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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일 폭주했다. 매일 소란스럽게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한 후보자의 스캔들 때문이었다. 특히 그 후보자가 속한 지역의 친구들은 며칠 밤낮 집단 멘붕 상태를 보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만 내다 또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다시 화내기를 반복했다. 친구들은 사전 투표일을 넘겨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자 전보다 더 괴롭고 우울해졌다. 그들의 출구 없는 고뇌와 자아분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었다. 결국 선거일이 오기도 전에 탈진한 그들은 모두 체념한 채 종일 관련 유머짤을 퍼나르며 자조적으로 깔깔거리는 경지에 이르렀고 어쨌든 투표를 하긴 했다. 그리고 정작 결과가 발표된 지금에는 아무도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이런 적이 있었다. 많았다. 모든 게 너무나도 익숙한 경험과 감정의 흐름이었다. 중차대한 선택을 앞두고
어쨌든 우리는 투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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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본 메가사키시의 모든 개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된다. 반려견을 빼앗긴 많은 시민 중 딱 한 사람, 12살 소년 아타리만 친구를 구하러 쓰레기 섬까지 온다. <개들의 섬>의 본토 장면이 일본 문화의 빽빽한 태피스트리라면, 폐기물 섬에서 소년과 개들이 벌이는 모험은, 구도의 묘(妙)와 개의 행동 특성을 살린 애니메이션이 빛난다. 코와 귀의 선제반응, 망설일 때 들리는 앞발, 머쓱함을 모면하려는 땅 파기 시늉 등 <개들의 섬>의 주역들은 과한 의인화 없이 개답다. 한편 친구를 찾아 섬을 횡단하는 아타리와 다섯 마리 개를 대사 없이 음악과 롱숏의 연쇄로 보여주는 부분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깊은 감흥을 부른다. 이 작고 다치기 쉬운 존재들은 지진, 쓰나미, 화산이 남긴 다양한 폐허를 좌에서 우로 총총히 가로지른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이유를 찾아서.
06/08
확실히 <오션스8>에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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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2013년 2월, 첫 무주산골영화제를 준비하며 낯선 무주를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이었다. 캠핑을 좋아하던 팀장이 덕유산에 야외상영하기에 좋은 곳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했다. 덕유대야영장 대집회장. 세계잼버리 대회가 열렸던 곳이라고 했다. 입이 딱 벌어졌다. 영화를 상영하기에 끝내주는 공간이었지만 너무 넓었다. 그때 무주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던 영화가 있었다. <비포> 시리즈였다. 당시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했었는데, 무주에서 <비포> 시리즈를 연속으로 상영하면 멋지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비포> 시리즈를 무주에서 상영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모두 할리우드영화여서 판권 처리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15년 3회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사무국장과 고민 끝에 처음엔 엄두가 안 났던 바로 그 대집회장에서 야외상영을
조지훈 프로그래머의 <비포> 시리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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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드라마를 좋아한다. 하지만 여성이 등장하면 불안해진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남자주인공의 연인인가? 희생양인가? (흔히 둘 다다.) 혼자만 정의감에 목소리를 높이나? 재미없는 대사만 도맡아 하나? 결정적 순간에 납치되나? 이런 함정들을 비껴가는 작품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넷플릭스 <에일리어니스트>는 인권개념도 과학수사의 필요성도 희박하던 19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셜록과 왓슨 같은 남성 콤비가 연쇄살인범을 뒤쫓는 이야기인데, 중요한 인물은 이들이 아니라 경찰국장 비서인 세라 하워드(다코타 패닝)다.
“남자들이 여자를 혐오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뉴욕 경찰국에서 일하게 된 최초의 여성인 세라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남성 경찰들의 성희롱과 거친 세파로부터 ‘숙녀’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신사들의 차별을 동시에 겪는다. 퇴근 후, 소매를 커다랗게 부풀린 드레스를 벗어던졌을 때 맨살에 촘촘히 남은 코르셋 자국은 그를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을 보여준다. 여성
[TVIEW] <에일리어니스트> 세라 하워드의 사건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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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미드나잇 선> 두 사람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정훈이 만화] <미드나잇 선> 두 사람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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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북에서 왔습네다!”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 감독이 1985년에 만든, 북한 최초의 SF영화이자 당시 북한에서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불가사리>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의 영화 포스터 카피 문구다. 예고편에는 “남한 동포 여러분 반갑습네다! 분단 반세기 만에 북에서 왔수다”라는 자막도 더해졌다. 쇠를 긁어 먹으면서 자란다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가 조정의 압제에 짓눌려 지내는 민중의 봉기를 돕는다는 내용으로, 민중혁명의 사회주의 이념을 괴수영화를 통해 재구성한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라 할 수 있다. 일본 도호영화사의 <고지라> 특수효과팀이 참여해 화제가 됐으며, 신상옥 감독이 1986년 3월 북한을 탈출하면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가 정건조 감독에 의해 완성됐다. 이후 일본에도 수출되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1998)보다 더 나은 흥행 성적을 거둬 화제를 모았고, 한국에서는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
[주성철 편집장] 북한영화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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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라는 장르가 있다. 짐작할 수 있듯, 미국 음악의 기초가 된 요소들을 모은 장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아메리카나를 지향하는 뮤지션들의 음악 속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색깔을 만날 수 있다. 포크, 블루스, 컨트리 등등. 그런데 기실 아메리카나는 한국에서 지독히도 인기가 없는 장르다. 그래서 소개할지 망설이기도 했지만, <씨네21> 독자들은 뭔가 다를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이 뮤지션의 이 곡을 골랐다. 바로 브랜디 칼라일의 <Every Time I Hear That Song>이다. 곡은 전형적인 아메리카나, 즉 어쿠스틱 기타와 만돌린 연주로 시작된다. 컨트리와 포크를 중심으로 하는 와중에 편안하면서도 풍성한 하모니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중 내 마음을 움직인 건 후렴구에서 허밍으로 처리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노랫말이 정말 좋다.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사랑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네요/ 이 노래는 날 좀 슬프게 해요/ 당신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마감인간의 music] 브랜디 칼라일 <Every Time I Hear That Song>,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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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해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삶의 고통이 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일터와 일상의 문제는 오랜 시간 누적되어온 것이며 그 해결은 시민의 주체적 노력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나 자신에게도 지극히 이론적이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포용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해 그토록 진정성 어린 말을 건네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정권이 바뀌고 ‘이제 세상이 좋아질 것 같아’라고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바람은 언제부턴가 낙심으로 바뀌고 있다.
