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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의 장래희망은 체육 선생님이다. 향은 엄마처럼 간호사가, 광숙은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공부하기 바쁜 고3이지만 화장을 할때만큼은 왠지 들뜬 얼굴이다. “화장은 기본이죠. 자신감이 생겨요.” 그런데, 의외의 말이 이어졌다. “좀더 대한민국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신감.” KBS1 <우리가 태어난 곳>은 북한이탈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죽을 고비를 넘어, 가족과 헤어져 한국에 왔지만 ‘따뜻한 남쪽나라’는 꽤 많이 낯설고 외롭고 추운 곳이다. ‘북한 핵실험’ 기사가 뜰 때마다 악플에 마음 다치고, 아직 국경을 넘어오지 못한 가족 때문에 가슴 조이는 삶의 무게를 ‘여기서’ 태어난 나는 알지 못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존재를 ‘늘어나는 숫자’로 인식하고, 비참한 생활에서 탈출한 그들이 여기에 무난히 정착하길 막연히 바랐을 뿐 그들 각자의 삶에 무관심했던 나는 효정의 말에 부끄러워졌다. “저희라고 왜 거기가 안 그립겠어요. 거기서 굶고 힘들게 살
[TVIEW] <우리가 태어난 곳> 우리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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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곤지암> 형님,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요?
[정훈이 만화] <곤지암> 형님,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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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라고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가 말했다. 그는 별것 아닌 일로 문제 삼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한 얘기였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우리는 최근 끊임없이 문제 삼는 사람들이 거둔 성과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최근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오상진과 함께 <기억의 밤>과 <사라진 밤> 두편의 한국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그냥 바로 처단하면 되는데, 왜 저렇게 기다려주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농담 섞인 얘기에 무릎을 탁 쳤다.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사실이 있음에도 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가해자가 기어이 스스로 알아차리게끔 오히려 피해자가 갖은 노력으로 기다려주는 걸 보면서 “한국영화가 가해자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 아니냐”고 무심히 건넨 그 얘기가 어쩌면 백번 옳은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두 영화에서는 긴장감을 자아내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영화적
[주성철 편집장] 창간 23주년 기념호, 글자가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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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룸’이란 인터넷 방송이 있다. 2010년 런던에서 시작된 디제잉 방송으로, 유튜브 열풍을 타고 이젠 디제이 컬처를 넘어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신뢰받는 트렌드세터로 성장했다. 신인들은 여기서 음악을 튼 걸 자랑으로 여기고, 잘만 하면 커리어 전환점도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지난 3월 16일 한국인 디제이 페기 구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지난해부터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그녀와 다양한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영상을 업로드하며 보일러 룸은 이런 소개를 덧붙였다. “최근 일렉트로닉 신에서 페기 구만큼 급상승한 아티스트를 찾기 힘들다.”
클럽 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잡지 <믹스맥>도 페기 구의 최근 상승세를 올해 3월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한국인이 <믹스맥> 커버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믹스맥>은 2017년 ‘올해의 디제이’ 연말 결산에서도 페기 구를 5위로 꼽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깐깐한 웹진 <피치포크>는 페
[마감인간의 music] 페기 구<It Makes You Forget(Itgehane)>, 기억해야 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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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도망치듯 도시를 떠난 20대 청년의 귀촌 생활 사계절을 그린다. 주인공 혜원은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임용고시생으로, 시험에 낙방하자 홀로 합격한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고향집에 내려온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로지 맛있는 밥을 지어먹고, 집을 잘 돌보고,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무탈하게 지내는 일에 전념한다. 그렇게 소박하고 정직한 하루하루가 모여 한해가 되었을 때, 혜원은 마침내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아갈 진짜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혜원의 사계를 따라가는 내내, 본가에서 막 독립했던 첫해가 떠올랐다. 가끔 먹고 죽지 않을 만큼 자면서 일하고 또 일하던 지옥의 레이스에서 잠시 내려왔던 해였다. 비록 매달 새어나가는 생활비에 놀라 더더욱 허리띠를 졸라매는 월세난민 신세였지만, 오직 내 힘으로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나는 밥을 짓고, 집 안을 정돈하고,
나만의 작은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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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콜린 세로 / 출연 콜린 세로, 뱅상 랭동 / 제작연도 1996년
이 화창한 봄날 장례식이라니. 고인은 생전 따뜻한 계절에 숨을 거두고 싶어 했으니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좋겠다, 고인은. 원하는 날에 평안하게 떠났으니. 장례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빈소는 일찌감치 조문객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사람이 다가와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USB요. 이 사람이. 그걸 모르나 누가. 고인의 지인이 건넨 메모리를 장례식장 사무실 PC에 연결했다. 옆에는 잠시 자리를 뺏긴 젊은 직원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모니터를 함께 쳐다봤다. 동영상 파일이었다. 파일명은 ‘La Belle Verte 1996’. <뷰티풀 그린>이에요. 지인이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덤덤하게 말했다. 고인의 유언이었단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이 영화를 틀어달라고. 근데 그래도 됩니까? 직원을 쳐다봤다. 다른 빈소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특별히 문제가 될까요?
