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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와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도싯의 체실 비치는 해안 어디께냐에 따라 자갈의 마모 정도가 달라 캄캄한 밤에 닿아도 어부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곳이다. 그러나 막 체실 비치에 도착한 1962년의 신혼부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과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경우가 다르다. 둘은 삶의 희망찬 출발점에 서 있다고 믿지만 하루도 못 돼 의심에 사로 잡힌다. 순진하고 자존심 강한 젊은이들은 한번의 어긋남에 너무 멀리 내다보고 성급한 결론을 낸다. 앞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걸 나는 못 채워줄 거고 그러면 대화가 줄 거야. 우린 불행해질 테고 내가 그 원흉이 되겠지? 영화를 함축한 한숏에서, 플로렌스는 해변에 부려진 조각배에 올라 마치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분노한 에드워드는 소금기둥이 된 양 우두커니 서 있다. 도미닉 쿡 감독은 영화 내내 두 인물의 거리와 배치 구도에 정성을 들였다. 이 장면에서 프레임 밖으로 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애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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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추석영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주 앞서 9월 12일 개봉한 <물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9월 19일 맞붙는 <안시성> <협상> <명당>, 그리고 한주 뒤 9월 26일 개봉하는 <원더풀 고스트>에 이르기까지 올해 추석은 사상 유례없는 한국영화들의 격전장이 될 것 같다. <명당>을 제외한 네 영화의 감독들과 인터뷰를 가졌으니 54쪽부터 시작하는 특집을 참조해주시길. 게다가 추석 연휴가 지난 10월 3일 개봉하지만, 서둘러 언론시사회를 가진 <암수살인>에 대한 호평도 들려온다. 10월 11일에는 올해 초 <씨네21>이 주목하는 프로젝트로 미리 인터뷰했던 여성감독 이지원의 <미쓰백>도 개봉한다. 한주 차이로 화제작들이 개봉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영화가 관객과 더 오래 만날지 궁금하다. 일단 <물괴> <안시성> <명당> 등 변함없이 사극영화의 경쟁이 눈에
[주성철 편집장] 즐거운 추석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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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빌보드 댄스/일렉트로닉 차트를 보면 클럽에서 인기 있을 만한 곡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 유튜브나 스포티파이를 겨냥한 팝 EDM이다. 언더그라운드 팬덤에 만족 못한 아티스트들이 장르 밖 청중들까지 사로잡으려 노력하면서 클럽 음악으로 탄생한 하우스가 클럽 음악 성격을 점점 잃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엔 음악 제작 방식도 팝을 따라가는 분위기다.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데모 중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자기 색깔을 넣어 발표하는 것이다. 물론 프로듀서가 곡의 모든 부분을 혼자 다 할 수도 없고 그게 의무도 아니다. 하지만 방구석 작품이 세상을 바꾸는 신화가 사라지고 히트를 위한 산업만 남은 것 같아 씁쓸해진다.
이런 와중에 디스클로저의 신곡들은 놀라움을 준다. 누구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들이 최근의 팝 흐름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하우스의 뿌리에 충실한 곡들을 발표했다. 그루브, 비트, 샘플링, 신시사이저가 전면에 나선다.
지난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매
[마감인간의 music] 디스클로저 <Where Angels Fear To Tread>, 히트보다 귀한, 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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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그날의 수다는 즐거웠고 여운이 오래갔다. 우리의 수다는 수다 자체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다들 목적 없이 자유롭게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덧붙였다. 즐거운 대화는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이다. 미리 주어진 지침이나 지도를 따라 이루어지는 대화는 재미가 없다. 자꾸만 샛길로 빠지는 대화, 함께 길을 잃고 찾는 여정에서 신기하게 생긴 돌과 나무를 발견하는 대화가 재미있다.
사실 나의 “수다 예찬론”은 사회학자들의 대화론에 빚진 것이다. 리처드 세넷은 <투게더> 책에서 “대화적 대화” 개념을 제시한다. 대화적 대화의 참여자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은 긴밀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두터워진다. 세넷은 대화적 대화를 “연주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도 연주자들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는 재즈에 비교한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사교의 사회학>이라
수다스러운 눌변가들의 세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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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 / 출연 마고 로비, 세바스천 스탠, 앨리슨 제니 / 제작연도 2017년
봄에 <아이, 토냐>를 보았는데, 볼 때는 매끄러운 영화라 생각했지만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잔여물이 남았다. 어쩐지 아주 오래 이 영화를 생각할 것 같다.
