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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미지와 정체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원더스트럭>도 예외가 아니다. 1927년의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먼스)와 1977년의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은 그들이 어떤 세계에 속하는 존재인지 발견하고자 집을 떠난다. 그러자면 우선 세상 전체를 조감해야 하기에 영화 속에는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즈로 줄여진 세계의 대체물이 여럿 등장한다. 곳곳의 신기한 사물을 모아놓은 ‘호기심의 방’, 자연을 축소한 디오라마, 종이로 접은 도시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람회를 위해 정확한 비율로 줄여 만든 미니어처 뉴욕 전체가 등장한다. <원더스트럭>의 주인공에게 모형 제작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본인의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04/25
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을 비행기에서 처음 보았을 때, 첫 10분 동안은 영화 제목을 잘못 누른 줄 알았다. 이유는 단순무식하다. 토드 헤인즈의 필모그래피는 대략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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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한편도 본 적 없지만 좋아하는 그의 말이 있다. “영화는 상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나에게는 그 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같은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선택 사이를 걸어온 이들에게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손 들어주는 것만큼 필요한 게 또 있을까.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보며, 특히 여성 수상자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한국에서 여성이 자리를 얻고, 인기를 얻고, 수없이 도사린 ‘논란’을 피해, 상이라는 권위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같은 분야의 남성에 비해 몇배나 힘든 일이다. 무대 위의 예지원(TV부문 여자조연상)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던 김선아의 기쁜 얼굴, 언제나 프로페셔널한 김남주(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배우로서 너무 가진 게 없는 제가 ‘고혜란’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던 순간이 각별했던 이유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면 재미없잖아요. 가
[TVIEW]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당신을 위한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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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얼리맨> 청동기 제국이 쳐들어 왔다
[정훈이 만화] <얼리맨> 청동기 제국이 쳐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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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주성치 / 출연 주성치, 막문위, 장백지, 오맹달 / 제작연도 1999년
주성치의 ‘비디오’를 모으던 1999년은 ‘세기말’과 ‘밀레니엄’이라는 ‘근거없는 불안’과 ‘불안한 희망’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시기였다. 나는 이름도 그럴싸한 밀레니엄을 선택했고 마치 천지개벽을 기다리는 궁색한 맹신도처럼 2000년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동시에 Y2K에러로 은행전산망이 초기화되면 지급 불능의 카드값이 해결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당시 나의 영화 취향도 궁색하긴 마찬가지였다. 허름한 모텔에 비치된 B급 비디오를 통해 알게 된 <희극지왕>의 줄거리는 지면이 아까울 정도로 단순하다. 자신이 명배우이자 명연출가라는 그릇된 신념을 가진 고독한 삼류 배우 주성치가 ‘순전히 운에 의해서’ 잘되는가 싶더니 결국, 자신을 사모했던 술집 여인에게 ‘평생 먹여살리겠다’고 말하고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택한다. 끝. 당시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두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주성치표 코미디’라고
조성호의 <희극지왕> 더 힘들고 덜 힘들고의 문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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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을 앞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역대 최고 매진 회차를 기록하며 성대한 막을 내렸다.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대표 슬로건에 맞게 해마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를 소개하여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약속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제 개막 전에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등을 통해 영화 제작과 배급에 있어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영화제 평가 결과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오석근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영진위가 전주를 포함하여 국제영화제 예산 관련 육성지원 사업비를 큰 폭으로 증액하기로 결정한 것은, 예산 삭감 이전인 2014년 지원금 규모로 회복하면서 여러 영화제 운영의 정상화에 힘을 실어주고자 함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아마도 블랙리스트 관련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예산 삭감에 대한 회복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달라진 영진위 체제 아래에서 치러진 첫 번째 국제영화제의 성공을 환영한다. 이제 그다음 국제영화제는 5월
[주성철 편집장] 전주국제영화제, 내년 스무살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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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기분에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다분히 복고풍인 일본 음악가들의 흥겨운 멜로디. 시티 팝이라는 ‘장르’는 음악을 한참 들은 다음에야 인지하게 되었다. 시티 팝 저술가이자 전문 기자 기무라 유타쿠는 <디스크 컬렉션: 재패니즈 시티 팝>에서 이 장르를 19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발생한 ‘도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도시형 팝 음악’으로 정의한다. 일본의 80년대는 버블 경제 붕괴가 다가오기 전, 아무리 흥청망청해도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머지않았다는 환상의 시절이었다. ‘흙수저’ 같은 단어가 일상과 맞닿은 한국 젊은이들은 겪어보지 못한 삶이지만, 당시 음악이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오르고 디제이들의 믹스테이프에 반영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이 장르의 대부 다쓰로 야마시타가 1982년 낸 《For You》는 시티 팝의 걸작이다. 여전히 명곡으로 추앙받는 <Sparkle>과 <Morning Glory>도 이 음반에 있다. 내 중·고교 시절은
[마감인간의 music] 다쓰로 야마시타 《For You》, 풍요의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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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많은 사람을 설득할수록 이기는 게임이다. 이 점에서 선거행위는 영화산업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극장의 매표소를 뜻하는 박스오피스는 투표함과 어감부터 닮았다. 박스오피스를 통해 영화 흥행 순위가 집계되니 선거의 당락이 결정되는 투표함과 서로 기능도 비슷하다. 날마다 전국 상영관에서는 입후보한 여러 영화가 유권자인 관객을 대상으로 선거를 치른다.
