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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처드 커티스 / 출연 휴 그랜트, 키라 나이틀리, 콜린 퍼스, 에마 톰슨 / 제작연도 2003년
“주소를 보내주세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2003년 12월, 싸이월드에서 일촌을 맺고 있던 이들에게 쪽지를 보낸 적이 있다. 단 두줄의 메시지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곧장 주소를 적어 답을 준 사람도 있었지만, 무슨 선물인지, 왜 주는 건지 의심에 차서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일촌이라고 해도 친분의 깊이는 조금씩 달랐으니 그럴 법도 했다. 개의치 않고 상대를 안심시킨(?) 뒤 주소를 받았다. 그리고 선물 준비에 착수했다. 그건 다름 아닌 ‘크리스마스카드 쓰기’. 그해 겨울에만 40여장의 우표를 썼다.
이런 일화에 근거하면 나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인간이어야 하겠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살면서 친구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정말 친구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이미 충분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몇년 간격으로 적성검사를 몇번씩 받을 때마다 결
최다은의 <러브 액츄얼리> 고백은 멋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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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집 주변을 거의 벗어나는 일 없이 평생을 지낸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관한 영화 <조용한 열정>에는 시간의 흐름을 축약하는 ‘간주’가 들어 있다. 디킨슨가의 부모와 삼남매가 한 사람씩 사진관에서 초상을 찍는 시퀀스다. 정물처럼 앉아 있는 인물에게 카메라가 느리게 미끄러져 다가가는 동안, 젊은 배우의 얼굴은 같은 인물의 중년을 연기한 배우의 얼굴로 모핑(morphing)된다. 인물은 완전히 정지해 있는 가운데 우주의 운행이 그를 스치고 간다. 숏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의 얼굴은 한줌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지만, 멜랑콜리가 땅거미처럼 스크린에 드리운다. 과연, 바깥세상을 접촉하지 않았던 시인에게 가족의 변화는 곧장 세계의 변화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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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상 감독의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13살에 일찌감치 운명의 상대를 발견한 두 여자 칠월(마사순)과 안생(주동우)의 이야기다. 교련 수업 중 안생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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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1인 미디어라 불리는 유튜버와 BJ들의 타기팅이 정확한 콘텐츠들이 실질적인 조회 수를 만들어내면서 화제를 낳고 있다. 하지만 자본과 인프라를 갖춘 방송사들이 특화된 부분은 역시 존재한다. 브로드캐스팅, 즉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잠입 추리 버라이어티’라는 다소 생소한 설명을 앞에 내건 tvN의 <김무명을 찾아라>가 정규편성되었다. 아쿠아리움에 모인 정형돈, 딘딘, 정진운, 이상민, 네명의 MC는 아쿠아리스트로 변장한, 또는 진짜 아쿠아리스트인 9명의 용의자를 만난다. 이들 속에 김무명이 있다. ‘회 뜰 줄 알아요?’ ‘물범이 하루에 몇 킬로그램 먹어요?’ 등의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추리 회의를 거쳐 첫 번째 김무명을 지명한다. 그는 7년차 배우인 김민철. 경력을 쌓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지만 배우를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에선 철저한 김무명씨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거나 관심몰이보다는 오히려
[TVIEW] <김무명을 찾아라> 우리 안의 김무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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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범인은 우리 중에 한명입니다.
[정훈이 만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범인은 우리 중에 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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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여러분의 사랑 속에서 쏙쏙 자라나는 여러분의 귀염둥이, 늘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종세, 이종세 인사드립니다.”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8)에서 스스로 천재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삼류 카바레 개그맨 이종세(안성기)는 언제나 그렇게 인사를 시작한다. 이후 영화배우를 꿈꾸는 변두리 이발소 주인 문도석(배창호)과 가수를 꿈꾸는 오선영(황신혜)과 만난 그는 함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우연히 탈영병에게서 진짜 총을 얻은 종세 일행은 제작비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털고, 도피행각 끝에 자신들을 알아보는 자동차 수리공마저 총으로 쏘게 된다. 1974년 M1 카빈 소총을 탈취하여 여러 건의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이종대, 문도석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개그맨>에서 안성기는 이종대와 이명세가 결합한 이종세를 연기했다. 혹시나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스포일러를 쓸 수 없지만, 데뷔작에서부터 그에게 영화란 말
[주성철 편집장] 이명세, 영화 없이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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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이 큰 시험을 치르고 나니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이 온다. 한국의 모 영화학교는 학생 선발 절차 중 최종 면접이 지원자의 멘털을 깨부수는 걸로 유명했다. 10년 전 나도 면접을 본 후 자취방에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일주일 내내 천장만 바라봤으니까. 이 영화학교의 놀라운 점은 합격했을 때는 자신이 영화천재라 믿으며 위풍당당하게 입학하지만, 졸업하는 시점에는 삶과 예술 양쪽에서 모두 절망의 끝에 도달해 영화를 때려치울까 진심으로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 아무튼, 면접 중 심사위원들에게 들었던 온갖 말들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한데, 그중 하나가 모 교수님이 내 자기소개서를 읽고서 지적했던 “전형적인 <키노> 세대”라는 표현이었다.
