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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지 로이 힐 / 출연 로빈 윌리엄스, 글렌 클로스 / 제작연도 1982년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오면서 아버지 몰래 엄마의 예전 일기장을 훔쳐왔다. 집에 들를 때마다 장롱 속 유품상자를 비밀스레 뒤져 한두장씩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았고, 매번 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의 기분으로 망자를 추억하는 일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냥 조용히 가방에 넣어온 것이다. 당시 집 안에 있는 물건 중 가장 낡고 늙고 오래된 그 겨자색 스프링 노트는, 걸어서 극장과 백화점을 오갈 수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평생을 살던 여자가, 이제 막 결혼해 남편의 직장이 있는 황량한 지방 교외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던, 1970년대 후반에 주로 쓰였다. 어떤 이야기들이 그 속에 적혀서 나를 자주 놀라게 하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는지 이 지면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과 불가사의한 신호들이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꾸준하게 떠 있던 그 낡은 일기장 속
백승빈 감독의 <가프> 괴상하게 아름답고 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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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기자로 일하던 시절 가장 좋아한 댓글은 “ㅋㅋㅋㅋㅋ”였다. 한때 코미디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좋은 글이나 아름다운 글보다 웃긴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면서, 웃기는 일은 무척 힘들어졌다. 쓸 수 없는 소재, 쓰면 안 되는 표현, 침범해선 안 될 입장…. 몇개의 필터를 거치고 나면 처음 떠올린 농담은 너무 심심하거나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이제 계속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나? 한 여성이 지구 반대편에서 답했다. “그래서 제 코미디 경력이 끝장난다면 그러라죠!”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쇼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해나 개즈비는 동성애를 병이나 죄악으로 취급할 만큼 보수적인 지역에서 성장하며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농담으로 쇼를 만들어왔다고 고백하며 선언한다. “저는 자학적 유머로 경력을 쌓아왔어요. 그런데 더는 싫더라고요. 비주류에 속한 사람의 자학이
[TVIEW]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이제는 끝내야 할 농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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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앤트맨과 와스프> 내 몸을 더 줄이고...
[정훈이 만화] <앤트맨과 와스프> 내 몸을 더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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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챕터로 이뤄진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Worlds Apart, 2015)에서 첫 번째 챕터 ‘부메랑‘은 시리아 난민 남성과 그리스 여성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다프네(니키 바칼리)는 괴한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는데, 시리아 난민 청년 파리스(타우픽 바롬)가 그녀를 구해주고 이후 사랑이 싹트게 된다. 그런데 극도의 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 혐오증)를 지닌 파시스트 조직의 우두머리인 다프네의 아버지는 폐공항에 모여 살고 있는 난민들을 불법 마약과 무기의 온상이라며 무차별 공격한다. 폴 그린그래스의 <그린존>(2010)에서 묘사된 것처럼, 지난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거짓된 명분으로 바그다드를 폭격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낳았던 미국과 별다를 바 없다. 그렇게 그들은 세계 어디서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안타깝게도 다프네의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으로 딸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데, 챕터 제목 ‘부메랑’은 잘못된 공격의 피해가
[주성철 편집장] 배우 정우성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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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최초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후반은 물론 그 이전에도 수많은 흑인 여성 가수가 존재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벽을 넘어 보편적인 사랑을 받은 흑인 여성 음악가는 드물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풍미한 팝발라드와 댄스음악, R&B와 CCM(기독교 음악)의 공식은 ‘초대형 흥행’을 노리는 후배 음악가와 프로듀서들에게 하나의 기준이었다.
그의 말년은 초라했다. 영화 <보디가드>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후, 모두가 좋아하는 팝 넘버 대신 R&B 곡을 짙게 시도한 《My Love is Your Love》(1998) 앨범이 전성기 끝자락이었다. 2012년 그래미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마약 과다 복용에 따른 질식사로 사망했을 때는 아름답게 빛나던 흔적 대신 타블로이드 가십을 장식한 과거의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 그를 잊지 않았다. 수많은 동료 음악가부터 대중까지 광범위한 추모
[마감인간의 music] 휘트니 휴스턴 《The Bodyguard Original Soundtrack Album》, 다시, 휘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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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에 입대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내무반에 괴담이 떠돌았다. 불침번을 서던 동기가 귀신을 봤다는 것이다. 복도 창밖으로 오래된 군복을 입은 이가 “왼손 파지, 왼손 파지…”를 중얼거리다가 사라졌다는 목격담이었다. 동기들은 그 귀신을 ‘왼손 파지 귀신’으로 불렀고, 불침번을 설 때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그 귀신을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훈련소에 전해져 온다는 옛날 귀신 이야기도 등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들 훈련소에 한번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얘기들이 전해졌는지 모를 일이지만 귀신의 존재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흥밋거리였다. 인간은 인지적으로 불명확한 대상에게 불안을 느끼면 인과관계를 찾아 해소하려는 심리가 있다. 이는 이야기의 형태, 즉 괴담으로 발전하고, 물리적으로 닫힌 공간이나 정서적으로 고립된 집단의 폐쇄성으로 인해 증폭된다. 그렇게 불안은 실체적 공포가 되고, 확산된 공포는 생명력을 갖는다.
