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마이크 리 / 출연 브렌다 블리신, 티모시 스폴 / 제작연도 1996년
호본역 앞, 토요일 7시30분.
젊은 여성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역사 앞을 서성인다. 그런 그녀의 뒤로 초조하게 담배를 태우며 벽에 기대 서 있는 중년 여성이 있다. 젊은 여성은 중년 여성을 바라보다가 다가가 말을 건다. “혹시 신시아씨세요?” 모녀가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끝마다 “스위트허트, 달링~”을 붙이는 신시아 로즈 펄리(브렌다 블리신)와 단정하고 침착해 보이는 호텐스 컴버배치(마리안 장 밥티스트)는 이렇게 서로를 처음 마주한다. 10대 시절 입양 보냈던 딸의 인종이 자신과 다르리라곤 생각도 못한 채 부정하던 신시아는 어느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낸다.
내가 마이크 리 감독을 접한 건 2011년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을 통해서였다. 레슬리 맨빌의 이상하고 외로운 연기와 영화를 관통하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좋았다. 이미 거장인 감독을
김인선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 이상한 인물과 슬픈 유머
-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채널을 돌릴 수 없게 된 프로그램이 있다. 본 적도 없는 영화 얘기를 하는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너무 신나게 떠들어서 그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내가 본 영화 얘기는 훨씬 더 재밌어서 괜히 끼어들고 싶어졌다. JTBC <#방구석1열> 얘기다.
<#방구석1열>이 지닌 미덕의 8할은 변영주 감독에게서 나온다. 영화를 향한 애정과 풍부한 지식, 날카로운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 독보적인 그의 유머 감각은 한국영화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마땅하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만행을 짚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예의를 갖추도록 촉구하는 발언의 흐름은 그가 보여준 삶의 방식과 그대로 이어진다. 초대된 배우와 감독들이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고민과 노력, 멋진 결과에 대해서까지 즐겁게 말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변영주 감독이 깔아주는 건
[TVIEW] <#방구석1열> 유쾌하게 묵직하게
-
[정훈이 만화] <상류사회> 회장님, 죽은 도련님의 사생아를 찾았습니다!!
[정훈이 만화] <상류사회> 회장님, 죽은 도련님의 사생아를 찾았습니다!!
-
올해 8월 북미 박스오피스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의 흥행 돌풍과 더불어, ‘AsianAugust’라 불릴 정도로 아시아계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지난 8월 15일 개봉해 첫주 흥행 수입으로 35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당당하게 1위로 개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는 싱가포르계 미국인 케빈 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뉴요커 레이첼(콘스탄스 우)이 싱가포르에 있는 슈퍼 리치 남자친구 닉(헨리 골딩)의 가족과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할리우드의 ‘화이트워싱’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내왔던 배우 콘스탄스 우를 비롯해 헨리 골딩 외에도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 양자경과 켄 정, 그리고 <오션스8>의 아콰피나 등 주요 배역들을 모두 아시아계 배우들이 채운 영화다. 메가폰을 잡은 이 또한 <스텝업4: 레볼루션>(2012), <지.아이.조2>(2013), <나우 유 씨
[주성철 편집장] #AsianAugust 아시아계 배우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
-
DJ 소울스케이프의 1집 《180g beats》의 간결한 그래픽디자인 표지는 전혀 힙합 같지 않았다. 발매 시기는 기억하건대 봄이었다. 계절이 두번 바뀐 후 가을 무렵, 어느 하굣길에 들을 음반이 없어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이제는 사라진 작은 음반 가게에서 그 CD를 골랐다. 파나소닉 CD 플레이어에 넣고 이어폰으로 들으며 걷다가, 성수대교 남단 주유소 앞에 멈춰 섰다. 왜 이제야 샀을까. CD가 카세트 테이프였다면, 진작에 늘어났을 정도로 오래도록 들었다. 이후 그의 작업을 꾸준히 흠모했다. 1집보다 더 다양한 음악을 담은 《Lovers》는 물론 에스피오네로 발매한 음악과 서울의 소리를 담은 음악을 귀가 닳도록 주입했다. 훗날 360 사운즈 구성원들과 안면을 트고,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의 떨림을 기억한다. ‘왜 CD를 갖고 오지 않았을까! 사인받아야 하는데!’ 18살이던 소년은 이제 36살이 되었다.
