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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덩치의 소년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들판에 서 있다. 소년은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 소년도 자신을 길러준 부모 곁을 떠나 독립을 할 참이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었던 순둥이 소년은 요사이 더욱 말수가 줄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소년은 남들과는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또래 소년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큰 키와 회색 곰 그리즈리만 한 덩치의 외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소년은 지구인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소년은 거의 신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 친구들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양부모가 현관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멀리 떨어진 이층 자기 방 침대에 누워서도 들을 수 있고,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벽을 투시해 보고 들을 수 있다. 그가 부모에게 보여준 하늘을 날고 트럭을 들어올리는 힘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기에 소년은 자신의 괴물 같은 힘을 감
[뒷골목 만화방] 제프 롭이 쓰고 팀 세일, 부얀 한센이 그린 <슈퍼맨: 포 올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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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지 한달 반 정도가 지났다. 덕분에 여기저기 많은 돈을 썼다. 아까워 죽겠지만 피할 수 없는 지출이니 잊으려고 한다. 새집에서의 새로운 취미는 소파에 누워 내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를 실컷 돌려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92인치 스크린을 샀고, 38cm 앞에서 100인치를 선명하게 쏘는 빔프로젝터를 장만했으며,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 유튜브 레드에 유료가입했다. 제일 즐겨 보는 뮤직비디오는 LL 쿨 J의 <Around the Way Girl>이다. LL 쿨 J는 예로부터 투 트랙 전략을 꾸준히 구사해온 래퍼다. 이보다 강인할 수 없는 랩짱과 이보다 달콤할 수 없는 사랑쟁이. 굳이 말하자면 이 노래는 후자다. 제목인 ‘Around the Way Girl’을 해석하면 이쯤 된다. ‘어떤 도시에서 모든 남성이 친해지고 싶어 하고 같이 놀고 싶어하는 동네 여성. 그녀는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이고 똑똑하고 센스 있으며,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드레스를 입거나 하이힐을 신지 않는
[마감인간의 music] LL 쿨 J <Around the Way Girl>, 여유롭고 긍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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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의 여름밤, 서울시청 앞 광장 야외무대에 여섯명이 올라갔다. 퀴어문화축제의 홍보대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을 모델, 사진작가, 배우, 유튜버,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 다음, 자신의 커밍아웃 스토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상근은 10년 전에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하며 오픈리 게이로 살기 시작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사진작가이자 모델인 나비는 번번이 검열당해버린 자신의 수많은 커밍아웃을 애도하며 다시 그 자리에서 자신은 레즈비언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배우 권기하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는 몇편의 퀴어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너 혹시 게이니?”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다고 했다. 호의적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너 그냥 인권 개념이 좀 있을 뿐 게이는 아니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악의적인 사람은 멸시와 호기심으로 그런 질문을 한다 했다. 그다음 이어지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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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틴 스코시즈 / 출연 로버트 드니로, 시빌 셰퍼드, 조디 포스터 / 제작연도 1976년
1995년, 도서관에서 D&K 출판사의 <크로니클 오브 더 시네마>라는 책을 빌린 적 있다. 영화역사상 중요한 책들이 연도별로 정리된 책이었는데, 1976년 섹션의 타이틀 페이지 전면을 장식한 <택시 드라이버> 포스터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길을 잃은 듯한 표정을 하고 어색한 자세로 서 있던 로버트 드니로는, 감성이 풍부한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던 내게 <MTV>나 잡지에서 자주 접했던 그런지 히어로들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그즈음 학교에서 보여줬던 <디어 헌터>에서의 그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택시 드라이버>를 꼭 찾아 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당시 주변에 이 영화의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결국 1996년 샌프란시스코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버진 메가스토어에서 꿈에 그리던 &
최원서의 <택시 드라이버> 보고 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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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말이지”, “그 아가씨가”, “그 아줌마가”. 올해 방영한 OCN 드라마 <보이스>와 <터널>, KBS 드라마 <추리의 여왕> 속 남자주인공을 모아놓고 각자 여자주인공에 관해 말해보라 하면 아마 이렇게 운을 뗄 것이다. 이들이 끈질기게 고집했던 호칭은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상관, 경찰 외부 자문을 맡은 전문가인 범죄심리학 교수, 또 비상한 추리력으로 경찰이 애먹던 사건을 여러 번 해결한 이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애초 상대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용도로 고른 호칭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 셋으로도 버거운 참에 여성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신의 특별한 기질을 주장하는 캐릭터가 또 나타났다. tvN <하백의 신부 2017>의 하백(남주혁)이다.
매 회 “난 물의 신, 수국의 차기 왕, 신계의 차기 황제 하백”이라고 제 신분을 밝히는 하백은 왕위 계승에 필요한 신물을 찾으러 인간계에 내려왔다. 어쩌다 신력을 잃고 한강에서 노숙
[TVIEW] <하백의 신부 2017> 깎아내리기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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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그 히어로는 삽시간에 놈들을 해치웠어.
