조직의 인사를 단행하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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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더러 여기 앉으라는 얘기인가요?” 안톤 후쿠아의 <킹 아더>(2004)에서 아서 왕(클라이브 오언)과 원탁의 기사들을 찾아온 로마제국의 대사는 짐짓 놀라는 척한다. 그들 사마시아족에 비하면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대로마제국에서 온 자신이 그들과 함께 원탁에 빙 둘러앉는 게 영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아서 왕은 “신의 아들이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죠”라며 언제나 원탁에 앉아 얘기한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10년 전에 만들어진 제리 주커의 또 다른 ‘아서 왕’ 영화 <카멜롯의 전설>(1995)에서도 아서 왕(숀 코너리)은 탁월한 검술 실력을 지닌 랜슬롯(리처드 기어)을 원탁의 기사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를 섬기면서 우리는 자유를 얻죠. 이 원탁은 위아래가 없는 평등한 곳이자, 바로 카멜롯의 정신”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원탁을 끄집어낼 때, 김무성 전 대표가 ‘노 룩 패스’ 신공을 선보이는 모습을 보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원탁의 대통령, 원탁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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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중목욕탕을 처음 가본 것은 교토에서였다. 1995년 여름, 아내와 함께 도쿄를 거쳐 교토로 여행을 떠났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신칸센 대신 완행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 교토행 야간열차를 탔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날은 일본의 추석 ‘오봉’ 전날이었다. 열차 안은 귀향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자리조차 없었다. 하룻밤을 서서 보낸 후 아침에 도착한 교토에서, 절실했던 것은 관광보다는 자는 것이었다. 정오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는 간신히 일어났다. 어렵게 예약해두었던 가쓰라별궁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부터,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가 감탄했던, 다다미, 벽, 구조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된 직각디자인, 일본 건축의 형식미에 매혹되기에는, 내 교양이나 몸의 생리적 상황이 적합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목욕 시설이 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동네목욕탕 이용권을 나누어주었다. 일본의 끈적끈적한 8월 날씨 속에, 우리는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행복 목욕탕>으로 떠올린 일본 사회의 형식에 대한 집착과 그 변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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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출신으로 뉴욕에서 음악을 갈고닦은 코리 킹은 최근 마주한 재능 중에서도 특출하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곡가, 키보디스트이자 트롬본 연주자인 그는 11살 때 트롬본을 잡으며 ‘재즈’를 받아들인다. 휴스턴의 예술고등학교 시절 다수의 재즈 앙상블 연주자로 참여하며 이른 나이에 실력을 입증했다.
거점을 뉴욕으로 옮기고, 재즈 현대 음악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 트롬본 연주자로 활동한 이력 또한 다채롭다. 마크 론슨과 로린 힐, 와이클리프 장과 메리 제이 블라이즈 같은 음악가들은 물론, <지미 키멀 라이브>와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먼> 같은 심야 토크쇼 백밴드 연주자 경력도 쌓았다. 다양한 음악과 환경을 넘나들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처음 생각한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2016년 발매한 그의 데뷔 음반, 《Lashes》(2016)는 재즈 느낌 충만한 연주 음반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첫곡 <I
[마감인간의 music] 실험적이고 매력적인 - 코리 킹, 《Las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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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나를 보았다 말하고, 나는 그가 대학생일 때 처음 만났다고 말한다. 우리의 첫 기억은 엇갈리지만, 뜨겁게 만난 게 2004년 5월 29일이라는 점엔 다툼이 없다. 우리끼리 ‘오이구’라고 부르는 평택생명평화대행진의 핵심 구호는 전쟁 반대였다. 참석자들은 대추리에 드리운 전쟁기지의 그늘을 걷어치우라고 외쳤다. 아울러 삶이 전쟁터가 되어버린 노동자, 빈민, 여성, 장애, 생태의 아우성을 함께 듣자고 호소했다. 구호와 함성,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한국판 우드스톡, 1박2일의 반전축제였다.
어쩌다 우리 가족은 바느질로 면생리대를 만들던 ‘피자매연대’ 천막에 놀멍쉬멍 머물렀는데, 거기서 그를 만났다. 학생활동가였다. 우리집 꼬맹이와 잘 놀아준 언니였다. 그날 밤하늘을 가르던 한편의 감동적인 연설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문정현 신부는 지팡이를 움켜쥔 채 ‘평화가 무엇이냐’고 역설했다. 그 밤을 함께했던 음악가 조약골은 훗날 그 연설에 곡을 붙였다. 문 신부는 평화유랑단
[노순택의 사진의 털] 딸기는 어떻게 전복이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