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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말리기> 주인공들이 말하는 ‘가족시네마’ 만들기그리고 못다한 이야기“너무 좋았지. 니 아빠는 영화 보면서 웃지 말라고 그러더만은, 할머니는 눈물이 절로 나왔지. 옛날에 살려면 다 그렇잖아. 그걸 똑같이 만들었으니까,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도 몰래 눈물이 줄줄…. 날더러 소감을 이야기하라고 그러는데, 내가 할말이 뭐가 있어. 여러분들 왔으니까 감사하다고 그러구,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를 이런 영광의 자리에 불러줘서 고맙다 그랬지 뭐.” “그럼, 할머니는 완전히 출세한 거여. 딸이 인제 출세해야지.”세상에 누구나 ‘책 한권’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품은 사람 사이가 가족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여군이 되고팠던 엄마, 시인이 되고팠던 할머니에게서 나고 자란 장희선(28) 감독은 스물여섯 ‘과년’한 나이에 술술 그 책 한권을 써내고야 말았다. 엄마와 딸이 있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고, 그리고 손녀딸과 그녀를 엄마 대신 키워준 할머니가 있는 집
가족시네마 <고추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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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2월3일 폐막대상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프랑스 중부지방에 자리한 작은 도시 클레르몽 페랑에서 1월26일 저녁에 9일간 열리는 제23회 국제단편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밖은 비바람이 심하여 몹씨 을씨년스러웠지만 행사의 주무대인 문화의 집 ‘장 콕토’ 실내는 1천석이 넘는 객석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들끓었다. 개막식은 같은 프로그램을 8시30분과 10시30분에 반복하는 것으로 두번에 걸쳐 진행됐는데, 나는 두 번째 개막식에 참석했다. 행사는 겉치레가 전혀 없이 심사위원들에 대한 짧은 소개와 주최자쪽의 영화제 절차에 대한 설명으로 간단히 끝났다. 그 대신 이 영화제 특유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주인공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감독들이었고 이들은 이 지역의 실업자들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에 울분을 터트리면서 독립영화의 사회적 중요성과 시민연대 및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클레르몽 페랑, 세계 단편영화의
제23회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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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2월7일 개막, 개막작 <문 앞의 적>체념한 염세주의자의 눈동자 같은 회색 하늘과 그로부터 묵묵히 땅을 향해 수직을 긋는 빗줄기. 무뚝뚝한 바람을 베어낼 듯 모서리를 살벌하게 벼른 마천루와 사방 공사장에서 날아든 흙모래로 혼미한 그 발치의 보도블록. 베를리날레 팔라스트로 향하는 포츠담 광장 역에서 둘러보는 베를린 신도심의 풍경은 하릴없이 거대한 세트의 그것이다. 한편의 영화가 남긴 자취를 거둬내고 다른 영화를 찍기 위한 망치질 소리가 을씨년스러운. 하긴, 굳이 반세기 모퉁이를 돌아서가 아니더라도 22년간 영화제를 꾸려온 집행위원장 모리츠 데 하델른을 올해로 떠나보내는 베를린영화제로서는 이번 51회 행사는 정말 새로운 ‘필름’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이다.출품작 600여편, 라틴과 일본영화 강세옛 포츠담 거리를 따라 포럼, 파노라마, 특별전 부문 상영관으로 쓰이는 시네맥스 극장을 지나면 무엇인가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듯 앞발을 치켜든 노란 곰의 깃발이 펄럭이는 마
제51회 베를린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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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감독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김홍준 | 거장들의 세기가 저문 마당에, 현존 최고의 감독을 꼽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존 포드, 오즈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중 한명이라도 살아 있다면, ‘현존’ 최고의 감독으로 주저없이 꼽았겠지만. 차라리 도박하는 심정으로, 데뷔를 앞둔 아시아(동쪽 끝 일본에서 서쪽 끝 이란까지)의 모든 감독 중 미지의 그 누군가가 현존 최고의 감독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정성일 | 허우샤오시엔. 자신의 인물들에 대한 예의, 이야기를 향한 시선, 역사에 관한 근심, 그 안에서 종종 영화의 이미지조차 넘어서는 작가의 자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창조의 경이. 내게서 타르코프스키 이후 ‘가장 심금을 울리는’ 예술가.
-무인도에 갇혀 10편의 영화밖에 볼 수 없다면.
=정성일 |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기 때문에 이 명단은 ‘내 삶의 걸작’ 리스트가 아닙니다. 가지고 가서 위로받고 싶은 명단이라는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6] -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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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영화사와 결별하다
오즈와 존 포드와 고다르와 대결하지 않는 영화광, 영화사에 대한 콤플렉스를 깨끗이 지운 영화광, 대신 카메라를 들고 학교와 거리를 누비는 영화광의 시대가 왔다. 백과사전식 영화 교양에 몰두한 전 시대의 영화광은 이제 몰락의 운명을 걸을 것인가. 새로운 영화광들이 만들 영화세상은 어떤 것인가.
김 | 우리 세대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과 환상이 있었다. 지금은 환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취향과 기호만이 있을 뿐이다. 그땐 취향과 기호를 떠난 공감대가 있었다. 다르면 적대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개인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가 달라도, 별 문제는 아니었다. 계급적 차이도 없었고. 토론이 벌어져도 싸움은 없었다. 끼리끼리 모여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다. 고다르든, 안토니오니든, 파스빈더든, 그들을 좋아하는 순간, 우린 한울타리 안에 있었다.