과거엔 귀신이나 자연 속 신비현상처럼 오컬트 색깔을
누가 공포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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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구스 반 산트 / 출연 마이클 피트, 루카스 하스, 아시아 아르젠토 / 제작연도 2005년
어쩌면 그는 겨울에 태어났을까. 어쩌면 오늘이 그날인지 모른다. 마른 숲을 맨발로 지나면서, 나는 그의 유일한 증인이 되어간다. 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덜덜 떠는 그의 몸을 따라간다. 그의 이름을 불러 뒷모습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숲에서는 누구나 길을 잃고 어둠은 아직 반복된다. 나는 이미 죽은 몸으로 그의 망각을 도울 뿐… 어차피 나는 그 이름 기억하지 못해. 그것은 나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모른다고… 되새기며 그러니까 빌어먹을 내 이름도 모르는 심정이다. 누가 그를, 나를 여기로 보냈을까. 추론만 가능한 집.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저택. 친구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구나. 내가 훔칠 수 있는 건 내 눈물뿐. 그러는 사이 방문자들이 들락거리며 집을 더럽힌다. 나는… 잊어버린 물건 같아. 그것이 총이나 칼은 아닐 거야. 아마… 여동생
지지연 의상감독의 <라스트 데이즈> 길고 외로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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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를 추격하던 경찰이 차에 치여 쓰러졌다.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의 형사 한태주(정경호)가 정신을 차린 곳은 과거인 1988년이었고, 동명의 원작인 영국 <BBC>판의 샘 타일러(존 심)는 1973년에서 눈을 떴다. 정말로 과거인지, 무의식 속 환각에 빠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들은 구시대적 수사방식에 저항하고 또 적응하면서 경찰 업무를 수행한다. 원작이 성차별적인 말재간으로 마초성을 뽐내는 남자 형사들과 그들에 의해 성적 대상화가 되는 여성 경찰 애니 카트라이트(리즈 화이트)를 통해 70년대 경찰이 주인공인 장르물에 대한 향수와 비판적 시각을 함께 가져갔다면, 리메이크에서의 순경 윤나영(고아성)은 경찰서에서 주로 커피를 탄다. ‘미스 윤’이라 불리던 윤나영은 한태주가 팀에 합류하면서 프로파일링을 하고, 범인을 잡고, 현장에서 뛰기 시작한다.
윤나영은 남자 상사에게 특기가 발견되고, 가까스로 인정받고 성장하는 캐릭터일까? <라이프 온 마스>
[TVIEW] <라이프 온 마스> 과거라서 그래요? 현재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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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마녀> 그녀의 정체를 아는 자들이 나타났다
[정훈이 만화] <마녀> 그녀의 정체를 아는 자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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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99년, 이장호 감독은 <천재선언>(1995) 이후 축구영화 3부작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주최하는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2000년 개봉예정의 <히아신스>를 시작으로 <붉은 악마>와 <허그>를 연달아 제작할 계획이었다. <히아신스>는 한국이 처음으로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과정을 그릴 작품이었다. 한국전쟁 중에 월드컵 예선을 치러야 했던 실제 역사적 배경만으로도 꽤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당시 공개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2편 <붉은 악마>는 한국 축구 응원단인 붉은 악마와 일본측 응원단인 울트라 닛폰간의 응원전을 통해 양국 젊은이들의 투지와 우정을 다룰 예정이고, 3편 <허그>는 제목에서 보듯 당시로선 야심차게 축구 남북단일팀을 꾸리는 이야기였다. 당시 제작발표회를 겸한 기자간담회 자리도 있었는데, “월드컵에 대비해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준비 중인 일본에
[주성철 편집장] 한국영화와 월드컵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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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는 아이돌 그룹의 새 장을 열었다. 작곡 가능한 아이돌, 힙합 아이돌을 히트시켜 인형 같은 아이돌, 고분고분한 아이돌을 철 지난 유행으로 만들었다. 빅뱅으로 선보인 대담한 행보는 투애니원으로 이어져 보이그룹에 이어 걸그룹에도 새바람이 불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귀여움에 열광하던 대중이 취향을 바꿔 ‘중성’, ‘걸크러시’ 키워드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시 고전적인 아이돌로 선호도가 역전됐지만 그때의 파격은 두고두고 K팝 역사에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전략도 재탕하면 진부해진다. 블랙핑크는 ‘힙합과 센 언니’라는 YG의 과거 성공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투애니원과 너무 유사해 신선함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방향은 비슷해도 디테일은 달라야 하는데 창법, 뮤직비디오, 작곡가까지 유사해 투애니원 음악을 다른 가수가 부르는 느낌까지 든다. 신곡 <뚜두뚜두>를 들으면, 데뷔때부터 지적된 이 문제를 이번에도 해결하지 못했다. 힙합에 강한 테디와 EDM에 강한 알
[마감인간의 music] 블랙핑크 《SQUARE UP》, 차별화의 절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