새로운 리믹스 앨범은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가 발매하고, 이센스의 사운드 클
[마감인간의 music] Various Artists 《DJ Soulscape ‘Lovers’ 발매 15주년 기념 리믹스》, WE’RE STILL IN LOVE
-
일요일 아침. 방송은 전국 단일방송 체계로 전환돼 KBS1과 라디오만 나온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를 못 보니 괜히 서운한데. 오후에 지인의 결혼식 참석차 명동성당에 갔다. 사람이 뜸했다. 종교행사, 관혼상제를 제외한 일체의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 건데 다들 오버하기는. ‘연락이 안 되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가족의 문자 메시지를 이제야 확인했다. 수차례 보낸 문자. 발신시각을 보니 저녁에 쇼핑하고 있는 동안이었다. 특정지역 시위봉쇄를 위한 휴대폰 전파방해로 서울 곳곳에는 전파섬이 생겼다. 밤 10시. 통행금지 한 시간 전인데도 벌써부터 거리는 한산하다. 계엄정국 이후 도시는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적막하다.
시청 뒤 프레스센터를 지날 때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 사전 검열을 받고 나오는 기자들이었다. 모든 조간신문은 보도 전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 통행금지 전인 밤 10시까지 시간을 지정한 건 배려인가. 석간은 오전 5시부터. 주간
서울의 휴일
-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과 <맘마미아!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사랑하는 타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규정함으로써 가까스로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의 부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에게는 그 과정조차 남달리 길고 험하다. 작은 인테리어 가게를 함께 꾸려가는 부부의 아들 은찬은 물놀이를 갔다가 동급생 기현(성유빈)을 구하고 희생된다. 우연히 괴롭힘당하는 기현을 마주친 성철은 기댈 곳 없는 기현을 돕고 일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반발하던 미숙도 본인의 방식으로 소년에게 다가선다. 말수 적은 사제지간인 성철과 기현은 낡은 집의 내부를 말없이 보수하며 가까워지는데, 이 광경은 마치 공통의 상처를 천천히 씻어내고 덮는 노력처럼 보인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정신적 소생을 벽지를 바르는 행위를 통해 그린 김애란 작가의 단편 <입동>도 떠오른다.
08/04
<미션 임파서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거꾸로 쓰기
-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 출연 사크다 카에부아디, 제니이라 퐁파스 / 제작연도 2010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 10편 중에는 나와 본 영화가 없었다. 대부분 오래전 영화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섭섭한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수많은 영화를 함께 봤고 그중 몇편은 함께 감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이 감동했다는 건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적 순간과 우디 앨런의 재치를 좋아했다. 피 튀기는 유머가 필수였나 보다. 그 사람은 내게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를 보여줬고 ‘007 시리즈’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해줬다. 그 사람은 할리우드영화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영화는 나보다 당신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 하루는 나도 보답이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그 사람이 만족할 만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B급 고어물인 이구치 노보루의 <머신 걸
박규택 감독의 <엉클 분미> 잠시라도 삶이 신비로울 수 있다면
-
한회에도 십수번씩 예쁘다, 얘가 더 예쁘다. 말라서 부럽다, 너도 말랐다 등 외모를 언급하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도, 매일 모이는 자리에서도 질리지 않고 외모가 화제로 오른다. 외모 칭찬이 인사나 덕담과 같다면, 주변이 동의하는지 진정성과 객관성을 따지느라 예민하게 곤두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볼 때마다 괴로워서 몸을 뒤틀게 된다. 듣고 흘렸던 말, 무신경하게 건넸던 말, 정색하기 뭣해서 삼켰던 말들이 기억 속에서 거북하게 치고 올라온다.
못생겼다고 공격하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어두운 유년기를 보낸 주인공 강미래(임수향)는 한국대 화학과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도 못 알아볼 정도로 성형수술을 한다. ‘티가 나게’ 예뻐진 미래는 간신히 또래와 어울릴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속하게 된 사회는 외모 평가를 권력으로 삼는 쪽과 평가를 내면화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쪽의 갈등이 (이제야) 불거지는 곳이
[TVIEW]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너무 흔한 어떤 수난기
-
[정훈이 만화] <신과 함께-인과 연> 제목이 '킹과 함께'던데...
[정훈이 만화] <신과 함께-인과 연> 제목이 '킹과 함께'던데...
-
노태우 대통령이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1990년 10월 13일이다. 물론 그것은 앞서 10월 4일 육군 보안사 소속 이병 윤석양이 탈영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기록을 공개한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였다. 정계는 물론 노동계와 종교계까지 망라한 그 사찰 기록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는 10월 13일 공동 집회를 열고 보안사의 사찰과 노태우 대통령의 관련성을 조사하고 만약 관련이 있다면 대통령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바로 그날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새질서 새생활 운동’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이 사건은 박인제 감독이 연출한 <모비딕>(2011)의 결정적인 모티브가 되었는데, 영화 속 발암교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 이방우 기자(황정민)에게 일련의 자료들을 건네는 고향 후배 윤혁(진구)의 모
[주성철 편집장] <공작>과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같은 시대의 다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