정 | 트뤼포는 ‘내가 내일 종신형을 받는다 할지라도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공격한다면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5] - 영화광·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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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화, 디지털 종교에 투항하다
디지털 신화가 목청 높이 외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디지털의 가능성을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몇몇 진지한 시네아스트들도 디지털에서 영화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인터넷 비지니스라면 남부럽지 않은 한국에선 디지털이 거의 종교적 신뢰를 얻고 있다. 과연 디지털은 셀룰로이드를 대체할 것인가. 대체한다면, 그 이후의 영화도 우리가 영화라고 알고 있는 것과 동질의 것일 수 있을까.
김 | 산업적 측면에서 디지털의 효용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체 민주화다. 극장용 영화 못지않은 화질의 영화를 디지털로 찍는다는 건 기술적으로 산업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감독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볼 때 나는 배급에서 산업적 통제가 여전하리라고 본다. 유통방식의 외양만 바뀌는 것일 뿐이며 디지털이 만인이 영화를 찍고 만인이 즐기는 시대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세번의 새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경험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8mm가 등장했을 때 사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4] - 21세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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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 세계영화사 새로 쓴다
80년대 후반부터 서구 영화인들을 찬탄케 한 아시아영화들은 세기 전환기에 이르러 더욱 빛나고 있다. 산업은 할리우드 손을 떠나지 않더라도 미학적으로는 이미 아시아영화의 시대가 온 게 아닌가. 21세기의 영화사의 본론은 아시아영화가 쓰게 되는 건 아닌가. 그곳에 과연 한국영화도 발견될 것인가.
김 | <와호장룡>을 최근에 봤는데, 캐릭터 속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웅담이라 느껴지지 않고 한국영화의 알레고리, 한국영화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질까, 궁금했다. 직관이니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아시아영화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는 걸 몰랐어도, 홍콩의 무협영화 전통에 학술적으로(정서적으로가 아니라) 정통한 서구감독이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정 | 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번 봤다. 그런데 두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붕 위를 뛰어 추적하는 장면과 대나무(대나무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3] - 아시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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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론은 비만, 영화문화는 발육부진
한국영화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문화산업론은 인터넷 비지니스의 활황과 더불어,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영화문화는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가. 미진한 미학적 성취, 진정한 시네마테크와 필름아카이브의 부재, 대학 영화관련 학과의 과다와 영화학의 부진이 빚는 극심한 불균형 등 한국 영화문화의 왜소화를 초래한 주범은 혹시 문화산업론이 아닌가.
김 | 한국영화계를 과연 문화산업이 지배하고 있는지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영화가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 제작시스템은 식민지 반봉건사회 비슷한 것 아니었나 싶다. 때론 국가독점자본주의 성격도 있었지만. 반면 지금의 한국영화 현실은 문화적인 양상에서마저도, 후기 자본주의적 모습이 보인다.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꼭 그 산업이 완숙한 단계에 진입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한국영화의 문제를 문화산업론으로 파악하는 것은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2] - 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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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영화광의 근심, 21세기 영화의 그 우울한 스펙터클
선도 교사들의 눈을 피해, 모자를 눌러쓰고 극장 한켠에서 숨죽인 채 은막에 투사되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었던 두 고등학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극장에서 스치듯 비켜가기도 했고, 독일문화원에서 얼굴을 마주보기도 했다. 그의 한 사람은 구회영이란 필명의 영화평론가 그리고 본명의 감독이 됐고, 영상원 교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진흥위원이란 감투를 한꺼번에 쓰게 됐다. 다른 한 사람은 <키노> 편집장과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며칠 전 백수, 그러니까 순수 평론가가 됐다.
김홍준과 정성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한국에 영화의 시대가 막 도래했을 때,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들이 관객의 곁에서 영화의 아찔한 매혹을, 영화의 아득한 깊이를,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섬세하고 세련된 언어로 들려준, 관객의 친구, 영화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많은 감투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영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1]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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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 어웨이>가 또 2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톰 행크스 혼자 한 시간 이상을 떠들고, 혼자 뛰어다니는 ‘무인도영화’가 그만한 돈을 벌어들일 영화가 되리라고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아무리 톰 행크스 주연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로버트 저메키스는 <백 투 더 퓨처> 이후 할리우드의 주류에서 조금씩 엇나간 작품들로 승부해왔다. 지독하게 씁쓸한 <죽어야 사는 여자>나 변형된 미국 현대사를 그린 <포레스트 검프> 등등. 모든 작품이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포레스트 검프> 이후 로버트 저메키스는 만드는 작품들마다 흥행은 물론 화제를 모으는 데도 성공했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스필버그처럼 거창하게 떠들지는 않지만,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로 부족하지 않다. 물론 <왓 라이즈 비니스>처럼, 그냥 기분풀이, 또는 테크닉 실험용으로 만드는 아무 의미없는 ‘상업영화’가 필모그래피
[저메키스]오락과 예술 사이, 환상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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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는 지금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80년대 소위 5세대영화가 미학의 반란을 꾀했다면, 90년대 중국영화는 또다른 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영화산업 격변기의 와중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올해가 중국영화산업의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바로 중국이 WTO 가입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에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할지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점진적이나마 개방의 길로 나아가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중국 정부가 외화시장 개방과 해외투자 유치 등과 같은 개방적인 정책을 천명했기 때문이다.사실, 그동안 중국영화산업을 지탱해왔던 스튜디오 시스템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와해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70년대부터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었다. 국영 스튜디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점차 줄어들었고 스튜디오들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짜야만 했다. 이를테면 시안스튜디오의 경우 1988년까지 매년 1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하였으나, 98년에는 5
[로우예]인디, 환한 얼굴로 돌아보다