1994년 당시 초등학생이었기에 한창 신문 스크랩이 숙제였고, 스포츠 섹션에서 토냐 하딩에 관련된 기사를 오려냈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다.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잊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후 미국의 온갖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사건에 대해 비틀린 농담을 하고 흉내를 냈기 때문에 되새김질된 게 아닌가 한다. 20년이 넘도록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회자된 셈이니, <아이, 토냐>가 지난 세기말로 돌아가는 방식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영리해야만 했다. 수많은 적대자들을 비껴 가해자의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토냐 하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묘한 방식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학대와 배제를 조금이라도 경험
정세랑 소설가의 <아이, 토냐> 미워하기 좋은 여자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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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는 아내를 두고 새 인연을 꿈꾸던 남편이 뒤늦게 후회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일정 양식이 반복되고 교훈과 결말, 극을 통해 얻는 쾌락도 정해진 보수적인 이 드라마들은 주로 여성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 시간여행이나 신비한 힘의 개입으로 운명을 되돌리는 설정이 드라마 시청자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최근 몇년 동안은 여러 쌍의 부부들이 과거로 돌아가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기도 했다.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도 그 흐름에 있다. 드라마 속 시간여행의 주체는 대개 남자다. 후회할 만한 일을 저질러왔고, 과거로 돌아가 이를 바로잡으려는 동기를 가진 남자주인공의 시점과 감정선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의 시선에 의해 순수하고 아름답던 모습으로 대상화된 아내가 재발견되는 것이 앞선 드라마들이었다면, 이에 저항하듯 ‘뜬금없는 농담을 즐기는 털털하고 쾌활한 괴짜’라는 개성을 일관되게 놓지 않는 이가 <아는 와이프> 속 아내 서우진(한지민)이다.
하지만 우진의
[TVIEW] <아는 와이프> 개성마저 덮어버리는 개념녀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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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서치> 내 딸이 사라졌소.
[정훈이 만화] <서치> 내 딸이 사라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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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영화평론상이 어느덧 23회를 맞이했다. 먼저 예정된 발표 시기를 2주 정도 늦추게 된 것에 대해 응모자들과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비평의 위기’라는 해묵은 표현이 새삼 짓누르는 가운데서도 해마다 응모자들은 늘어났고, 올해 역시 지난해보다 많은 110편이 접수됐다. 몇해 전 채 50편도 접수되지 않아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것에 비하면, 그런 추세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꼼꼼히 읽고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내부적으로 좀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올해 영화평론상에 대한 심사평을 따로 쓰긴 했지만(43쪽 참조), 심사평에 이름을 언급한 수상자 포함 4명 외에 최종심까지 오른 몇몇 응모자들이 모두 이전에도 <씨네21> 영화평론상에 도전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독 올해는 새롭게 응모하여 우리의 눈길을 끈 사람보다 와신상담 재도전에 나선 응모자들이 더 눈에 띄었다는 얘
[주성철 편집장] 영화평론상 수상 발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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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호텔 침대에 누워 쉬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인스타그램이 비보를 알렸다. 어리사 프랭클린 여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네.
평소에 나는 추모를 쉽게(?)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냥 흘려보낸 죽음이 꽤 많다. 누구인지는 알지만 팬까지는 아니었던 사람의 죽음 앞에 ‘정말 좋아했었다’는 유의 과장을 늘어놓으며 스스로의 낭만에 도취되기는 싫었다.
하지만 어리사 프랭클린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휴가 중 마카오에서도 추모 포스트를 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녀가 솔의 여왕인 건 맞다.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내가 어릴 적에 듣고 자란 수많은 힙합 노래가 그녀의 목소리에 빚을 졌기 때문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힙합의 아버지다. 드럼 브레이크를 비롯해 그가 남긴 수많은 소리는 힙합 사운드의 뿌리가 됐다. 그렇다면 어리사 프랭클린은 ‘힙합의 어머니’쯤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노래를 샘플링한 힙합 노래가 좀
[마감인간의 music] 어리사 프랭클린 <One Step Ahead>, Long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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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이 오면>의 주인공 엔젤 라미어(도미니크 피시백)는 이제 막 18살이 되어 소년원에서 출소한다. 엔젤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흑인, 레즈비언, 가정폭력 생존자 같은 말은 필수적이겠으나 영화에선 부수적일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엔젤의 여자애인은 “대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관계를 끊고 싶어 하는 눈치다. 엔젤은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눈을 감으면 아빠가 엄마의 머리를 화장실 벽에 찧어대던 장면이 생각나. 그래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엔젤은 총을 구하고, 위탁가정에 맡겨진 동생과 조우하고,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중이다. 엔젤의 아빠는 엄마를 살해했고, 엔젤은 엄마의 복수를 원한다. 어떻게 지냈냐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엔젤이 어떻게 답했어야 했을까. 엔젤은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런 얘기를 듣길 원해? 여자친구는 답한다. 좀 낫네.
나는 이 장면에 분개했다. 겨우 이 정도 반응을 듣기 위해서 자신의 악몽을 타인에게 말해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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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제인>은 선구적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에 관한 영화다. 1960년대 탄자니아 곰비 지역에 거점을 만들고 침팬지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젊은 제인 구달의 모습을 담은 화면은 “혹시 재연인가?”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 필터를 댄 최근 장르영화의 클립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제인>의 본론을 이루는 이 영상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100여 시간의 무성 16mm 푸티지를 편집해 음향과 음악을 더한 결과다. 촬영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구달에게 파견한 카메라맨 휴고 반 라윅인데 뒷날 그가 제인 구달의 첫 남편이 됐다는 사실은, 영상에 흐르는 관심과 친밀감을 설명한다. 미래의 연인 눈에 포착된 제인 구달은 정글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다정하고 냉철한 인간이다. 반 라윅의 필름은 1965년에 이미 <미스 구달과 야생 침팬지>라는 영화로 종합된 바 있으나 브렛 모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크레이지 서칭 아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