선거는 또한 집단 선택의 과정이다. 그래서 종종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른바 중도파의 함정이다.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전쟁: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에서 중도파란 없다고 주장했다. 중도파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사안에 따라 보수적 관점을 취하기도 하고 진보적 견해를 따르기도 한다. 이는 그들이 각각 동조한 의견의 전체 평균값이 중간 지점에 위치할 뿐, 쟁점에 따라 입장은 저마다 다름을 의미한다. 유권자를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중간을 추구하는 선거
선거판과 영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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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가 주연인 드라마들은 종종 정의의 여신 디케에 관해 ‘썰’을 푼다. 변호사가 주인공인 KBS2 <슈츠>는 디케 대신 기회의 신 카이로스를 내밀었다. 디케처럼 저울과 칼을 들었지만 카이로스의 그것은 재판으로 가기 전 합의를 이끌어내는 변호사가 갖춰야 할 협상의 기술을 은유하는 데 쓰인다. 이들이 테이블에 앉아 사인을 받아내기까지의 지루함을 피하려면 오고 가는 말 사이의 긴장이 팽팽해야 한다. 원작인 미국 <USA Network>에서 방영된 드라마 <슈츠>가 그렇다. 고가의 맞춤 슈트를 입은 자신만만한 시니어 변호사 하비 스펙터(가브리엘 막트) 역의 최강석(장동건)과 저렴한 슈트를 어색하게 걸친 어소시에이트 마이크 로스(패트릭 J. 애덤스) 역의 고연우(박형식)의 외견만큼은 원작이 부럽지 않다. 친구의 마약 거래를 돕다가 우연히 변호사 면접 자리에 뛰어든 마이크가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하비의 눈에 들게 된 과정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영
[TVIEW] <슈츠> 대화가 오고 가야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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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원더스트럭> 이런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정훈이 만화] <원더스트럭> 이런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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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에 슈퍼히어로가 당신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나, 스타크?”
이 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있어서 닉 퓨리의 이 말은 “빛이 있으라”와 같았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해왔다.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불씨가 같은 코믹스 세계관 안에 있는 영웅들을 스크린 위로 호출하고,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분투하는 거대한 여정 말이다. 특히 이 모든 여정이 특정한 비전을 공유하는 창작자 그룹의 의사에 따라 일관되게 조율되고 계획되어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건 여태껏 없었다.
서로 다른 영화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건 특별한 흥분을 가져다준다. 90년대 관객은 <프레데터2>(1990) 후반부에 에일리언의 두개골이 등장하는 찰나의 컷을 가지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프레디 크루거의 손톱 칼날과 제이슨 부히스의 도끼가 한 화면 안에서 격돌했을 때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마블 이후,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번째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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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셰인 블랙 /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기네스 팰트로, 벤 킹슬리, 돈 치들, 가이 피어스 / 제작연도 2013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그래서 나를 심쿵하게 한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역시 <아이언맨3>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응? 말도 안 된다고? 마블 덕후의 말에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워 워, 잠시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썸’타는 사이인 A에게 힘겹게 저녁 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날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도 A는 나타나기는커녕 연락조차 없었다. 이러다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올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닐까? 시간은 만나기로 한 오후 7시를 지나 5분, 10분이 넘어간다. 그때까지도 내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는다. ‘… 이럴 거면 처음부터 희망조차 주지를 말든지 이게 뭐야?’ 내가 가방을 고쳐 메고 무거운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이동건의 <아이언맨3> 심쿵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