이동은의 <뷰티풀 그린> 당신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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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 지구. 사람이 살 만한 땅이 줄어들고 자원이 간당간당해지자 등장한 주거 형태가 20세기 트레일러 촌을 수직으로 재편한 ‘스택’(stack, ‘더미’라는 의미)이다. 미술가 토니 크랙은 불특정 잡동사니를 육면체로 압축한 설치작품에 같은 이름을 붙인 바 있다. 여남은개의 컨테이너와 트레일러를 대충 쌓아올리고 철골로 간신히 지지해놓은 스택은 위태로울 뿐 아니라 범죄의 온상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프닝은 부모를 잃고 가난한 이모에게 얹혀사는 웨이드(타이 셰리던)가 밧줄을 타고 폐차 더미 사이를 기어 스택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따라간다. 웨이드가 지나치는 이웃들은 이미 VR 바이저와 장갑을 착용하고 가상현실에 몰두해 있다. 시대상을 한 호흡에 축약한 이 고밀도 시퀀스는, 매 프레임이 수많은 캐릭터, 탈것, 무기, 인용으로 터져나가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타일도 예고한다. 스필버그에게 영감을 준 영화 리스트에 <레고 무비>가 포함된다 해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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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의 조합. 뒷조사를 해도 깨끗한 남자에게 여자가 호기심을 느끼게 되는 설정.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떠올렸다. 주위에 섞여들지 않는 이지안(이지은)의 개인주의적 성향이나 중년 남자를 엿먹일 수도, 구할 수도 있는 정보력과 영리함도 리스베트 살란데르(루니 마라)와 유사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제목의 온도 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안의 능력은 평범한 아저씨를 재평가하는 데 동원된다.
거칠고 무모하게 살아온 21살 여성에게 발견되어 ‘길가의 들꽃 같은 기분’을 맛보게 될 박동훈(이선균)은 여타 드라마 속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성주인공보다 평범하다. 야망이나 분노도 없고, 때문에 이를 빌미로 타인에게 위력을 행사하거나 무례하게 굴지도 않는다. 마음에 거리낄 일은 일체 하지 않고 자신을 단속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드라마는 박동훈이란 인물을 통해 ‘길거리에 넘쳐나는 흔하디흔한 아저씨들… (중
[TVIEW] <나의 아저씨> 로맨스가 아니어도 문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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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레디 플레이어 원> 접속중입니다...
[정훈이 만화] <레디 플레이어 원> 접속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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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역사 보림극장 건물이 철거되었다”고, 20년 전 부산 보림극장에서 <콘에어>와 <화성침공>을 2본 동시상영으로 함께 봤던 조민준 객원기자가 슬픈 문자를 보내왔다. 문득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이 떠올랐다. 잘나가던 시절 극장 로비에서는 손톱으로 긁어도 버젓이 도금이 떨어지는 가짜 시계를 20만원으로 둔갑시켜 단돈 1만원에 할인 판매한다는 잡상인이 있었고, 극장 안에서는 (무려 영화 상영 중에!) 목에 좌판을 건 판매원이 곳곳을 걸어다니며 간단한 음료와 과자까지 팔았다. 그처럼 잘나가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이르러 2본 동시상영극장으로 탈바꿈했다. 오래전 그날, 교복을 벗고 그렇게 5천원이면 하루 2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웅본색> 1, 2편, <천녀유혼> 1, 2편, <황비홍> 1, 2, 3, 4편을 그렇게 보았으니 홍콩영상자료원도 아연실색할 환상의 프로그래밍이었다. 그런 다음이면, 놀
[주성철 편집장] 안녕, 보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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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나를 웃음짓게 했던 지난 한주를 돌아본다. 방북 인사의 음악 좌장에 윤상이 포함되자 분을 삭이지 못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애국자 한분께서는 역사 속 ‘윤’씨들을 뜬금없이 소환해 빨갱이의 후손 아니냐며 역정을 내셨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작곡가 김형석씨가 지적했듯 윤상의 본명은 이윤상인데. 어쨌든 저 애국자 덕분에 윤상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선, 국내 포털 사이트 중 정기 결제를 끊은 곳으로 들어가 ‘윤상’이라고 이름을 쳐보라. 앨범들이 쭉 나올 텐데, 그중 《YoonSang 20th Anniversary》라고 써 있는 것을 클릭하면 된다. 이 음반은 박스 세트다. 9장의 앨범, 18장의 CD다. 오리지널 앨범과 사운드를 업그레이드한 리마스터링 버전을 함께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마스터링은 과거의 소리를 현재에 맞게 더욱 생생한 톤으로 작업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이 박스 세트는 현재 구할 수가 없다. 물론 나는 발매되자마자 구입했지만 걱정하지 마시
[마감인간의 music] 《YoonSang 20th Anniversary》, 변하는 시간 사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