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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편의 장편을 만들고, 35편의 단편을 만들었으며, 48편의 각본을 제공한 자. 영화감독치고는 비교적 덜 이기적이었던 자, 여기 잠들다.” 과거 2003년 영화잡지 <키노>에서 두꺼운 2권짜리 <영화감독사전>을 만들면서 여러 한국 감독들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진행한 적 있다. 그중 ‘당신의 묘비명을 직접 쓴다면?’이라는 다소 민망한 질문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답이었다. 약속한 편수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 ‘파킹찬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단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시나리오작가로서도 왕성하게 써나가던 시절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 연출부로서, 시나리오작가로서, 실패한 데뷔작을 내놓은 감독으로서 얼마나 혹독하게 충무로 생활을 했으면, 감독의 여러 덕목, 아니 자신의 다짐으로 무엇보다 ‘덜 이기적’이고 싶어 했을지가 가장 흥미로웠다.
같은 <영화감독사전>에서 또 다른 앙케트 질문 중 ‘
[주성철 편집장] 박찬욱관 개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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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린이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 등이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거라던 경고를 철저히 무시한 지금 20세기 말의 옛날 어린이로서, 이 예언은 거의 적중해 지금의 나 자신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비행 청소년이 되는 건 어떻게 넘겼는데, 결과적으로 비틀린 성인이 되었다. 영상매체와 영화 예술과 온갖 장르 문화에 매혹당한 나머지 애호가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려 작가가 되겠다는 참으로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탓에 매일 낮밤을 책상 앞에서 진도가 지독하게 안 나가는 글쓰기의 어려움과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데드라인 직전에야 뜬금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내 삶의 이 모든 총체적 재앙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근원지가 어디인가? 미래의 나를 날마다 죽이게 될 그날의 계획은 언제 추진되었나?
중학생 때부터 금요일만 되면 하굣길에 비디오 가게에 들르는 것이 정해진 일과였다. 고등학교
조지 A. 로메로 <시체들의 새벽>과 톰 새비니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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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다. 나는 출간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이유는 글 쓸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과 함께 <기사단장 죽이기>를 치면 그 글을 볼 수 있는데 꽤 읽을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설하고,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클래식, 팝, 록, 재즈 등 수 많은 음악이 등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기 음악 지식을 자랑하려고 이 소설을 썼나 싶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음악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The River》다. 통상 이 음반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3대 걸작(나머지 둘은 《Born to Run》(1975)과 《Born in the U.S.A.》(1984)) 중 하나로 꼽힌다. CD로는 2장, LP로는 4장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소설에서 《The River》는 주인공인 ‘나’가 굳이 LP로 구입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가 LP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A면 마지막 곡 <Independence
[마감인간의 music] 브루스 스프링스틴 《The River》(1980), 하루키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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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트위터를 개설했다. 숫제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 탓이다. MB 정부 들어 문화계가 만신창이가 되어가던 중 영화계에도 그 쓰나미가 당도했다. 특히 독립영화계가 입은 내상은 깊고 선연해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다. 그때 만든 게 트위터였다. 망가진 영진위와 조희문 전 위원장이 독립영화계를 어떻게 폐허로 만들고 있는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
그러던 어느 날, <씨네21>에서 전화가 왔다. 지면에도 글을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내 우울한 글이 ‘디스토피아로부터’ 코너에 어울릴 것 같다나. 청탁에 응했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쥐꼬리만 한 원고료라도 챙기면 생활에 보탬이 될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재주나마 써먹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테고, 두 번째는 MB 정부가 망치고 있는 삶의 풍경을 하나라도 더 독자들과 공유해야겠다 싶은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절박함을 부여잡고 쓰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됐다. 그사이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의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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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타의 세계에선 명품으로 통하는 고급 브랜드 기타를 OEM으로 만들던 노동자, 기타 만드는 일로 잔뼈가 굵은 그이가 어느 날 기타의 선율에 홀딱 빠져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온 건 해고 통지였다.
음악을 사랑하노라 떠들던 박영호 사장은 창문을 만들면 노동자들이 딴생각을 한다며 톱밥과 페인트 냄새 가득한 공장에 창문을 내지 않았고, 돈을 아끼려 청소업체를 부르는 대신 노동자들을 굴뚝으로 올려 보내곤 했다. 고로 김경봉은 기타 만들던 손으로 굴뚝 청소까지 하는 ‘어쩌다 보니 만능 노동자’였던 것이다. 일회용 분진 마스크 하나로 일주일을 버텼고, 제때 지급되지 않는 목장갑을 빨아 쓰는 건 예사였다.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한 콜트콜텍이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굴지의 기업이 되면서, 박영호에겐 1천억원이 넘는 돈이 굴러왔다. 반면 노동자에
[노순택의 사진의 털] 기타리스트 김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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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배리 레빈슨 / 출연 더스틴 호프먼, 톰 크루즈, 발레리아 골리노 / 제작연도 1988년
<레인맨>을 통해 마음속 빈자리를 메우고 채웠던 시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지난해 그룹 ‘아스트로’로 데뷔했다. 그 4년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중요하고, 아쉽고, 힘든 시간이었다. 보컬, 댄스 수업 땐 항상 혼이 나고 주눅이 들었다. 자책이 일상이었다. 숙소 생활을 한다는 소식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식단 관리와 다이어트도 혹독했다. 간신히 버텨가는 날들이었다. <레인맨>은 힘들었던 그때의 나에게 기운을 돋워준 영화다.
