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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좀더 친하게 지냈어야 하는데.” 기자들끼리는 종종 그런 얘기를 하곤 한다. 영화제에서 무명일 때 만난 감독이나 배우 같은 게스트가 어느 날 유명해지면 괜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제는 <대니쉬 걸>(2016)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로 정점을 찍으며 할리우드 톱스타가 된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조국인 스웨덴영화 <퓨어>(영화제 개봉 제목 <순수 소녀>)가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 초청되어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딱히 인터뷰도 없고 스케줄도 없어서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겼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당시 리자 랑세트 감독이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면서 신인배우 혼자 부산을 찾았던 것이다. <제이슨 본>(2016) 개봉 당시 홍보차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던 그녀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배우로서 처음 초청받은 해외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였다”며 “그때 해외 영화제의 설레고 좋은 기운
[주성철 편집장] 2006년 부천,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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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애 밴드’를 꼽자면 두 이름이 떠오른다. 라디오헤드와 뉴 오더다. 둘 중 뉴 오더를 선택한 건 순전히 여름이기 때문이지 애정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서는 아님을 밝힌다. 통상 뉴 오더는 록밴드와 1980년대부터 유행한 디제이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공로를 인정받는다. 계기가 된 건 아프리카 밤바타가 뉴욕에서 녹음한 곡 <Planet Rock>(1982)이었다.
이 곡의 혁신적인 성취에 충격을 받은 뉴 오더 멤버들은 곧장 뉴욕으로 날아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목격하려 했다. 이후 그들의 생활은 말 그대로 ‘클럽 죽돌이’의 그것이었다고 전해진다. 밤 11시30분에 일어나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 탄생의 빛을 본 곡이 바로 저 유명한 <Blue Monday>(1983)다. 심지어 그들은 이 곡을 디제이들이 애용한 포맷인 12인치 싱글로 발매했다. 이 곡을 기점으로 자신들이 클럽 문화에도
[마감인간의 music] 뉴 오더 《Music Complete》, 여름엔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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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화제는 이사할 때의 난감함으로 흘렀다. 이 난감함은 햄릿을 패러디 하자면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 또한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박사 논문을 쓸 때 모은 자료들은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특히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녹음한 테이프들이 그렇다. 나는 그 테이프들을 마치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인격, 아니 영혼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한다. 그 테이프들을 버리면 그 사람들에게, 아니면 나에게 액운이라도 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나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사람이 된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사물에게 인격과 영혼을 부여하는 애니미즘 신봉자가 된다.
다들 버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무엇보다 유품이었다. 이 난감함은 매우 보편적이어서 심지어 유품을 처리하는 비즈니스도 존재할 정도다. 하지만 유품의 난감함은 단순히 양 때문이 아니
버릴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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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2004)에 이어 <인크레더블2>는 슈퍼히어로 활동이 불법인 세계에서 시작한다. 재정난에 처한 히어로 부부 밥과 헬렌에게 재벌 데버 남매가 우호적으로 접근해 슈퍼히어로의 대중 이미지를 개선하는 언론 플레이를 제안한다. <인크레더블2>는 중반까지 묵직하고 흥미로운 명제를 잔뜩 던진다. 어차피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영웅보다 사회의 인프라가 위기를 수습해야 한다는 원칙, 이유 없이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관찰이 솔깃하다. 데버 남매는 보도 영상의 앵글과 시점숏의 중요성을 정확히 지적한다. 현실 대신 스크린에 홀린 대중을 비판하는 악당의 일장연설도 논리 정연하다. 그러나 아깝게도 이 모든 이슈들은 뿌려질 뿐 싹을 틔우지 못하고 고속 액션에 떠내려간다.
06/13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 <아녜스의 해변>(2008),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휩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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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출연 에밀리 드켄, 파브리지오 롱기온 / 제작연도 1999년
처음 가는 길을 갈 때,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 처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항상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말이다. 28살 되던 해에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때의 난 새내기들과 함께하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에도 버거웠다. 단지 영화가 좋아서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대학을 갔지만 주변 사람들보다 영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고, ‘이대로 대학 생활을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나의 두려움을 다시 설렘과 기대로 바꿔준 영화가 있다. 그 ‘첫’ 영화가 바로 <로제타>였다.
수업 자체는 자유로웠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도 마셔도 되는. 입학하기 전 익숙했던 공장 생활로 커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던 내가 커피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로제타>는 내 마음을 부여잡고선 내 몸을 자리에서 일어나
김종우 감독의 <로제타> 처음 만난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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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나르시시스트인 부회장 이영준(박서준)과 까다로운 상사인 그를 9년간 보필해온 비서 김미소(박민영) 사이에 로맨스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건 김 비서가 사직 의사를 밝힌 다음부터다. 원작 소설과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한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로맨스 장르의 익숙한 설정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설정과 목적이 연애로 귀결되는 이야기의 내부에서 과정 하나하나를 재점검하는 점이 눈에 띈다. ‘썸’을 청산하고 연애하자고 고백하는 이영준과 김미소 사이에 달콤한 음악이 흐르던 7회. 김미소는 사무적인 웃음으로 응대하는 ‘김 비서’의 표정으로 말한다. “질투와 승부욕에 사로잡혀 몰아붙이듯이 내뱉는 말로 연애를 시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 이런 상황, 별로예요.” 남자의 질투와 승부욕을 당연한 사랑의 촉매로 삼았던 그간의 이야기들 앞에서 당신의 감정과 나의 승인은 별개라고 선을 긋는 장면이다.
