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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폴 버호벤 / 출연 엘리자베스 버클리, 카일 맥라클란, 지나 거손 / 제작연도 1995년
10년 전, <씨네21> 창간 13주년 기념 ‘1995-2008 영화 베스트10’ 선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리스트를 채워갈 즈음, 한편의 영화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포함시키지 않았다. 얼마 후, 어느 영화제에서 만난 당시 <버라이어티>의 수석 평론가에게 그때 포함시키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맙소사, 난 그 영화를 항상 베스트10에 빼먹지 않고 넣는걸!” 폴 버호벤의 <쇼걸>은 내게 뼛속까지 부끄러운 길티 플레저였던 셈인데, 이후 “사실 나도 너무 좋아해”라며 속삭이는 사람을 만날라치면 그 은밀한 반가움과 동맹의식에 부들부들 기뻐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대놓고 컬트의 명성을 갖게 된 <쇼걸>의 팬덤은 사실 수줍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개봉 당시 폴 버호벤-조 에스터하즈 콤비의 전작인 &
박진형 프로그래머의 <쇼걸> 뼛속까지 길티 플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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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팩트만 정리해보면, 회식이 끝나면 백 팀장이 죽는다. 그리고 하루가 반복된다.” 치킨회사 마케팅팀 대리 이루다(백진희)는 11월 7일 수요일이 반복되는 타임루프에 갇혔다. 팀장 백진상(강지환)의 다양한 사망 엔딩을 분석한 루다는 기묘한 인과를 알아낸다.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가 ‘죽어버려!’라고 저주하면 백진상은 진짜 죽는다.
원작 웹툰 <죽어도 좋아♡>의 백진상은 제레미 아이언스를 닮은 미중년이다. 장점은 그것뿐. 지독하게 낡은 여성관으로 폭언을 일삼던 만년과장은 드라마에선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원에게 인격모독을 가하는 팀장이 되었다. 오늘만 사는 심정으로 팀장의 멱살을 잡고 치받았다가 예상치 못한 내일을 맞이한 루다는 이후, 타임루프의 성립과 해제 조건을 분석하며 직장생활의 엉킨 매듭을 풀어간다. 이대로 하루를 넘겼다간 다음날이 곤란하겠다 싶으면 게임 리셋 버튼을 누르듯 외치기도 한다. “백진상 죽어!”
‘오
[TVIEW] <죽어도 좋아>, 직장, 다닐 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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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성난황소> 어르신... 제 아내가 납치됐습니다
[정훈이 만화] <성난황소> 어르신... 제 아내가 납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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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경제의 관계를 언급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1994년 “<쥬라기 공원>(1993) 한편으로 벌어들인 돈이 현대자동차 150만대 수출한 효과와 맞먹는다”는, <국가부도의 날>에도 등장하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영화와 TV드라마 등 첨단영상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통계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으나, 사실 당시는 모든 국내 자동차회사를 통틀어 1년에 수출하는 양 자체가 100만대가 안 되는 시절이었으니, 그 막연한 규모가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우리도 그런 영화를 만들자!’보다 ‘외화에 우리 돈이 그렇게 많이 빠져나간다고?’라는 인식만 더 강해졌을 따름이다. 역시 <국가부도의 날>에 등장하는 ‘한국은행’도 비슷한 발표를 낸 적 있다. 한국 영화산업 시스템 변화의 일대 전환점이 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쉬리>(1999)에 대해 “현대자동차 쏘나타 1만1667대”의 생산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물론 &
[주성철 편집장] 1997년의 김혜수와 한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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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힘껏 화를 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봤자 대부분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둔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단단해지면, 그때 다시 할 수 있는 걸 한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일에는 이런 생존 전략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최소한의 사회정의’가 무너졌다고 느낄 때 내 마음은 폭주 모드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을 때 거리를 두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그럴 때는 그냥 쏟아져오는 감정을 맞이한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파도 속에 들어가면 파도를 느끼지 못하듯, 이 역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어떤 인과관계도 없이, 갑자기 어떤 사건이 머리 속으로 직접 ‘들어오고’ 실제로 비슷한 고통을 그대로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다. 아주 가끔 그런 경우가 생긴다.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tization)이라 하기도 하는데, 주로 트라우마 생존자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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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의 경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회사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는 계획에 없던 셋째 아이를 낳기 직전이다. 자폐 증세가 있는 둘째 조나가 특별한 보살핌을 요하기에 마를로의 만삭은 더욱 힘겹다. 교장 면담의 날,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조나는 엄마가 평소와 다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고 하자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른다. 첫째도 덩달아 흥분하고 초주검이 된 마를로는 하는 수 없이 꽉 찬 주차장으로 핸들을 돌려 순서를 기다린다. 여기서 <툴리>는 차 안의 소동으로부터 갑자기 외부숏으로 화면을 바꾼다. 마를로의 차가 서 있는 주차장의 전경은 감쪽같이 조용하고 평온하다. 자동차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쪽에서 벌어지는 생지옥을 짐작도 하지 못한다. 그처럼 <툴리>는 외부자에겐 알려지기도, 공감받기도 어려운 고통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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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요. 겉은 멀쩡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피부 결점을 덮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가려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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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 출연 미후네 도시로, 야마다 이스즈 / 제작연도 1957년