영화는 상상과 다르다
<키노>, 한 시대를 앞서 밝혔던 영화지의 거룩한 이름. <씨네21> 지면에 이 이름을 적자니 묘한 배덕감이 든다. 중2병 걸린 영화애호가 소년에게 키노는 각별한 의미이긴 했지만 거기에 세대라는 개념
최양일의 <10층의 모기>와 <막스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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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가히 작두 탔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밴드의 멤버로 히트곡을 펑펑 쏘아올리더니 어느새 프로듀서로 스윽 변신해 다른 뮤지션들의 곡 크레디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은 바로 잭 안토노프. 밴드 펀의 기타리스트인 그는 이미 <Carry On> <We Are Young> 등의 곡들을 통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바 있다. 어디 이뿐인가. <We Are Young>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도 수상했으니, 밴드 일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복은 다 받았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잭 안토노프는 프로듀서로서도 엄청나게 잘나간다. 그의 섬세한 프로듀싱은 특히 여성 뮤지션들과의 연대에서 더 큰 빛을 발해왔는데, 우선 그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1989》(2014)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신곡 <Look What You Made Do>에 프로듀서로
[마감인간의 music] 잭 안토노프, 2017 최고의 팝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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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슬럼프’는 스포츠나 예술 분야 종사자의 기량이 일시적으로 정체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최근 이 슬럼프가 게으름이나 무기력을 뜻하는 일반 용어로 자리잡아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경우에 “요새 슬럼프야”, “인생이 슬럼프야”라는 자책 어린 표현을 한다.
슬럼프는 그저 할 일을 안 하는 불성실한 상태가 아니다. 옛날 옛적, 누구나 일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성실함이란 “주어진 일에 전념하는 태도”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여기서 일이란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수행하는 역할이었다. 공동체에 기여하지 않는 자는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역사는 흘렀고 사람들은 대꾸하기 시작했다. “일하고 싶어도 일을 못하는데 먹지도 말라니, 너무 가혹하군요.” 그러자 새로운 말이 나왔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 일이 없다면 적어도 일을 구하기 위해 성실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며, 그러지 않는 자는 여전히 공동체에 해로운 사람이라는
달리는 당신, 슬럼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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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미세먼지는 어느새 서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중국 베이징, 인도 델리와 더불어 서울은 세계에서 공기 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로 꼽힌다. 지난 반세기, 서울에서 가장 사악한 살인마는 평양이었다. 그 살인마는 눈에 가장 잘 띄는 동시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 신출귀몰한 괴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평양의 이념이 쥐도 새도 모르게 서울의 뇌로 스며들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배웠다. 서울은 언제나 평양을 고발하고, 평양과 경쟁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서울은 허파에서 혈관을 타고 뇌까지 침투하는 1급 발암물질, 초미세먼지를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일은 큰돈이 드는 일이므로 서울에선 어려운 일이다. 돈을 만들고 쌓는 사업은 그 반대이므로 서울에서 미세먼지를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산을 좋아하던 나는 요즘 산을 잘 오르지 않는다. 더 많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건, 더 많은
[노순택의 사진의 털] 평양 핵탄두 서울 돈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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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지아장커 / 출연 한산밍, 자오타오 / 제작연도 2006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시작으로 해 정성일 선생님의 <키노>를 보며 고교 시절을 보냈고 트뤼포의 영화를 사랑하는 3단계를 몸소 실천하며 20대를 보냈다. 지금은 스틸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지만 사진을 전공한 적도 배운 적도 없다. 20대 내내 10개의 단편을 만들어 여러 영화제에 출품해봤지만 기별이 없는 걸 보고 내가 영화를 만드는 데 재능이 없음을 느꼈다.
그 후에 류승완 감독님 작품의 현장편집으로 시작해서 충무로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게 됐다. 그것도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었다. 아무리 애써봐도 내가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늘 내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현실과 실랑이를 하다 연출부를 관뒀다. 당시에는 내가 뭘 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고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진로는 사진을 찍는 일로 흐르기 시
김설우의 <스틸 라이프> 그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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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지쳐서 이혼한 동갑내기 부부가 시간을 거슬러 1999년으로 돌아갔다. 결혼을 다루는 많은 드라마들이 그렇듯, KBS <고백부부> 역시 서로 헐뜯던 두 사람이 상대방을 이해할 기회를 얻고 결국 다시 이어지는 결말은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하다. 현재를 긍정하기 위해 마련된 제한된 판타지가 향하는 곳은 결국 로맨스적 운명론인가 싶지만, <고백부부>가 공감의 토대로 삼는 운명은 좀더 보편적이고 거스를 수 없는 종류다. 누구나 겪고 언젠간 겪으리라 짐작하는 엄마의 죽음이 그렇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엄마(김미경)를 꿈인가 싶게 다시 만난 진주(장나라)가 종일 엄마를 따라다니는 장면이 있다. 마치 자기 아기의 손짓 발짓에 눈을 떼지 못하듯 “아이고 엄마”, “아휴 엄마”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자신도 엄마가 된 38살 딸이 엄마를 애틋해하는 모습이 딱 저럴 것 같았다. 20살 청춘으로 돌아가서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걱정하는 진주는 불행하다는 감정만 남았던
[TVIEW] <고백부부> 안 울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