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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즈 야스지로 / 출연 류 지슈, 하라 세쓰코 / 제작연도 1953년
영화를 전공하던 한 대학생은 끊임없이 자신의 소질을 의심했고, 불안했다. 시네마테크에 가는 일은 그에게 몇 안 되는 위안거리 중 하나였다. 돼지 비린내가 들러붙은 국밥 골목을 지나 극장 옥상에 오르면 상영관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그 영화를 이미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를 만났다. 영화는 ‘죽음’마저도 일상으로 만들고는 초월한 듯한 태도로 삶의 깊이를 전달한다.
당시 나는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영화인가에 대한 물음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오즈의 영화가 그 물음에 대한 힌트를 던져주었다. 그의 영화는 누군가가 밥을 먹는 모습, 길을 걸어가는 모습, 공간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전달했다. 영화에 잘 포착된 어떤 디테일한 순간은 인물이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인물의 일상과 인생이 어떠할지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임태규의 <동경 이야기> 극장에서 만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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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도 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영화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가을 <씨네21>에서는 일본정부관광국의 지원으로 허지웅 작가와 함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촬영지 투어를 한 뒤, ‘복을 나눈다’는 의미의 그의 영화사 ‘분복’ (分福) 사무실을 방문하여 직접 인터뷰한 적 있다. 나 또한 그 투어에 동행하여 고레에다 감독이 거의 ‘나를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반드시 들렀다 오시오’라는 식으로 직접 추천한 영화 촬영지들을 돌아다녔는데, 영화 속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와 막내 스즈(히로세 스즈)가 속마음을 털어놓던 기누바리산 정상을 오를 때는 정말 힘들었다. 아마도 지난해에 가장 고되게 운동한 날이었던 것 같다. 자매가 힘들게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영화에 담기지는 않은) 속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상상하면 나름 의미 있는 곳이지만, 가마쿠라와 에노시마를 둘러보고 하루 만에 거기까지 등정(?)하고 오라는 건 솔직히 좀 아니다 싶었
[주성철 편집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스파이크 리의 수상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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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21세기에 등장한 기타리스트 중 내 마음속 1위는 잭 화이트다. 몸속에 전류를 ‘박아넣는 듯한’ 기타 플레이에 매료되어 그가 관여한 거의 모든 음악을 다 챙겨 들었다.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잭 화이트가 관여한 음악의 요체는 항시 ‘강렬함’이라는 단어로 수렴된다고 생각한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는 그걸 훨씬 더 거세게 밀고 나간다. 이런 과정 속에서 듣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내 그의 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잭 화이트가 지난 3월 말에 발표한 솔로 신작 《Boarding House Reach》 역시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그의 사전에 ‘타협’이란 ‘1’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했으니, 넌 그냥 듣고 감탄해”라는 패기가 넘친다. 혹시라도 대중적인 트랙 하나 있지 않을까 찾아보려 한다면 헛수고일 게 분명하니 그만두길. 뭐랄까, 이건 자신이야말로 ‘진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뮤지션만이 해낼 수 있는 종류의
[마감인간의 music] 잭 화이트 《Boarding House Reach》, 뮤지션은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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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와 상관없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위계가 작동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아니, 거의 그렇다. 일 때문에 만났거나 초면임에도 사람들은 지나치게 예의를 갖춘다. 문제는 이 지나친 예의가 대부분 일방향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유사 가족, 유사 선후배, 유사 사제 관계 같은 것이 즉각 형성된다. 나는 낯선 사람과는 연령이나 직급과 무관하게 인격적으로 동등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에 걸맞은 예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이”라는 변수는 상호 친밀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관계 속에 스며들어 서로를 대하는 호칭과 존대어법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자명한 것은 아니다. 이 자연스러움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통한 상호 조율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면 바로 “말 놓으세요”라고 말한다. 특히 남성과 남성 사이에서 그런 일은 흔하다. 나는 자기 자신을 하대(?)해 달라는 이 노
나를 당신보다 높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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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음식이 키워드인 영화치곤 드물게 <케이크메이커>(2017)는 과자와 빵을 군침 도는 스펙터클로 쓰지 않는다. <케이크메이커>의 케이크와 쿠키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에 익숙하고 사랑에 관해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인물의 성격을 설명한다. 베를린의 파티셰 토마스(팀 칼코프)는 차분하게 계량하고 우직하게 반죽을 치대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데에 익숙하다. 정기적으로 베를린에 출장 오는 이스라엘 비즈니스맨 오렌(로이 밀러)과 특별한 사이가 된 토마스는 어느 날 비보를 접하게 되고 무작정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감독은 토마스 역에 팀 칼코프를 캐스팅하고 살을 찌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몸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남성적이면서도 둥근 실루엣, 단것을 좋아하고 세상사에 미숙한 아기 같은 인상을 원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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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10년, 18편의 히어로 영화를 종합하는 3차 올스타전 &l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마블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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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자. 우리는 오늘 여기 김장을 하려고 모인 거야.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이고 봉투에 담아서 땅에 잘 묻기만 하면 돼.” 남편이 죽고 거액의 보험금을 받은 장세연(한가인)과 고교 시절 선생님을 환자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졌던 정신과 의사 김은수(신현빈), 아이 갖기에 집착하는 남편과 싸우고 직장 동료와 홧김에 일을 치른 교사 한정원(최희서), 유부남을 만나던 로펌 사무장 도화영(구재이). 네 친구가 ‘김장’을 해버리려는 대상은 어떤 남자의 사체다. 동명의 영국 드라마를 각색한 OCN <미스트리스>는 이들이 죽은 남자를 파묻는 현재와 자신들을 기만한 남자들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거 시점을 교차하며 미스터리를 끌고 간다.