한편 로맨스 장르가 극 바깥에 미치는 영향에 눈을 돌릴 기회도 있었다.
[TVIEW] <김비서가 왜 그럴까> 로코 혹은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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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스카이스크래퍼> 164층짜리 초고층 건물
[정훈이 만화] <스카이스크래퍼> 164층짜리 초고층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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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회 서울환경영화제(이하 환경영화제)에서 ‘그린코드’(Greencode)가 제작한 오프닝 클립을 선보인 적 있다. 그린코드란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아델라이드영화제 등을 거쳐 2007년 토론토의 핫 독스(Hot Docs) 페스티벌에서 정식 출범한, 영화제작에 있어 친환경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영화제작 자체의 탄소 제로를 지향하는 비영리 국제단체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불필요한 활동을 줄이고 필름 같은 전자 쓰레기를 제대로 처분하자는, 영화계의 환경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클립에는 무언가 촬영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서너명이 등장하는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테이프를 갈아끼우기 위해 여분의 테이프 비닐을 벗기더니 그냥 바닥에 버리고, 다 쓴 건전지도 마찬가지로 그냥 던져버렸다. 멋진 장면을 촬영할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꽃과 식물을 마구 밟기도 했다. 그처럼 영화인들은 ‘비주얼’을 위해 거리낌 없이 반환경적 행동을 일삼았다.
[주성철 편집장] 환경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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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름이다. 에어컨의 비닐을 벗겼고 반팔 티셔츠를 몇장 주문했다. 빨래를 하루 만에 걷을 수 있게 됐다. 선풍기는 꺼내지 않았다. 선풍기는 일년 내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여름과 함께 새로운 공간도 나를 찾아왔다. 집 근처에 있던 동네슈퍼가 점포 정리를 선언(?)한 뒤 나는 줄곧 그곳을 매의 눈으로 주시해왔다. 무엇이 들어올 것인가. 정답은 카페였다. 물론 카페는 이 동네에 넘친다. 하지만 이 카페는 조금 특별하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정서를 머금고 있다. 주인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 손님이 되려고 한다. 지금도 이 카페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올여름은 이곳에서 나게 될 것이다. 여름과 함께 내 플레이리스트도 바뀌었다. 일단 기린의 <SUMMER HOLiDAY>를 5번 들었다. 그 후 몇몇 다른 여름 노래도 저장했다. 그중에는 디제이 재지 제프 & 프레시 프린스의 <Summertime>도 있다. 1991년 여
[마감인간의 music] 디제이 재지 제프 & 프레시 프린스 , 여름 음악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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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이솜)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은 웹툰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2년간 5천만원 이상을 모을 수 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장기출장을 신청한다. “왜?”라는 주인공의 질문에 “남들 다 하는 걸 하기 위해”라고 답한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자신의 꿈을 접는 걸 사람들은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굳이 이해할 생각이 없는 주인공 미소는 점점 오르는 월세와 두배 가까이 오른 담뱃값 사이에서 방을 버리고 담배를 선택한다. 집과 직장, 결혼 대신에 기꺼이 자신의 취향을 지키기로 한 이 선택에 대해 극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특이하다고 놀라워한다. 미소는 방을 뺀 후 잘 곳을 찾기 위해 대학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을 한명씩 방문한다. 흥미롭게도 세명의 여자동창은 모두 직장, 가족, 육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음악과 담배와 같은 취향의 세계와 결별한 생활인으로 살고 있고, 두명의 남자동창은 여전히 기타를
존엄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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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외과의사 스티븐(콜린 파렐)은 정기적으로 10대 마틴(배리 케오간)과 만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한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따로 사는 부자(父子)? 비밀스러운 파트너? <킬링 디어>의 마틴을 연기한 배리 케오간은 <원더스트럭>(2017)의 밀리센트 시먼스, <유전>의 밀리 샤피로에 이어 스크린에 들어오는 순간 눈을 뗄 수 없는 신예다. <덩케르크>에서 애국심에 불타는 투명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 배우는 <킬링 디어>의 시커먼 심연이다. 마틴은 예의바르고 집요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모든 인물이 그렇듯, 흡사 인공지능 같은 딱딱한 말투로 괴상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때는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다. 순진한 동시에 사악하고, 가련하지만 가까이하기 싫은 캐릭터를 배리 케오간은 제2의 피부처럼 연기한다. 소년은 현실적으로 극중 최약자이지만 때가 되면 영화 전체의 리얼리티를 교란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06/11
아녜스 바르다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사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