아무리 사랑해도 오랜 시간 잡히지 않고 돌아봐주지 않으면 그 사랑은 지치고 식기 마련이다. 2010년 무렵의 내겐 영화라는 존재가 그랬다. ‘영화 만드는 게 내 길이다’ 라는 호기로운 확신으로 이 ‘바닥’에 뛰어든 지 약 10년째 되던 해였다. 친구들은 직장에서 월급받으며 ‘인간구실’을(우리 부모님의 표현으론) 하고 있는데 벌이도 없이 주야장천 같은 시나리오만 고치고 또 고치던 나, 난 누구이며 여긴 또 어딘가, 영화가 대체 뭐길래, 뭐 어쩌겠다고 이러고 살고 있나 하는 근원적 고민부터 자학까지…. 결승점의 실체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숲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영화와 권태기와 슬럼프에 빠진 채 어딘가 시나리오를 던져놓고 기약 없는 답변을 기다릴 때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며 식어버린 애정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 영상자료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했
이지원 감독의 <거미의 성> 욕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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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보헤미안 랩소디> 마음껏 떼창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정훈이 만화] <보헤미안 랩소디> 마음껏 떼창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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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간 추모 소식을 전하느라, 지난 1181호에 실렸던 김기영 감독 타계 20주년 추모 대담에 대한 얘기를 덧붙이지 못했다. 그사이 <남과 여>(1966), <러브 스토리>(1970)의 영화음악가 프랑시스 레이도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그의 추모 기사 또한 이번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언제나 김기영 감독에 대한 추모는 후대에 끼친 영향력 면에서 ‘영화감독들의 영화감독’이라는 평가처럼 남성 감독 위주로 진행돼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손희정 평론가, 이언희 감독, 차성덕 감독 등 여성 감독과 평론가로만 대담을 진행했고, 이전 다른 인터뷰나 비평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나마 흥미로운 일독을 권한다. CGV아트하우스의 김기영 헌정관 개관 기념 영화제는 11월 28일까지 열린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은 역시 <하녀>(1960)로부터 시작되는 ‘女’ 시리즈라고 할 수 있
[주성철 편집장] 김기영 감독의 80년대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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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디지털화되고 음악계 속도가 빨라지면서 아티스트들의 체력과 창의력도 전보다 빨리 소모되고 있다. 특히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 신에서 요즘 이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DJ 중 한명인 하드웰은 지난 9월 돌연 무기한 투어 중단을 선언하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언론과 팬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지친 상태인지 짐작된다. “24시간 하드웰로 살다보니, 에너지, 사랑, 창의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생활이 거의 남지 않게 됐다.”
DJ 카니지도 11월 초 기약 없는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EDM 최전선에서 물러났다. 그의 경우는 좀더 심각하다. “정신 및 육체적 건강”을 언급하며 “위험신호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얼마간 그들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이제 아티스트들이 무조건 견디지 않고 솔직히 한계를 인정할 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재충전 뒤에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팬들은
[마감인간의 music] 카이고 <Happy Now>,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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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휴전선 아래 파주까지 도착하는 세 남매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실은 지난 11월 2일부터 지금 촬영 중인 영화 얘기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경험을 만드는 행위다. 직간접 경험이 녹아든 시나리오를 토대로 스탭과 배우는 또 다른 실제 세계를 함께 창조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라는 그 경험의 결과물을 극장에서 경험한다. 4년 전,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진주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그 계절에 한 일이 시나리오를 쓴 건지 어느 가족을 ‘만난’ 일인지 기억이 종종 헷갈린다. 경험은 또 다른 경험으로 이야기가 되었고, 이듬해에 그 가족이 지나갔던 길과 머물렀던 장소를 되짚어 사진에 담았다. 이어서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그 사진과 시나리오를 가지고 꼬박 일년 동안 그들의 얼굴과 공간을 자신의 손으로 그려내는 경험을 했다. 이후 그 그림과 활자를 담은 책이 나왔고, 또 누군가는 감사하게도 만화로 먼저 세 남매와 가족을 만나
나에게서 너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