등장인물 모두가 제임스라 불러도 번역을 통해 여보, 형부, 삼촌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바뀌듯, 한국판 <미스트리스>는 대상과의 관계를 부연하는 호칭을 극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앞서 네 여자가 사체 처리를 의논하는 와중에 죽은 남자의
[TVIEW] <미스트리스> 아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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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버닝> 어이쿠!! 저걸 우야노
[정훈이 만화] <버닝> 어이쿠!! 저걸 우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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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허진호 / 출연 이영애, 유지태 / 제작연도 2001년
2016년 어느 늦은 봄날. 스무살이나 먹은 나의 낡은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며 무작정 묵호항으로 출발했다. 이미 해가 떨어진 후였다. 깜깜한 고속도로를 조심스럽게 달리며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를 떠올렸다. 상우가 은수에게 달려가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저녁에 나는 <봄날은 간다>의 상우와 은수를 간절히 다시 만나고 싶었다. 묵호항의 아파트 앞에 가면 창문에 몸을 걸치고 손을 흔들어주던 은수와, 택시에서 비틀거리며 내려 은수를 안던 상우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은수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무작정 출발을 했던 터라 혹시 낡은 아파트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아파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위에 새로 생긴 아파트들이 은수의 낡은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렇게 세월을 견디며 남아 있는 것
이광국의 <봄날은 간다>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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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에서 잔인무도한 남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손을 씻지 않는다. 표정부터 대사까지 굉장히 역겹게 처리됐다. 당시 그 장면에 대해 누군가 했던 얘기를 접하고는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이 있다. ‘한국영화에서는 남자가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손 씻는 것이, 오히려 그 남자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데 이용된다’는 요지의 얘기였다. 즉각적으로 <공공의 적>(2002)에서 돈 때문에 부모까지 살해한 사이코패스이자 펀드매니저인 규환(이성재)의 결벽증이 떠올랐다. 그러니 <효리네 민박2>의 박보검과 <윤식당2>의 박서준이 잘 씻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그처럼 한국영화에서 ‘잘 씻고 깔끔 떠는’ 남자는 비정상적이거나 악한 남자인 경우가 많았다. 더럽고 무례하고 괴팍해도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기어이 그 ‘진심’을 드러내는, 더 나아가 ‘이런 나를 이해해줘’라며 관객에게 동정심을 강요하는
[주성철 편집장] 무해한 남자 대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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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녜이 웨스트의 영향력은 이미 힙합이나 음악 카테고리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간 존재’다. 늘 그렇듯(?) 그는 최근에도 구설에 휘말렸다. 1년 반 전에 이미 “난 투표를 하지 않았어. 하지만 투표를 했다면 트럼프를 찍었을 거야”라고 말했던 그는 최근 들어 이런 말을 했다. “노예제도? 그게 400여년이나 지속됐다는 것은… 마치 흑인들이 그걸 ‘선택’했다는 것처럼 들려.” 그 후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다. 분노 그리고 비난. 물론 웨스트의 인터뷰 전문이나 트위터에서의 발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가 아님은 알 수 있다.
단적으로 그는 흑인들이 오직 ‘인종주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문제이며 그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자신은 트럼프의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 ‘불가능에서 기적을 일군’ 트럼프의 성취에 영감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비록 그렇다 해도 그에게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그와 별개
[마감인간의 music] 카녜이 웨스트 《Ye vs. the People》, 논란을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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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어떤 일대일 만남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세계의 수많은 여자 대표들과 어떻게 만날 셈이냐며 세간의 빈축을 샀다. 2002년 빌 클린턴과 대비되도록 신사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한 말 정도로 취급되었던 ‘펜스룰’(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2018년에는 당대 성차별주의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몇몇 특출난 여성이 남성 집단 사이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 정도로는 변화한 시대를 반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여성이 정치에 진출하던 초기에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중심적인 대의제 내에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주목받았다. 여성은 더 부드럽고, 청렴하고, 헌신적일 거라고 기대를 모았다.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연대의 바깥에서 새로운 기대주가 될 만큼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가족사업의 일환으로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당 내에서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