사측이 약속한 고용 승계와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은 수개월을 굴뚝 위에서 농성 중이다. 새 정권이 공약으로 제시한 최저임금제는 출발부터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삶의 터전에서 철거당하다 손가락을 잘린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망치를 휘둘렀다가 구속됐다. 페미니즘을 내걸고 당당한
최악의 진보적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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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션스8>의 앤 해서웨이는 ‘앤 해서웨이’를 연기한다. 미디어와 대중이 지어내고 놀림감으로 삼았던 본인의 공적 이미지를 패러디한다. <레미제라블>(2012)로 오스카를 수상한 무렵을 전후해 타블로이드 언론과 일부 대중은 해서웨이를 험담했다. 이유는 어이없게도, 지나치게 노력하며 지나치게 ‘여배우’스럽다는 것이었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할리우드 배우 다프네는 외모와 인기에 집착하고 일거수일투족이 포즈다. 데비 오션(샌드라 불럭) 일당은 다프네를 고가의 목걸이를 건 마네킹 정도로 여기지만, 곧 반성할 일이 생긴다. 그러나 다프네는 숨겨진 면모가 드러나기 전에도 충분히 근사하다. 그가 거울 앞에서 목걸이를 걸고 음미하는 장면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8) 이후 최고의 ‘오르가슴’ 연기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상투적 이미지를 만지작거리며 즐기는 <오션스8>의 앤 해서웨이는 종달새처럼 자유롭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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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가이 다비디, 애머드 버넷 / 출연 애머드 버넷 / 제작연도 2011년
영화감독을 꿈꾸다 신문기자가 됐다. 유난히 재능 없는 기자였다. 편집국 선배들은 어린 수습기자를 불러놓고 조언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직업을 찾아봐라.” 하고 싶어서 뛰어든 직업도 아니었다. 유년기부터 꿈꿨던 영화감독은 막연했고, 드라마 PD 시험에선 낙방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외환위기(IMF). 기댈 곳 없는 흙수저 청춘은 처량했다. 서울 시내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내는 이른바 ‘마와리’.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됐다. 남녀 가리지 않고 어깨를 마주치며 잠을 청해야 하는 2진 기자실 대신, 찾았던 곳은 경찰서 인근 비디오방이다. 그곳에서 <그랑부르> <첨밀밀> <패왕별희> 등과 재회하고는 목젖을 떨며 울었다. 영화와 정면대결 못한 스스로의 비겁함이 부끄러워서.
사표를 들고 강남경찰서 기자실을 찾았다. 1진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회사가 자랑하는
이학준 감독의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너는 왜 찍으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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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박사(김성령)는 재벌 회장인 시아버지에게 빼앗긴 어린 아들을 대신해 ‘남신Ⅲ’(서강준)를 만들어 키웠다. 로라는 착하고 다정한 안드로이드 아들에게 부탁한다.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진짜 아들이 깨어날 때까지 그의 자리를 지켜달라고.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야기들이 대개 그렇듯 KBS2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도 윤리나 원칙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우선, 인간을 위로하고 위험에서 구한다는 원칙이 심어진 남신Ⅲ가 모사해야 할 남신(서강준)이 여성 경호원 강소봉(공승연)을 폭행하는 개차반이라는 점이 그렇다. 창조자가 부여한 원칙과 수행해야 하는 명령이 상충하는 이 딜레마는 남신Ⅲ가 상황마다 기계적으로 선한 원칙대로 작동되며 간단히 넘어간다.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위악적인 행동을 일삼는 진짜 남신은 소봉이 자신의 ‘몰카’를 찍어 팔도록 사주하고, 소봉을 폭행해 폭력적인 재벌 3세라는 논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의 계략을 알게 된 소봉은 불법촬영에 적극적으로
[TVIEW] <너도 인간이니?> 인간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