[정훈이 만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그 히어로는 삽시간에 놈들을 해치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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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조지와 루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이제 막 그들의 첫 번째 장편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몇평 되지 않는 작은 편집실에서 둘은 길길이 날뛰었다. 조지는 TV 프로그램 몇개를 연출한 게 이력의 전부였다. 장편 연출은 이게 처음이었다. 루소는 조지와 함께 각본을 썼다. 작가로서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두 명의 젊은이는 이 풍자적인 호러영화가 큰돈을 벌어다 줄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확실히 논쟁적일 것이라는 대화를 불과 며칠 전에 나눈 바 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아니 오히려 최종 편집본이 나온 지금에 와서 그런 예감은 더욱 또렷해졌다.
뉴욕에 가자. 지금 당장 뉴욕에 가서 우리 영화를 틀고 싶다는 아무 극장에나 이 필름을 던져주자. 조지의 생각이었다. 둘은 바로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제 막 완성된 영화는 알루미늄 케이스에 넣어져 트렁크에 쑤셔 박혔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그들은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신이 난다! 고물 자동차의 창문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위대한 감독, 조지 로메로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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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을 나름 재밌게 보았다. 당시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과 얽힌 개인적인 가족사(할머니의 헤어진 언니를 찾았다)와 맞물려 영화를 보며 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몇년간 부모님과 함께 본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과거 파독 광부로 일하며 근대화의 중심이었다가 어느덧 사회적 약자로 떠밀려버린 노인 덕수(황정민)를 불량한 한국 학생들에게 해코지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치환한 것 역시, 인위적인 설정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의식’을 갖추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딱히 까칠하게 논평하고 싶지 않다. <공조>에서 진태(유해진)가 북한에서 온 철령(현빈)에게 “민주적으로, 아니 공산적으로 얘기합시다”라고 바꿔 말하며 여전히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로 여기는 수준보다는 낫지 아니한가.
하지만 <국제시장>을 보며 마음에 내내 걸렸던 것은, 순박하고 순진했던 덕수가 왜 노인이 되면서 당장 가스통을 등에 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
[주성철 편집장] 각성하는 남자들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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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진 중 제일 많이 알려진 이미지는 아마도 미국 LA의 ‘슈탈 주택’(Stahl House) 사진일 것이다. 사진에는 끝없이 펼쳐진 LA 야경을 배경으로, 유리와 철골로 지어진 ‘현대적인’ 건물이 절벽 끝에 매달려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투명한 유리로 계획된 주택 안에서 멋진 드레스 차림의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사진 속 두 여인이 도시가 바라보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진작가 줄리어스 슐만이 찍은 이 사진은 슈탈 주택을 건축에서 ‘스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959년에 완공된 슈탈 주택은, 벅 슈탈과 그의 아내 카를로타 슈탈이 1954년 눈부신 전망을 갖고 있지만 집을 짓기에는 경사가 급한 LA 할리우드 언덕의 땅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벅과 카를로타는 주말마다 공사 현장에 버려진 콘크리트 블록을 캐딜락 자동차 트렁크에 담아 현장으로 운반했다. 2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꿈꾸며 직접 대지를 조성했다.
슈탈
[영화와 건축] 슈탈 주택과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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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 & PLASTIC)에 갔다. 마른장마일 거라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꾸준한 비를 지켜보자니, 차분한 연주곡을 좀 찾고 싶었다. 블루 노트 편집 음반과 음악 축제 단골 헤드라이너들 사이를 서성이다 마지막으로 눈길이 간 곳은 오래된 소니 워크맨과 함께 놓인 카세트테이프 코너였다. LP를 넘어선 카세트테이프는 이제 ‘유행의 첨단’이 되었다. 숱하게 버린 그 테이프들이, 2017년에 말이다.
오래된 힙합 명반에 홀로그램 표지로 새 단장한 수입 카세트테이프를 보니,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졌던 90년대 후반 음악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는 기타 줄 퉁기는 소리가 생생한 언플러그드 음반이다. 로린 힐. 흑인 디바와 슈퍼스타들이 주류가 된 지금, 누구보다 앞서 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을 낸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음악가. 후지스로 시작한 정점을 너무 빨리 찍고 내려왔다는, 어찌 보면 씁쓸한 평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전곡을 어쿠스틱 기타로
[마감인간의 music] 로린 힐 《MTV Unplugged No. 2.0》(2002),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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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서 미자가 슈퍼돼지 옥자를 구하러 당장 서울로 간다고 하자 할아버지 희봉은 달력 속 옥자 사진 위에 빨간 크레용으로 선을 그은 후 말한다. “목살, 등심, 삼겹살, 사태. 알겄어? 이번에 가면 이렇게 되는 거여. 이게 이놈이 타고난 팔자여. 팔자!” 옥자는 이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바로 등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간다. 산에서 도시로, 강원도에서 서울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궁극적으로는 아이에서 소녀로 떠나는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옥자>에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하나의 주요한 테마는 ‘팔자에서 벗어나기’다. 슈퍼돼지 옥자는 값싼 햄과 소시지로 만들어지기 위해 ‘개발’되었고, 그것이 돼지의 팔자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에서는 보지 못하는 고기의 팔자를 돼지에게서는 본다. 미자의 힘은 이 팔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 미자는 다른 모두가 보는 돼지의 그 팔자를 인정하지 않고, 옥자를 가족의 하
팔자에서 벗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