힘들고 외로울 땐 십중팔구 가족 생각이 먼저 났다. 내 꿈엔 유독 동생이 자주 나왔다. 우리는 우애가 두터운 형제다. 어릴 적 자전거 뒷자리에 동생을 태우고 동네 곳곳을 누비는 동안 옆 동네 경비 아저씨들에게까지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동
차은우의 <레인맨> 동생이 보고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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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40년 프랑스. 40만의 연합군이 고립된 덩케르크 해안은 수심이 얕아 구축함이 접근 할 수 없었다. 작은 배들이 철수 군인들을 깊은 물의 군함으로 실어 나르거나, 수평선을 향해 길게 벋은 잔교 위에 병사들이 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희박한 귀향의 확률이라도 얻으려면 적군 폭격기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선 군인들로 잔교는 가려지고 마치 인간들로 이뤄진 오작교를 보는 듯하다. <군함도>에서도 극중 생매장 위기에 당면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탈출을 위해 석탄 운반로를 줄줄이 타고 오른다. 둘 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형상화한, 어깨가 빠지도록 뻗은 손같은 구조물이다.
07/18
<덩케르크>를 좋아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론조사라도 반영했나 싶을 정도로, 그동안 내 눈에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의 약점으로 비친 요소를 죄다 걷어내고 놀란이 잘하는 것에 집중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산전수전 공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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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프로그램의 게시판에 들어가봤다. ‘불편한 프로그램’, ‘서민 체험 하는 건가요?’, ‘연예인 세습’, ‘금수저든 아니든 재미있으면 그래 괜찮아. 하지만’. 글들의 제목은 대략 이렇다. 충분히 이런 부분을 예상할 만한 섭외고 방송 구성이다. 첫회 방송 후 언론에서도 예상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밀어붙인 이유는 무얼까.
화두는 tvN의 프로그램 <둥지탈출>이다. 배우 박상원, 김혜선, 최민수, 이종원, 방송인 박미선, 국회의원 기동민의 자녀들이 둥지에서 벗어나 탈출 선언을 한다. 연예인과 국회의원의 자녀도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요지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방송된다. 11일간 동고동락하게 될 청년 독립단.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이고, 이들은 어떤 고난을 맞을까. 여기까지가 아직 에피소드가 많이 방송되지 않은 프로그램의 시작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앞으로 일이 궁금하지 않다. 주인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이
[TVIEW] <둥지탈출> 안 궁금한, 남의 자식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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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슈퍼배드 3> 이 악랄한 XX들!!
[정훈이 만화] <슈퍼배드 3> 이 악랄한 XX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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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병원의 침상 위에 누워 있다. 이 소년의 뇌는 보통 사람의 것에 비해 지나치게 발달해 있고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고통을 느낀다는 의사의 말이 들려온다. 수술을 통해 제거하는 게 불가피한데 이 경우 후유증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소년의 지난 일들과 수술과정이 엉킨 일련의 몽타주가 흘러간다. 의사와의 문답을 통해 시청자는 소년이 수술로 인해 결국 감정을 잃었으며 향후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년의 이름은 황시목으로 소개된다. 컷은 성년이 된 황시목이 자동차 안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무시무시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대목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그렇게 시작했다. 빤하고 새로울 게 없는 도입부였다. 그게 범인의 사연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개의 장르 서사에서 이와 같은 배경은 악당에게 적용된다. 범죄자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흔히 사용된다. 혹은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날카로운 장르 드라마, <비밀의 숲>과의 이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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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과 <검사외전>을 보며 소재의 선택과 서사의 개연성, 그리고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면에서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한국 상업영화의 마지노선이 위태롭다고 느낀 적이 있다. 고리타분하다 지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비롯해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영화적 얼개에 있어 담보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에 대한 기준선이라고나 할까. 지난 몇년간 그 기준선이 무너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며 본능적으로 웃고 있지만 지능적으로 소화할 수 없는 찝찝함이 종종 동반되었다. 탁월한 한국영화를 만나고픈 욕망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영화들을 어떻게든 피해가고 싶다는 수세적인 바람만 더해갔다.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에서 만들어지는 한국 상업영화의 하한선이 보다 더 내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재미를 위해 손쉽게 희생되는 영화적 윤리에 관한 얘기다. 최근에는 <청년경찰>을 보며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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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대기업 상업영화의 하한선은 어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